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사 찾아와 부임인사
[김삼웅 기자]
▲ 산청군 산천재에서 바라 본 눈내린 지리산 천왕봉 |
ⓒ 김수종 |
또 경상도관찰사 이몽량이 남명을 천거하면서 전생서주부, 사도사주부에 임명하였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사관은 남명에 대해 "조식은 사람됨이 맑고 절개가 곧아 예법으로 몸을 단속하고 영욕·이달로써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며 존행이 뛰어나서 세상에 이름이 났다."(주석 1)라고 평했다.
1553년(명종 8)에는 남명을 예빈시주부에 임명하였다. 이때 사관은 남명에 대해 "천성이 강개하고 정직하여 세상 따라 부앙하려 하지 않았고, 몸을 깨끗하게 가져 속된 사람과 말할 때는 자신을 더럽힐까 두려워하며 뒤로 돌아보지 않고 떠났으며 국가에서 누차 초빙하였으나 응하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주석 2)
조정의 신료들 뿐만 아니었다. 관찰사나 감사가 되어 부임하면 으레 남명은 찾아왔다. 존경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더러는 그의 남다른 행적을 비아냥대기도 했다.
당시 감사로 부임하는 사람들이 임지에 도착해서 대개 남명을 찾아 인사를 드렸던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다. 이양원이 경상도의 관찰사가 되어 남명을 방문하였다. 남명은 주지하다시피 성성자라는 방울을 치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칼을 차고 다녔다. 이양원은 남명이 칼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곧 칼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칼이 무겁지 않습니까?" 하였다.
무엇 때문에 이같이 쓸데없는 일을 하는가 하고 은근히 조롱하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 남명은, "무엇이 무거우리오? 내가 생각하기에는 상공의 허리 아래 금대(金帶)가 무거울 것 같소"라고 뼈 있는 말을 하였다. (주석 3)
그는 소인배들을 경멸했다. 특히 높은 권좌를 차지한 소인배와는 만남 자체를 싫어했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할 때 을사사화를 일으켜 영의정이 된 이기(李芑)가 남명에게 만나자는 서한을 보내왔다. 세간에서는 윤원형과 이기를 이흉(二凶)이라 불렀지만 권력서열 2인자의 면담 요청에 남명은 냉담한 답변을 보냈다.
▲ 산천재 남명 조식선생이 61세에 찬왕봉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지었다는 산천재 |
ⓒ 하주성 |
나는 일찍이 서로 동떨어진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관계로 손을 잡고 한번 크게 웃어 볼 기회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복고가 본도의 감사로 부임해 왔을 적에 여러 번 편지를 보내 만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신분으로 어찌 감사를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옛 사람은 네 조정에 걸쳐 벼슬하였지만 조정에 겨우 사십 육일을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상공께서 벼슬을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내가 갓건을 쓰고 안강리에 있는 댁으로 찾아가 만나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거절하였다. (주석 5)
남명의 몸가짐이 이러했다. 예나 이제나 권도에 선을 대고자 줄을 서는 세태와 비교하면 참 선비의 모습이다.
<단성소>사건으로 한바탕 회오리 바람을 겪은 후에도 천거는 이어지고, 그는 한 번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산천재에 사는 동안에도 임금의 사신이 일곱 번이나 찾아왔다고 한다. <덕산우음>의 시에 나타난다.
우연히 사륜동에 살게 되었는데
오늘 비로소 알았네. 조물주가 속이는 줄
공연산 전각을 보내 은자의 숫자나 채우기
나를 부르는 임금의 사신이 일곱 번이나 왔네. (주석 6)
주석
1> <태중실록>, 권 14.
2> 앞과 같음.
3> 윤호진, <남명의 인간관계>, 96쪽, 경인문화사, 2005.
4> 앞의 책, 98쪽.
5> 앞의 책, 98~99쪽.
6> <남명집>.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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