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최첨단 시뮬레이터 만들다 '중식당' 차려 대박난 부부 [테크토크]
컴퓨터 과학 박사 전문성을 살려
세계 최초 요식업에 데이터 도입
미국에는 '판다 익스프레스'라는 중식당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자장면, 짬뽕을 파는 중국요릿집이 있듯이, 이곳은 미국식 중화요리인 오렌지 치킨, 볶음면 따위를 파는 프랜차이즈 식당입니다.
오늘날 맥도날드, 버거킹 등 미국 최대의 패스트푸드 체인과 어깨를 견주는 이 기업은 앤드루 청, 페기 청 부부가 설립했습니다. 이들 중에서도 앤드루 청의 아내인 페기 최고경영자(CEO)의 공헌이 두드러집니다.
페기 CEO는 원래 미군을 위한 최첨단 무기를 연구하던 컴퓨터 공학자였지만, 자기 전문 분야를 '요식업'에 접목해 수조원대 부를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전투기 시뮬레이터 만들던 컴퓨터 박사, 중식당 차리다
페기 CEO는 1960년대에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계 이민 2세입니다. 그는 1970년대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방위산업 대기업인 맥도널 더글라스(현 보잉)에 취직했습니다. 컴퓨터 과학자인 그는 이 회사에서 미 공군을 위한 최첨단 전투기 시뮬레이터를 개발했지요.
페기 CEO의 인생은 이후 아무도 예상 못 한 방향으로 전환합니다. 남편 앤드류 청과 함께 식당 사업에 뛰어든 겁니다. 그것도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저렴한 재료를 빨리 볶아 내놓는 미국식 중화요리 패스트푸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한 페기 CEO의 도박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되돌아왔습니다. 부부가 차린 '판다 익스프레스'는 이후 수십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현재는 미국 제일가는 프랜차이즈로 거듭났습니다. 페기 CEO는 수조원대 순자산을 보유한 미국의 대표 부자 중 한 명입니다.
세계 최초의 POS 도입…요식업을 '빅데이터'로
컴퓨터 과학자였을 뿐 식당 경영과는 아무 연이 없던 페기 CEO는 어떻게 단기간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요. 그의 성공 비결은 'IT 시스템'에 있었습니다. 사실 판다 익스프레스는 세계 최초로 POS(포인트 오브 세일 시스템·포스기)를 도입한 기업 중 한 곳입니다.
IBM이 최초의 포스기 시스템을 구축하던 시점인 1974년, 페기 CEO는 이미 자신이 직접 만든 포스기를 모든 판다 익스프레스 매장에 지급했지요. 덕분에 판다 익스프레스는 세계 최초의 포스기 도입 요리점이자, 세계 최초의 '빅데이터' 기업이 됐습니다.
즉, 포스기에 기록된 매출 데이터로 소비자가 어떤 메뉴를 선호하는지, 무슨 식자재를 더 많이 구입해야 낭비를 줄일 수 있는지 등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오늘날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은 각각 IT 팀, 데이터 분석팀을 두고 이런 경영 효율화에 힘쓰는 게 당연하지만, 아직 PC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1970년대엔 그야말로 급진적인 경영 전략이었습니다.
페기 CEO의 선견지명 덕분에 판다 익스프레스는 신속하게 몸집을 불리면서도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점포를 늘린 대다수의 요식업체가 품질·마진 저하 등 문제를 겪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지요.
식당 경영도 '하이테크' 될 수 있어
탁월한 IT 팀이 식당 경쟁력을 강화한 사례는 판다 익스프레스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치킨 햄버거 프랜차이즈로 유명한 '칙필레'도 훌륭한 IT 팀을 보유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사는 각 지점의 매출 데이터를 자체 전산 시스템으로 처리하는데, 높은 효율성과 안정성을 갖췄다고 평가받습니다.
오늘날 많은 대기업이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데이터를 관리하지만, 칙필레는 여기에 더해 각 지점에서 스스로 설치 가능한 엣지 컴퓨팅 클러스터를 개발했습니다.
이 컴퓨팅 클러스터는 칙필레 지점 내 모든 스마트 기기, 즉 드라이브 스루의 결제 장치, 주방의 그릴이나 감자튀김기 내부 온도 측정 장치 등과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덕분에 칙필레는 수만 대의 스마트 기기가 보내오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더욱 균일하고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저렴하게 내놓을 수 있습니다.
요식업이라는, 어찌 보면 테크와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업 영역에서도 IT와 데이터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특히 훌륭한 전산 기술을 보유한 요식업체들은 '실용적인' 테크를 지향합니다. 규모는 작지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팀을 꾸리고, 최신식 기술보다는 유연성과 비용 통제가 탁월한 오픈소스를 택합니다.
페기 CEO는 이런 요식업계의 IT 시스템을 '로우테크와 하이테크의 결합'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과거 로스앤젤레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주방의 기술은 구식이지만, 식당 관리 체계는 언제나 하이테크여야 한다"라며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 가장 많이 팔리는 게 무엇이고 덜 팔리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방법,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제공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방법이 모두 관리 체계에 속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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