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이 협조했다” 마약조직 폭탄 진술과 ‘수사 외압’ 논란

김판 2024. 8. 1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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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서 수사팀, ‘외압’ 주장
이종호 녹취록에 ‘외압 당사자’ 등장하며 논란 확대
국회 행안위, 20일 청문회
관세청 “마약조직의 전형적 수법”
지난해 마약 사건을 브리핑하는 백해룡 경정의 모습. 그는 당시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을 맡고 있었다. 연합뉴스


지난해 발생한 말레이시아 조직의 마약 유통 과정을 수사하던 경찰은 유통책들로부터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후 경찰은 세관을 향해 수사를 확대했다. 하지만 이를 마약 조직의 ‘전형적인 물귀신 수법’으로 판단한 관세청은 경찰 브리핑에서 세관 조직이 거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관련 브리핑을 연기하라거나, ‘세관’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는 경찰 지휘부의 지시가 내려왔다는 주장이 나왔다. 세관 직원들이 경찰서를 직접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검찰은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여러 차례 반려시켰다.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 백해룡 경정을 비롯한 수사팀은 이런 정황들을 ‘수사 외압’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백 경정에게 전화를 걸었던 경찰 고위 간부(조모 경무관) 이후 채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된 ‘이종호 녹취록’에 등장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종호씨는 김건희 여사가 관련된 주가 조작 사건에서 계좌 관리를 맡았던 인물이다.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과정에서 야권이 ‘키맨’으로 지목한 인물이 또 등장하자 수사 외압을 의심하는 시선에 힘이 실렸다. 이씨는 지난해 8월 공익제보자인 김규현 변호사와의 통화에서 조 경무관을 언급하며 “서울 치안감. 별 두 개 다는 거. 전화 오는데 별 두 개 달아줄 것 같아”라고 언급했다.

이를 계기로 이번 의혹에 정치권도 가세했다. 야당은 이종호 녹취록에 등장한 경찰 고위 간부를 근거로 ‘정권 차원의 수사 외압’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경찰판 채해병 사건’이라는 명칭도 붙었다. 수사 외압을 폭로한 백 경정은 당시 서장으로부터 “용산이 걱정하고 있다”는 발언을 들었다는 주장도 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오는 20일 세관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청문회를 연다. 국민일보는 청문회를 앞두고 그간 제기된 의혹과 쟁점들을 정리했다. 수사 외압을 폭로한 백 경정과 관세청의 입장을 모두 살펴봤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백해룡 형사2과장이 지난해 10월 10일 말레이시아 마약 밀매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①마약 유통책들은 어떻게 공항을 무사통과했나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은 검거한 말레이시아 국적의 마약 유통책들로부터 “세관이 연루돼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수사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약사범들의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굳이 허위 진술을 할 동기도 찾지 못했다. 이에 수사팀은 구속된 유통책들과 함께 공항으로 가 직접 현장조사까지 벌이며 이들의 입국 과정 전반을 검증했다. 유통책들은 현장 검증에서 자신들이 들어온 경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자신들을 뒤에서 지원한 세관 직원들도 지목했다. 경찰은 ‘세관 연루’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 수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붙잡힌 유통책들의 경찰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총책이 미리 준비해 둔 옷을 입게 한 뒤 사진을 찍으며 “한국에 있는 보스에게 보내면 사진이 세관에 전달돼 세관 직원들이 옷을 보고 너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실제 한국 세관 직원 2명의 사진을 위챗 채팅방에 올렸다. 유통책들을 ‘안내’해 줄 세관 직원들이라고 했다. 유통책들은 보스의 말을 믿고 온몸에 마약을 감은 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심사도 순조롭게 통과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공항 세관도 이미 섭외가 돼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지난해 1월 27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유통책들은 공항에 도착하니 사진으로 봤던 세관 직원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고, 이들의 안내를 받아 입국장으로 향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마약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화는 오고 가지 않았다. 다만 사전에 협조가 돼 있었기 때문에 세관 직원의 도움을 받아 공항을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는 게 이들의 진술이다. 게다가 당시 이들이 탄 항공편은 ‘일제검역’ 대상으로 지정돼 있었다. 이에 따라 반드시 검역구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세관 직원들의 도움으로 검역을 거치지 않고 세관 구역으로 바로 나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관세청은 “마약 조직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마약 유통책을 포섭할 때 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세관 직원을 매수했다’는 식으로 속인다는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실제로 유통책들은 세관 직원들이 섭외돼있었다고 믿고 그렇게 진술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또 유통책들로부터 ‘매수’ 당한 것으로 지목된 세관 직원들의 실제 동선이 진술과 모순되는 점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유통책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이들을 인솔한 혐의를 받는 세관 직원 A씨의 경우 입국 당일 연차 사용 중이었다. 관세청은 A씨의 GPS와 사진기록 등을 토대로 실제 다른 지역에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또 공항은 보안증을 찍어야 하는 출입문이 많아 기록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유통책들의 진술과 실제 출입 기록상 동선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세관의 조력 없이 마약을 몸에 지닌 채 유유히 빠져나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관세청 관계자는 “마약 사범을 놓친 것은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입국할 때는 출국할 때와 달리 100% 수색을 하지 않는다”면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출국할 때 온몸을 더듬으며 수색하는 과정 때문에 입국 과정에 대해서도 착각하고 계신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출국 과정을 무사히 통과했다면 입국 시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②논란 종지부 찍을 ‘직접 증거’는 없나

세관 직원들이 도와줬다는 진술의 진위를 확인하려면 공항 내부 CCTV를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저장 용량 등의 문제로 영상은 통상 2~3개월 정도만 저장된다고 한다. 경찰이 세관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던 지난해 9월에는 이미 공항 내부 CCTV가 지워진 상태였다. 경찰이 CCTV를 확보해 복원을 시도했지만 복원이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났다.

세관 직원들의 금전적 거래 여부도 주요 단서가 될 수 있다. 경찰도 피의자로 입건한 세관 직원과 그들의 직계 가족에 대한 금융거래 내역을 확인하기 위한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구체적 진술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기각했다. 경찰은 “마약 유통책들은 하부 조직원들에 불과해 조직 총책과 세관 직원들 사이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경찰은 다른 가족 명의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계좌를 폭넓게 들여다 봐야 한다고 봤다. 반면 이를 기각한 검찰은 ‘과도한 강제수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후 피의자 조사를 실시하면서 일부 본인 계좌를 확인했지만 별다른 수상한 정황은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또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세관 직원 B씨가 휴대전화를 수차례 초기화해서 사실상 ‘깡통 폰’을 만들어 제출한 것도 의심스럽게 봤다. 이에 대해 관세청은 “개인 사생활과 관련한 내용이 많아서 삭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경찰은 검찰의 영장 반려 등으로 인해 수사가 방해를 받았다고 보고, 그 배경에 수사 외압이 존재할 가능성을 의심한다. 반면 관세청은 “1년간 압수수색 5회, 현장검증 5회, 피의자 조사 10회, 참고인 조사 9회 등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세관 직원 7명을 입건했으며, 수사는 아직 종결되지 않은 상태다.

③ 관세청은 왜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였을까

관세청은 지난해 10월 경찰의 최초 브리핑을 앞둔 시점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관세청은 “마약을 적발하는 세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가 현저히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언론보도에 신중을 기해 달라고 기관 차원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마약 사건의 약 80%(현품 기준 최근 5년 평균)를 적발·검거하고 있는 세관당국의 공신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청이 다소 이례적인 방식으로 기민하게 대응한 측면도 있다.

수사팀은 마약이 공항을 통해 밀반입됐다는 내용과 향후 통관 과정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다는 정도를 보도자료에 담고자 했지만 경찰 지휘부는 해당 내용을 삭제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항을 통한 밀반입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고, 통관 과정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다는 것은 수사 과정에서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지휘부는 굳이 ‘세관’ 관련 언급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게 수사팀 주장이다.

또 경찰 중간 브리핑을 앞둔 지난해 10월 6일 인천세관 통관2국장 등 세관 직원 4~5명이 이른 아침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을 찾아와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 당시 세관 측은 “관세청장께서 화가 많이 나셨고 세관장을 많이 질책하셨다” “관세청장 지시로 세관장은 서울경찰청장 만나러 갔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관 관련 언급은 제외하면 안 되느냐”고 재차 물었다고 한다. 같은 날 서울청 간부가 직접 영등포서에 찾아와 ‘사건을 이첩하겠다’는 서울청 지휘부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수사팀은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세관 수사에 대한 외압으로 느껴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백 경정은 경찰 지휘부와 관세청장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고광효 관세청장이 과민 반응하면서 일을 키운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기재부 세제실장 등을 지내고 지난해 7월 관세청장에 임명된 고 청장이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기관이 구설에 오르는 것을 막으려고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얘기다.

④수사팀이 느꼈다는 ‘외압’ 실체 규명될까

의욕적으로 관련 수사 범위를 확대하며 세관 연루 의혹을 들여다보려던 수사팀은 곳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수사팀이 주장하는 외압의 정황들이 백 경정의 통화 녹취록 등에 남아 있기도 하다.

백 경정은 지난해 9월 20일 당시 김모 영등포서장(총경)으로부터 “이 사건을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브리핑을 연기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 총경은 올해 초 대통령실 자치행정비서관으로 파견됐다.

또 지난해 10월 5일 조모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으로부터도 전화를 받았다. 백 경정은 조 경무관으로부터 “세관 얘기가 안 나오게 해주시는 거죠?” “관세청도 국가기관이고 경찰도 국가기관인데 기관끼리 싸우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정부를 엄청 공격할텐데 우리가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 등의 발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관련 녹취록이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조 경무관은 지난달 29일 열린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인천공항 세관장으로부터 사실 확인을 부탁받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영등포 형사과장은 오해를 크게 하고 있었고, 사실이 아닌 내용이 언론보도 나는 것을 막겠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부탁했다”며 “외압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관세청과 경찰 지휘부 사이에서 세관 연루 의혹과 관련해 어떠한 의견과 지시들이 오고 갔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백 경정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실이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 야당은 오는 20일 청문회에서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된 이들을 대상으로 정확하게 어떤 말들이 오고 간 것인지, 대통령실 관계자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을 방침이다.

청문회 증인으로는 백 경정과 수사팀원, 경찰 지휘부 외에도 고광효 관세청장을 비롯한 세관 관계자 등 총 28명이 채택됐다. 여야는 말레이시아 유통책들 진술의 진위 여부, 세관 수사의 필요성, 보도자료 삭제 등 구체적인 외압 경위 등을 두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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