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 판결 뒤집으려면 더 신중해야"

김정연 2024. 8.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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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 장면.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중앙포토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선고된 사건의 결론을 뒤집을 땐 항소심의 증거조사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돼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2년 6개월형을 받은 A씨 사건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2011년 ‘수익성이 아주 좋은 유망한 물류사업에 8000만~9000만원을 투자하면 1000만원을 줄 수 있다’는 등의 제안을 해 피해자들로부터 31억여 원을 받았다가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2018년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빌린 돈으로 차를 구입하지 않고 다른 빚을 돌려막거나 유흥비‧도박자금 등으로 쓰고 변제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봤지만, A씨는 ‘차량 구입 용도로 돈을 빌린다고 한 적이 없고, 수익을 주겠다고 한 적도 없다’며 사기 혐의를 부인했다.

1심은 A씨의 신청으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배심원 7명은 모두 A씨가 무죄라고 평결했고 A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항소심 서울고법은 이를 뒤집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피해 사실의 신빙성이 인정되고 A씨가 다른 채무를 돌려막은 점 등이 인정돼 죄질이 불량하고 금액이 큰 점 등을 고려했다”는 취지였다. 재판 과정에서 추가 증인들에 대한 증거 조사도 이뤄졌다.


대법 “배심원 ‘전원일치 무죄’, 이유 없는 추가 증인신문 안돼”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의 무죄 평결을 뒤집은 고법의 판단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원심(항소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 1심에서 배심원들이 무죄라고 만장일치 평결한 경우, 증거 선택 및 사실인정에 대해선 1심 판단을 더 존중해야 한다”며 “항소심에서 추가 증거조사 필요성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항소심은 형사소송규칙 제156조의5 제2항의 규정 취지와 내용에 유념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형사소송규칙 156조의5는 항소심의 증인신문이 가능한 경우를 정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①1심에서 타당한 사유로 조사되지 못한 증인 ②항소심에서 새 증거가 발견돼 증인신문을 부득이 다시 해야 하는 경우 ③그 밖에 항소의 당부 판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증인신문이 가능하다. 대법원은 “③항의 ‘그 밖에 필요한 경우’는 포괄적 사유가 아니라 일부 예외적 사유만 규정하는 것으로 좁게 해석해야 하고, 이 사건에선 새롭게 증인신문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잘못”이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항소심 지나친 제한” 우려 목소리도


이번 판결은 ‘1심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만장일치 무죄 사건의 경우, 항소심에서 추가 증거조사 없이 동일한 기록을 재검토하는 것만으로 국민참여재판의 결론을 바꾸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존 판례에서 더 나아간 판결이라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참여재판의 결론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 및 무죄추정 원칙을 근간에 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내비치기도 했다. ‘배심원의 평결과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아니한다’는 현행법(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과 충돌한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법조인은 “사실상 항소심까지도 그대로 따르라는 것 아니냐, 항소심의 의미가 없다” “직접 판단하는 법관의 재량으로 증인 신문을 할 수도 있는데, 물어보지도 못하게 하는 건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항소심 재판부의 재량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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