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로 보는 자본주의 이면... 직업은 내 선택일까?

안지훈 2024. 8. 1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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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토니 어워즈 석권한 뮤지컬 <하데스타운>

[안지훈 기자]

대공황 시기 미국의 재즈 바를 연상시키는 <하데스타운>의 무대에서 그리스 신화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들려온다.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헤르메스, 하데스, 페르세포네 등등. 본격적으로 뮤지컬 <하데스타운>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인물들을 다룬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짧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독사에 물린 에우리디케가 지하 세계로 떨어지고, 오르페우스는 연인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지하 세계의 왕인 하데스를 찾아가 간청한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감동해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며 조건을 단다. 돌아가는 동안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 오르페우스는 이를 지키지 못해 끝내 에우리디케를 구하지 못한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신화의 굵직한 서사를 따르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각색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리스 신화가 쓰일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바로 이 점이 신화의 서사가 가지는 위대한 힘이 아닐까 싶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적용할 수 있는 '영원한 이야기'의 힘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데스타운>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2019년 공연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작품상, 음악상, 연출상 등을 석권했다. 또 2021년 국내에 처음 소개돼 한국 뮤지컬 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올해 두 번째 시즌으로 다시 돌아왔다.

가난한 웨이터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각색된 '오르페우스' 역에 초연에 참여했던 조형균, 박강현에 더해 멜로망스 김민석이 캐스팅됐다. 내레이터 역할을 하면서 인물들을 연결해 주는 '헤르메스' 역에는 최재림, 강홍석과 함께 최정원이 캐스팅됐다. 주로 남자 배우들이 연기한 역할에 여배우 최정원이 캐스팅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혹독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소녀로 재해석된 '에우리디케' 역에는 김환희, 김수하가, 지하 광산의 경영자인 '하데스' 역에는 지현준, 양준모, 김우형이,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 역에는 김선영과 린아가 각각 캐스팅됐다. <하데스타운>은 오는 10월 6일까지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사진
ⓒ 에스엔코(주)
그리스 신화로 비판하는 자본사회

그리스 신화에서 에우리디케는 독사를 밟는 바람에 독사에게 물려 지하 세계로 끌려가지만, <하데스타운>에서는 다르다.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에우리디케에게 지하 광산의 경영자인 하데스가 손을 내민다. 자신과 함께 지하 광산에 내려가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다면서 말이다.

에우리디케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내레이터인 헤르메스 말에 따르면 에우리디케는 '세상의 혹독함을 잘 아는' 인물이었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지 않았다. 그래서 에우리디케는 하데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모두 굶주리고 지쳐있는 곳 모두가 노예처럼 일하는 곳, 일은 많아도 돈은 못 받는 거긴 무덤 하데스타운" (넘버 'Way Down Hadestown')

하데스의 지하 광산 '하데스타운'은 이런 곳이다. 하데스타운의 일꾼들은 에우리디케를 딱히 의식하지 않는다. 궁금해하지도 않고, 말도 걸지 않는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렇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할 뿐 서로에게 관심 따위 주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노동자는 서로에 의해 소외되어 가고, 급기야 자신에게서마저 소외되는 지경에 이른다.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왠지 자본사회의 노동자를 고찰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지적이 떠 오른다. 마르크스는 노동에서 '소외'라는 현상이 나타난다면서, 소외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노동자가 만든 생산물은 자본가의 것이므로 노동자가 소유할 수도, 처분할 수도 없다는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노동자 스스로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어떤 방향으로 일할 것인지 결정할 수 없다는 '생산 과정으로부터의 소외' ▲일하는 와중에 동료 노동자와 유의미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단절되는 '동료 노동자로부터의 소외' ▲마지막으로 '인간 본성으로부터의 소외'. 이 모든 소외가 하데스타운의 일꾼들에게서 보여지며, 에우리디케도 모든 과정을 거쳐 인간 본성으로부터도 소외당한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사진
ⓒ 에스엔코(주)
이런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온 오르페우스에게 하데스는 말한다. 그저 계약했을 뿐이라고, 자신은 빼앗지 않는다고. 다만 상대가 팔면 그걸 살 뿐이라고 말한다. 지난 장면을 돌이켜보면 일면 맞는 말 같다. 하데스는 에우리디케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에우리디케는 승낙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선택권이 과연 진짜 선택권인가' 하는 질문을 빠트린 것 같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면, 과연 순수한 의미에서 선택권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물어야 했다. 혹 여러 상황이 중첩돼 그 선택이 강요된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했다. 또 "팔면 살 뿐"이라는 하데스의 말을 듣고서도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서 구매했다면 그건 빼앗는 것 아닌지 의심해야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난하고 취약한 노동자가 위험한 일을 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되는 건, 그의 선택이 아니다. 혹자는 그가 선택해서 일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 일을 해야만 하는 빈자에겐 강요된 선택일 뿐이다.

실상은 이렇지만, 노동자 스스로도 자신이 선택해서 이 직업을 갖게 됐고 이렇게 산다고 인식한다면 큰 문제다. 하지만 하데스는 물론이고, 하데스타운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때 '자유 의지'라는 표현은 노동자를 현혹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앞서 언급한 마르크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학교나 미디어, 종교 등이 사람들을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로 '호명'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과 능력에 따라 직업을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하데스타운>은 신화를 토대로 자본사회의 이면을 굵직하게 그려내지만, 관객에 따라 또 다른 매력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진실된 노래를 부르며 하데스를 감동시킨 오르페우스의 진심과 낙관, 에우리디케를 보내주지만 오르페우스에게 '뒤돌아보지 말 것'이라는 조건을 걸며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 하데스의 '통치 기술'에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내레이터 헤르메스의 존재에 대해서도, 오르페우스가 들고 있는 카네이션의 의미에 대해서도 공연을 보며 고민해 볼 만하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사진
ⓒ 에스엔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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