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 연임 포기...기시다 정권 3년 숫자로 살펴보니[글로벌포커스]
"정치 불신을 초래한 사태에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는 9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총리직 연임 도전을 포기하면서 내놓은 발언이다. 이에 따라 기시다 총리는 9월 말 임기가 끝나면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임기 초반만 해도 지지율 60%대, 단독 과반 의석 등 기세를 자랑하며 '황금기 3년'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를 받았지만, 시작에 비해 끝은 좋지 못한 모양새다. 경제정책, 외교정책 등에서 이룬 성과에도 불구하고 통일교 유착, 비자금 스캔들 등 잇따른 논란이 국민들의 외면으로 이어진 탓이다. 기시다 정권의 지난 3년을 숫자로 살펴본다.
100=일본의 '제 100대 총리'
기시다 총리는 2021년10월 일본의 '제100대 총리'로 취임했다. 재임 일수는 불출마 의사를 공식 발표한 지난 14일 기준으로 1046일을 기록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9월 말 임기 기준으로는 1093일을 기록하게 된다. 일본에서 전후 총리 35명 가운데 재임일수가 1000일을 넘어선 것은 기시다 총리가 8번째다.
특히 기시다 총리의 불출마 결정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 이후 이뤄져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주요 7개국(G7) 정상 가운데 임기 1000일이 넘은 인물은 기시다 총리 외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총리, 바이든 대통령 정도다. 다만 공교롭게도 1000일 이상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며 국제 질서를 이끌어온 이들의 자국 내 정치적 입지는 현재 모두 좋지 않다.
28='퇴진 위기' 지지율...7월 28%
기시다 총리의 연임을 가로막은 것은 바로 퇴진 위기인 '20%대'까지 곤두박질친 지지율이다. 집권 초기만 해도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60%대를 웃돌았다. 취임 직후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자민당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한 데다, 이듬해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압승하며 장기집권의 길이 열렸다는 평가들마저 쏟아졌다. 이때까지도 내각 지지율은 60%대 중후반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 유세 중 발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망 사건은 지지율 내리막길의 시작이 됐다. 이후 총격범 수사 과정에서 자민당 주요 정치인들과 통일교 사이의 유착관계가 밝혀지며 지지율이 30% 밑으로 처음 곤두박질친 것이다. 이에 기시다 내각은 지난해 미일 정상회담, G7 정상회의 등 외교적 성과를 앞세워 재차 지지율을 끌어올리고자 했으나, 이 또한 여의찮았다.
특히 작년 말 터진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은 결정타로 작용했다. 이후 주요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최근 10개월가량 퇴진 위기 수준인 20%대에 머무르고 있고, 보수 자민당 텃밭이나 다름없던 지역 보궐 선거들에서도 연이어 패배하며 얼어붙은 민심을 확인했다. 기시다 총리로선 당내 입지 측면에서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 7월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총리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28%에 그친 반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4%를 기록했다.
4만2224.02=日 증시는 랠리, 닛케이지수 사상 최고치
다만 기시다 내각은 경제정책 면에서는 일부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저, 기업 실적 호조 등에 힘입어 사상 최고 랠리를 이어간 일본 도쿄증시가 대표적이다.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평균지수는 지난 7월11일 4만2224.02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이는 34년 전 버블경제 수준을 뛰어넘은 랠리다. 엔저 추세 속에 해외 투자자들이 몰리자, 안팎에서 "잃어버린 30년이 끝났다"는 평가들도 쏟아지기도 했다. 도쿄증시는 이달 초 확산한 미 침체 우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으로 한때 급락하는 등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으나, 다시 장중 3만7000선을 안정적으로 회복한 상태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이 이끈 내각이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 기반을 마련했다고 자평해오기도 했다.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에 임금 인상을 독려하면서 일본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3년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 올해 3월에는 17년만의 금리 인상을 통해 오랜 기간 이어졌던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도 마침표를 찍었다.
32=외무상 출신으로 외교적 수완...임기 중 32개국 찾아
외무상 출신인 기시다 총리는 외교 분야에서 자신감을 보여왔다. 내각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 미일 관계 강화, G7 정상회의 개최 등을 대표적 성과로 내세운다.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불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등으로 국제정세가 불안정한 가운데서도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외교적 수완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차기 총리 잠룡 중 한명인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은 지난주 기시다 총리 불출마 선언 직후 성명을 통해 "(기시다 총리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높였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총 32개국을 방문했다. 국가별로는 미국을 8회나 찾았다. 올해 4월에는 9년 만에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찾아 의회 합동연설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의 패권에 대응해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관계 구축에도 힘썼다. 인도, 인도네시아는 각각 3회 찾았고, 싱가포르도 2회 방문했다. 한국의 경우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던 2023년 5월, 한·중·일 정상회의가 진행된 지난 5월 등 두 차례 방한한 것으로 확인된다.
2=日 방위력 강화...방위비 'GDP 대비 2%'로 늘려
현지 언론들은 기시다 총리가 재임 기간 일본의 방위력을 대폭 강화하며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을 주요 성과로 꼽는다. 이는 그간 취임한 내각마다 주요 현안으로 꼽아온 오랜 숙제다.
기시다 내각은 2022년 ‘안보 3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정비계획) 개정을 통해 방위력 증강을 본격화했다. 이에 따라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끌어올리면서 군사 대국화를 막기 위해 1976년 이후 이를 GDP 대비 1% 이내로 유지해 온 원칙을 폐기했다. 5조엔 수준이었던 관련 예산은 올해 8조9000억엔까지 확대됐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집단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헌법 해석을 채택한 전임 아베 정부에 이어,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능력까지 구체화하도록 법을 정비했다. 지난해 말에는 다른 나라와 개발하는 차세대 전투기를 제3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모두 일본이 오랜 기간 유지해온 평화헌법상 ‘전수방위’(공격받았을 때만 최소한의 방위력 행사) 원칙에서 벗어난 조치다. 특히 기시다 총리는 앞서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이러한 방위력 강화에 대한 공개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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