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집병 철수 시켜라" 가족들 분노…본토 침공 당한 푸틴 골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 일대를 공격한 이후 러시아 내 혼란이 심화하고 있다. 징집병을 쿠르스크에서 철수시켜 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는 양상이다. 우크라이나군의 급습이 성공한 배경엔 전파 방해 등 전자전 전략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징집병 가족들 반발…우크라군 통제 지역민 혼란
16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러시아 내에선 “쿠르스크에서 징집병을 철수시켜 달라”는 청원이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징병제는 정치적 폭발력이 큰 사안이다. 러시아에서 징집병은 직업군인과 달리 해외 파병이 법으로 금지돼 있고, 전투 작전에 참여하지 않기에 훈련도 제한적이다. 18~30세의 건강한 남성이 징집 대상이고, 복무 기간은 1년이다. 푸틴 대통령도 징집병은 우크라이나군과의 전투에 투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의 본토 급습으로 징집병이 최전선에 나서게 되면서 징집병 가족들이 분노하고 있다. 징집병의 할머니라는 나탈리아 아펠은 러시아 독립언론 베르스트카에 손자가 국경에서 약 500m 떨어진 마을에 무기도 없이 배치됐다며 “삽으로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맞서라는 것이냐”고 화를 냈다.
이런 징집병들이 우크라이나군의 포로가 되면서 송환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교도소에 젊은 러시아 징집병들이 가득 차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향후 이들 포로를 러시아와의 협상 카드로 삼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포로로 잡힌 징집병 가족들은 이번 주 초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와 가능한 한 빨리 포로 교환을 할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우크라군이 장악했다는 쿠르스크의 요충지 수드자 마을의 상황도 외신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수드자에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수송하는 가스관 시설이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군이 수드자를 통제하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우크라이나군과 동행해 러시아 현지를 취재한 CNN에 따르면 수드자 거리엔 시신들이 보였고, 도로에는 총탄 자국이 있는 민간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광장에 있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은 얼굴 부분이 반쯤 떨어져 나갔다.
현지인들은 공포와 혼란 속에 방공호에 모여 있었다. 대피소 입구에 있던 스타니슬라프는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봐라. 이건 삶이 아니다. 이건 생존이다”라고 답했다. 밖에서 약을 찾고 있던 니나(74)는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누구의 땅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쿠르스크 상황이 외신을 통해 공개되자 대응에 나섰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쿠르스크에서 현장 리포트를 제작한 이탈리아 국영 방송사 RAI의 언론인 2명에게 형사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들 언론인이 “불법적으로 러시아 영토에 침입했다”며 16일 러시아 주재 이탈리아 대사도 소환했다. RAI는 17일 두 언론인을 이탈리아로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자전 부대가 러시아 먼저 진입
이런 가운데 우크라군이 러시아 급습에 성공한 배경에는 전파 방해 등 전자전 전략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크라이나의 전자전 부대가 지난 6일 주요 기계화 공격 부대보다 먼저 러시아 영토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장비를 교란시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 위치를 파악하거나 통신을 가로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이례적인 배치를 통해 진격하는 전투 병력 주변에 보호막을 형성했다고 WSJ은 평가했다. 실제 몇몇 러시아 부대에선 드론과 통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CNN도 우크라이나군의 성공 열쇠 중 하나로 러시아군 통신을 막은 전파 방해를 꼽았다. 또한 방탄복의 열을 차단해 병사들이 열 감지 드론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밖에 속도전과 철저한 비밀 유지를 우크라이나군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우크라이나군은 미국 스트라이커와 독일 마더 등 빠른 서방 장갑차를 타고 러시아 국경을 빠르게 통과했고, 러시아 정보기관은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을 예측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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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결국 장거리 순항 미사일 설득?
외신들은 우크라이나가 보다 깊숙히 진격할 지, 평화 협상에 나설지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16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관리는 미국 관리에게 “이번 작전 목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최전선에서 병력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쿠르스크에 병력을 배치하면서도 도네츠크의 부대는 그대로 두고 있다.
러시아 본토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방어력이 다소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최전선 군인 일부가 쿠르스크로 이동하면서 러시아군은 9일까지 우크라이나군의 병참 중심지인 우크라 동부 포크롭스크 외곽 약 10마일까지 진군했다. 15일엔 약 4만명의 포크롭스크 주민 대피령도 내려졌다.
NYT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진격을 통해 “서방에 자신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미국의 장거리 순항 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설득하려 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짚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주 4차례 이상 “장거리 미사일이 이 전쟁의 정당한 종식을 크게 앞당길 수 있다”며 서방이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을 본토 공격에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미국은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은 상태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15일 MS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무기와 능력을 갖추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외무부는 17일 “(전날) 처음으로 쿠르스크 지역이 미국산 HIMARS(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하이마스)로 추정되는 서방제 로켓 발사기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16일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쿠르스크주 글루시코보 인근 세임강 다리를 폭파했다고 밝혔다.
한편 17일 WP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에너지, 전력 기반 시설에 대한 상호 공격을 중단하는 합의를 협상하기 위해 이달 카타르 도하에 대표단을 보낼 예정이었으나 지난 6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으로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카타르가 중재자로 나서 두 달간 논의해 도하 회담에 합의했고 세부 사항만 남겨둔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도하 회담은 “중동 상황 때문에” 연기됐고 22일 화상회의 형식으로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18일 자신의 텔레그램에 WP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서 “(애초) 방해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 무엇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권 사이에 민간 핵심 인프라 시설의 안전에 대한 직접 또는 간접 협상은 없었고, 진행 중인 협상도 없다”고 강조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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