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예상한 대로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토네이도
[김성호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재난영화는 명실상부 대중영화의 한 갈래다. 드라마, 액션, 코미디, 로맨스, 공포처럼 재난영화라는 구분만으로도 그 성격이 짐작된다. 대략적인 전개는 물론 연출자가 집중하는 바와 관객이 기대하는 바가 장르물 가운데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 잡는다. 때로 그 전형을 비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대를 충족시켜야 장르물이라 할 수 있겠다.
재난영화는 말 그대로 재난을 다룬다. 성격상 특수효과를 비롯한 첨단 기술력이 필요하기에 다른 여러 장르물 가운데서도 할리우드가 특별히 강세를 보인다고 하겠다. 할리우드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명작 재난영화를 제작해 왔다.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화재와 사고, 기후위기, 범죄 등 다양한 재난이 영화의 주된 과제로써 출몰했다. 이 같은 문제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공식이라 해도 좋겠다.
▲ 트위스터스 스틸컷 |
ⓒ 유니버설 픽쳐스 |
얀 드봉이 연출한 작품은 재난영화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얀 드봉이 누군가.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블록이 주연한 <스피드>로 1990년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정석이란 평가를 들었던 매력적인 연출자다. 폴 버호벤의 촬영감독 출신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가 첫 연출작에서 단박에 세계적 흥행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뒤 워너브라더스와 유니버설픽쳐스, 또 스티븐 스필버그의 지원을 한 몸에 받아 재난영화를 만드니, 그 작품이 바로 <트위스터>가 되겠다.
토네이도로 아버지를 잃은 딸(헬렌 헌트 분)이 기상학자가 되어 그를 해결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기본적인 얼개다. 토네이도는 말 그대로 '부모의 원수'인 끝판왕 역할을 맡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과학자 무리의 방해를 극복해야 한다. 재난 가운데 사랑과 우정이 싹트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재난영화지만 얀 드봉의 긴박감 넘치는 연출과 선 굵고 호소력 있는 이야기가 보는 이를 매료시키는 명작으로 남았다.
<트위스터>는 재난영화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로 남았다. 이번에 리부트되기까지 여느 아류작이 쉬이 등장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대 자본이 투입돼야 가능한 연출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포세이돈 어드벤쳐> 이후 침몰하는 배와 탈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왔고, 또 <타워링> 이후엔 불타는 빌딩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하게 영화화됐다. 아직까지도 매년 여러 편의 아류작이 나오는 <죠스>야 두말할 필요가 없을 테다. 그러나 <트위스터> 이후엔 어떤 영화가 있었는가.
그리하여 <트위스터스>는 또 다른 토네이도 이야기가 아닌 리부트 작으로 태어났다. 가뜩이나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 서비스와 드라마로 유망한 작가진이 옮겨가며 공 들인 오리지널 스토리 기근을 겪던 할리우드다. 2010년대부터 리부트 작품에 관심을 보여온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트위스터>를 가만히 두었을 리 만무하다. 그 결과로써 2020년 제작이 예고됐던 <트위스터스>는 내정됐던 연출자 조셉 코신스키가 <탑건: 매버릭>에 매여 제작이 지연되다 끝내 엎어지게 된다.
속편과 리부트 사이, 비슷하고 다른 것
그렇다고 프로젝트를 완전히 엎을 것은 아니었는지 새로 제작에 돌입한 것이 정이삭 감독의 <트위스터스>가 되겠다. 프로젝트가 취소됐던 2021년 <미나리>로 할리우드의 기대주로 떠오른 정이삭에게 메가폰이 돌아갔고, 지난해 동안 제작에 돌입했다. 정이삭이 액션연출, 그것도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에 적합한가를 두고 우려가 나온 건 당연한 일이다. <트위스터스>를 두고 오로지 장밋빛 기대만 있었던 건 아니란 뜻이다.
<트위스터스>는 <트위스터>의 속편과 리부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캐릭터가 연결되지 않으므로 속편이라 부르기도 모호하고, 그렇다고 같은 이야기를 리메이크한 것도 아니며, 새로 출발시킬 시리즈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부터가 그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케이트(데이지 에드가-존스 분)를 위시한 일군의 대학원생이 토네이도를 쫓는다. 애인 젭(대릴 매코맥 분)을 비롯해 애디, 프라빈, 하비가 그녀와 한 팀을 이루고 있다. 토네이도의 생성과 소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여전히 베일에 싸인 가운데, 그 생성을 막고 소멸을 가속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일상을 파괴하는 토네이도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내겠다는 선의가 이들을 움직인다.
▲ 트위스터스 스틸컷 |
ⓒ 유니버설 픽쳐스 |
문제는 그 토네이도가 이들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놈이었단 사실이다. 토네이도는 케이트와 하비를 제외한 팀원 전부를 날려버린다. 가장 사랑했던 애인과 친구들까지 단번에 앗아간 토네이도, 케이트와 하비의 과거가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이룬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뒤 토네이도를 추적하게 된 <트위스터>의 사례가 애인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기상학자의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관객은 그와 같은 트라우마가 다시 동력으로 전환될 것임을 짐작한다. 상실과 공포, 분노와 책임감, 그 사이를 오가는 재난영화의 전형이 굳건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5년 뒤, 케이트는 뉴욕 기상청 직원이다. 데이터를 보고 태풍의 경로 등을 예상하는 게 그녀의 일이다. 애인과 친구를 잃어버린 그녀에게 현장에서 토네이도를 추적하던 과거는 잊고 싶은 옛일이 된 지 한참이다.
그녀 앞에 옛 동료 하비(안소니 라모스 분)가 나타나 함께 토네이도를 추적하자고 제안한다. 저 또한 과거의 일로 고통받고 있다며, 회피하기보단 문제와 맞서 다른 이를 구하자고 말한다. 그렇게 케이트는 하비와 팀을 이뤄 토네이도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클라호마로 향한다.
▲ 트위스터스 스틸컷 |
ⓒ 유니버설 픽쳐스 |
<트위스터스>를 과거 명작 <트위스터>에 빗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헬렌 헌트라는 명배우의 열연은 물론이고, 연출자 얀 드봉의 솜씨는 당대는 물론 기술이 크게 발달한 현대 할리우드 연출 판에도 귀감이 될 만하기 때문이다. 드물게 귀한 재능들이 깃든 <트위스터>는 아버지를 잃고 토네이도를 추적하는 기상학자와, 토네이도를 뒤쫓는 괴짜 과학자들, 그들 사이의 온갖 문제들을 무기로 단단하고 선명한 장르영화로 태어났다.
<트위스터스>는 서사의 측면에서 <트위스터>보다 전혀 나아갔다고 할 수 없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배경만 조금 다를 뿐이지 기승전결 전부에서 기원이 된 작품의 흔적이 역력하다. 두 주인공이 키스하는 결말이 사랑의 확인까지 나아가지 않은 채 매듭지어지는 것 말고는 뚜렷한 차별점이 보이지 않는다.
얀 드봉의 감각적인 연출에 비해 정이삭의 솜씨 또한 전형적이고 투박하게만 느껴진다. <미나리>와 <트위스터스>는 제작비와 배우뿐 아니라 속도감과 규모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데, 그 사이를 메울 만한 감독의 역량을 찾아보기 어렵다. 앞서 <트위스터>가 있었기에 토네이도라는 설정을 택했다는 것만으로는 특별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또 문제에의 접근법을 달리 해야 했을 텐데, 영화는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며 새로움을 빚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영화 속 많은 장면이 예상한 그대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과학이 자본의 첨병으로 쓰이는 모습을 악역처럼 그리는 건 이제는 너무나 흔한 설정이 아닌가. 어떠한 변주도 없이 그를 주요한 영화적 설정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속편이자 리부트로 출발한 <트위스터스>의 안이함을 알도록 한다.
▲ 트위스터스 포스터 |
ⓒ 유니버설 픽쳐스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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