[엄윤상의 세상만사] 무심한 방관자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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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뉴욕의 한 아파트 앞에서 '키디 제노비스'라는 한 젊은 여인이 강도를 만났다.
그는 한 달 전부터 그 종교단체의 개혁을 요구하며 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었다.
배식대 앞에서 한 중년의 간부가 식판을 든 그의 팔목을 잡고 시비를 걸었다.
그는 되레 폭행죄로 기소되었고, 그를 폭행한 종교단체 간부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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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뉴욕의 한 아파트 앞에서 ‘키디 제노비스’라는 한 젊은 여인이 강도를 만났다. 그녀는 강도의 칼에 찔리는 30여 분 동안 도와달라고 외쳤다. 바로 그 시각 38명이나 되는 이웃들이 창문 너머로 그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노비스 신드롬(방관자 효과)’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옆에서 누가 죽어가도 방관하는 차가운 사회의 상징이 되었다.
작년 겨울, 유난히 추웠던 날, 그는 점심을 먹기 위해 모 종교단체 구내식당에 들렀다. 그는 한 달 전부터 그 종교단체의 개혁을 요구하며 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었다. 돈을 내고 배식대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유독 시선이 따가웠다. 그의 앞뒤로 여러 명의 본부 간부들이 시비라도 걸 것처럼 서 있었다. 그는 ‘설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나를 어떻게 하겠어’라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배식대 앞에서 한 중년의 간부가 식판을 든 그의 팔목을 잡고 시비를 걸었다. “너 같은 새끼가 왜 여기서 밥을 처먹냐”라고 소리치며, 다른 간부들에게 “들고 나가”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대여섯 명의 젊은 간부들이 그를 들쳐업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반항했고, 그 과정에서 그의 식판이 한 젊은 간부의 목에 살짝 스쳤다. 들려서 식당 밖으로 끌려 나온 그는 도로에 내던져졌다. 이 사건으로 그는 2주일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의 고난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가 폭행에 가담한 사람들을 고소하자, 그의 식판에 목이 스친 젊은 간부도 맞고소했다. 그렇게 시작된 수사 결과는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되레 폭행죄로 기소되었고, 그를 폭행한 종교단체 간부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를 폭행한 젊은 간부들과 현장에 있던 다른 간부들이 입을 맞춰 ‘그가 실수가 아닌 고의로 식판을 휘둘렀다’고 증언한 것에 비해, 당시 식당에서 식사하던 100명이 넘는 사람 중에 그의 피해를 증언해 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식당 밖에 CCTV가 설치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종교단체에 그 시각 녹화본을 임의 제출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종교단체는 차일피일 미루더니 CCTV 교체를 이유로 녹화본이 삭제되었다고 통보하였다. 결국, 그의 억울함을 증명해 줄 증거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오늘 그는 그 종교단체 본부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개혁을 요구하는 피켓이 아니다. 100명이 넘는 침묵하는 목격자 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침묵을 깨고 진실을 증언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는 피켓이다. 침묵하는 100여 명 대부분이 종교단체 관계자이거나 이해관계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과연 침묵의 나선(螺旋)을 깨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진실을 증언해 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다만 그 무심한 방관자가 누구든, 하나만 명심했으면 한다. 내가 방관하면 언젠가 나도 제노비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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