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 교도소서 불꽃놀이 감상?…범죄자 위한 나라 설계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심퍼시 타워 도쿄'(Sympathy Tower Tokyo)의 최상층에 도착한 죄수들이 도쿄의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도서관에 입장한다. 시야 방해가 없는 70층은 매해 여름 열리는 도쿄 불꽃놀이를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죄수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이들은 책을 읽거나 DVD를 감상하며 자유 시간을 만끽한다. 교도소 '심퍼시 타워 도쿄'의 또 다른 이름은 '도쿄도 동정(同情)탑'. 대부분의 범죄자는 최초의 피해자이며, 혐오가 아닌 동정의 대상이라는 발상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올해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장편 『도쿄도 동정탑』은 도쿄 도심 한가운데 최고급 교도소를 만들어 범죄자들에게 안락한 생활을 제공하는 미래 도쿄의 이야기. 소설 속 저명한 사회학자 마사키 세토는 "범죄자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기에 최초의 피해자이며 동정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세토가 범죄자들에게 붙인 새 이름은 '호모 미세라빌리스'(불쌍한 인간이란 뜻의 라틴어). 죄를 짓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온 비범죄자는 ‘호모 펠릭스’(운 좋은 인간)로 불린다. 호모 미세라빌리스가 수감될 도쿄도 동정탑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이자, 데이트 성폭력 피해자인 마키나 사라가 주인공이다.
작품은 '범죄자가 호의호식하는 사회'라는 컨셉트 뿐 아니라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집필 방식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저자 구단 리에(34)는 마키나 사라가 AI에게 '호모 미세라빌리스'의 뜻을 묻는 대목 등에 AI 생성 문장을 썼다. 전체 분량의 2%가량이다. 소설의 국내 출간을 계기로 구단 리에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호모 미세라빌리스' 라는 개념은 어떻게 나왔나.
A : '호모 미세라빌리스'를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주창한 '호모 사케르'다. 국가와 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이 개념이 『도쿄도 동정탑』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Q : 일본에서 실제 비슷한 논의가 있었나.
A : 범죄자를 양산하는 요인에 대한 논쟁, 이를테면 '환경이냐 유전이냐'는 논쟁은 늘 있지 않나. 일본에서는 비행 청소년을 상담해온 정신과 의사가 쓴 논픽션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호모 미세라빌리스'는 내가 고안한 독창적 개념이라기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일본 교도소 내부를 10년간 취재한 다큐멘터리 감독 사카가미 가오리의 르포『프리즌 서클』도 도움이 됐다.
Q : 범죄자를 '호모 미세라빌리스'라고 불러야 하는 사회를 향한 회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피로감이 소설에서 느껴진다. 언어가 의사소통의 도구라기보다 '언어가 곧 정신'이라고 믿는 쪽인가.
A : 그렇다. 언어에 특별한 관심을 두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부모님이다. 두 분은 같은 일본어로 대화했지만 각자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영향으로 구사하는 어휘나 억양이 크게 달랐다. 불통(不通)이 뿌리 깊었다. 부모님의 문제를 이해하고 싶어서 어린 시절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했다.
Q : 일본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소설에 영향을 미쳤나.
A :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관심이 많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인한 언어의 제한이 인간의 사고까지 제한하는 건 아닌지 늘 우려하고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나 연구가 있었나.
A : 건축과 관련한 책과 자료를 많이 읽었다. 감옥과 같은 특정 공간에 인물이 갇힌 설정의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그런 성향도 영향을 끼쳤다.
Q : 독자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A : “정말로 도쿄도 동정탑이 세워진 것만 같아서 실제로 국립경기장을 보러 갔다”거나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국립경기장이 세워진 줄 알고 현장에 확인하러 갔다”는 독자가 있었다. 상상으로 만든 세계가 현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Q : 소설의 세계관을 확장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A : 차기작 계획은 아직 구체화한 것이 없고 열려 있다. 이후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는 독자가 많다면 속편도 준비할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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