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총리된지 하루만에 탁신 전 태국 총리 사면…'상왕' 노릇하나
탁신 친나왓(74) 전 태국 총리의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37)이 총리로 선출된 지 하루 만인 17일(현지시간) 탁신 전 총리가 사면됐다. 이번 사면으로 활동의 제약이 사라진 탁신 전 총리가 정치 일선에 복귀해 사실상 정계의 실권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날 로이터 통신은 가석방 상태였던 탁신 전 총리가 5만여 명이 포함된 국왕 사면 명단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앞서 마하 와찌랄롱꼰 태국 국왕은 지난달 자신의 생일을 계기로 수감 태도가 우수한 수감자를 사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5년간 해외에서 망명하던 탁신은 탁신파 정당인 프아타이당의 세타 타위신이 총리로 선출된 지난해 8월 태국에 돌아왔다. 귀국 직후 법원에서 권한 남용 혐의로 8년형이 선고됐지만, 선고 당일날 고혈압 치료를 이유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왕실의 사면을 받아 형량이 1년으로 줄었고, 지난 2월 가석방됐다가 이번에 사면됐다. 외신들은 정치적 활동에 제약이 없어진 탁신이 패통탄의 뒤에서 사실상 '상왕'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AP통신은 "탁신은 태국 정치인 중 최초로 (단일 정당으로) 의석 과반을 차지한 인물"이라면서 패통탄이 총리 후보에 든 것 자체가 아버지의 후광 덕이었다고 보도했다. 정계 데뷔 3년인 패통탄이 각료 경험이 없어 탁신의 조언에 의지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BBC는 "패통탄이 무엇을 하든 항상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거로 여겨질 것"이라고 짚었다.
"탁신, 국외 망명 때도 막대한 영향력"
탁신 전 총리(2001∼2006)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농민과 도시 빈민층의 마음을 샀다. 가디언은 "탁신은 재임 시절 빈곤 타파, 의료 복지 보편화로 서민층에 인기를 얻었고 지금까지도 태국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3월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가장 영향력 있는 태국 정치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2.9%(1위)는 탁신을 꼽았다.
문제는 부패 논란이다. CNN은 "부패 논란이 있는 친나왓 가문의 패통탄이 총리가 되면서 태국은 더 큰 정치적 불확실성에 빠졌다"고 전했다. 이어 "친나왓 일가의 재집권으로 태국인들은 정치가 변화하리란 희망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더 굳힐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에 탁신의 복귀 계기를 만들어준 군부와의 결탁이 되레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원래 대중주의 친서민 행보를 보였던 탁신은 태국의 기득권층인 군부와는 대립했다. 그가 2006년 실각한 것도 유엔 총회 참석차 출국했을 때, 탁신에 반감을 가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랬던 탁신과 탁신계 정당인 프아타이당은 군부 진영 정당들과 손잡고 연정을 꾸렸다. 이를 두고 군부와 손잡은 탁신에 반발하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난해 총선 돌풍의 주역인 전진당의 후속정당 인민당이 탁신 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7일 태국 헌법재판소는 '전진당이 주도한 왕실모독죄 개정은 체제 전복 시도'라며 전진당을 강제 해산했다. 전진당은 지난 총선에서 군부 영향력 축소 등 개혁 공약을 앞세워 인기몰이했다. 전진당이 강제 해산된 직후, 인민당이 신규 창당되자 당원 가입과 후원이 몰렸다. 10일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인민당은 신규 당원 4만명을 추가로 모았고, 창당 후 하루 만에 2000만 바트(약 7억80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티티폴 팍디와니치 우본랏차타니대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패통탄의 취임은 탁신에게도 큰 모험"이라며 "인민당이 인기이기 때문에 패통탄이 경제를 되살리지 못하면 친나왓 가문과 프아타이당도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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