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제빵왕 김탁구' 동네…청주는 왜 멈춰있나[노잼도시]

윤슬기 2024. 8.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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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 도시의 재미를 찾아서]
<2>'노잼도시' 프레임에 갇혀버린 도시들
④이제는 옛날 관광지된 수암골 벽화마을
'노잼도시' 밈에 아차한 청주
빵 축제 열고 '캠핑성지' 만들기 분주

편집자주 - 재미없는 도시, 이른바 '노잼도시'를 아시나요? 놀거리·볼거리·즐길거리가 부족해 현지인은 심심하고 타지역에서는 방문하지 않는 도시를 말합니다. 2019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러 도시를 두고 노잼도시라는 호칭을 붙였는데요. 재미로 시작된 일종의 '밈'이 대전, 울산, 광주, 청주 등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꿀잼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로 이어질 정도입니다. '노잼' 오명을 쓴 도시는 정말 재미없고 따분한 곳일까요? 도시를 재미있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와 공간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자 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보여도 예전에 '김탁구' 찍을 때는 입구 빵집 앞에 40~50m씩 사람들이 줄을 서고 그랬다고."

청주 토박이로 수암골 통장을 맡고 있는 60대 윤여정씨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벽화마을 주택들을 바라보며 수암골의 전성기를 회상했다. 그러나 지난달 22일 오전에 찾은 수암골에 외부인은 지역 재생 사업 공사를 위해 방문한 직원들과 공사 인부를 제외하고 기자뿐이었다. 드릴 소리가 멈추면 개 짖는 소리도 없이 바로 정적이 깔렸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했던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은 방문객이 현저히 줄었고 마을 벽화는 빛이 바래고 낡았다. 시의 지원을 받아 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 정비작업에 들어갔다. 사진=허영한 기자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에 드라마 촬영지임을 홍보하는 간판과 조각상이 설치돼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수암골은 6·25 때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주택이 그대로 보존돼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을 날렸던 동네다. 시청률 50%에 육박하는 '제빵왕 김탁구(2010)', '카인과 아벨(2009)' 등 2010년대 드라마 히트작들은 수암골을 거친 것이 많다. 여기에 아기자기한 벽화까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청주 최고의 명소로 손꼽혔다.

22일 청주의 대표적 관광지인 수암골의 모습. 사진=윤슬기 기자@

윤씨는 "사실 벽화마을 만들 때 관광객 때문에 시끄러워진다고 주민 반대도 있었지만, 어렵사리 벽화마을을 만들어서 사람 소리도 들리고 활력도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조용해진 마을에 대한 아쉬움이 한껏 묻어있는 대답이었다. 수암골 관광센터에서 만난 이갑순씨(70)는 "예전엔 베트남, 일본, 중국 여러 나라에서 고속버스 타고 단체 관광하러 오기도 했지만 이젠 옛날얘기"라며 "(외국인 관광객은) 요즘은 어쩌다 찾아오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수암골을 채우는 건 관광객 발걸음이 아닌 귀를 때리는 공사 소음이었다. 지붕 등 곳곳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라고 했다. 오래돼 붕괴위험이 있는 집들은 현대식으로 바꾸고, 벽도 새로 세워 벽화도 다시 그릴 것이라 했다. 2010년에 멈춘 동네를 바꾸는 작업이다.

청주 성안길의 모습. 건물 하나가 공실인 경우는 예삿일이었고 한 거리에서 1~2개의 상점을 제외하고 건물이 마주보고 공실이 되기도 했다. 사진=윤슬기 기자@

명성 잃은 수암골처럼…청주 시내 사정도 비슷

청주 시내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활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담배 제조 공장을 탈바꿈해 만든 문화제조창은 청주 임시시청, 첨단문화산업단지, 복합쇼핑몰, 동부창고 등이 밀집한 청주시의 '핫 플레이스'다. 이곳에서 만난 배윤나양(19)은 "그나마 팝업스토어도 열리고 하는 곳은 이곳이다. 5년 전만 해도 성안길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많이 죽었다"며 "노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은 대전 둔산동 등 가깝고 번화한 타지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김선우씨(30)도 "가벼운 데이트는 여기서 하는데, 놀러 나간다고 하면 대전이나 세종으로 간다"며 "공원도 없는 데다 시내도 정말 재미없다"고 전했다.

카페거리로 이름을 알렸던 성안길의 모습은 청주시민들이 전한 그대로였다. 기자가 방문한 날 기온이 33도로 더웠다는 점을 고려해도 걸어다니는 사람 찾기가 어려웠다. 일대 텅 빈 건물도 많았다. 건물 하나가 공실인 경우는 예삿일이었고 한 거리에서 1~2개의 상점을 제외하고 건물 전체가 마주 보고 공실이 되기도 했다. 한국부동산원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성안길 중대형상가(주용도가 상가 등인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 초과인 일반건축물)의 공실률은 전 분기 대비 2.6%포인트 오른 33.7%로 집계됐다.

어디서나 좋은 입지로 꼽히는 대학가 주변 상권도 청주에서는 예외였다. 충북대 정문 앞 대로변에는 중국요리점, 두루치기 음식점, 치킨집 등이 있었는데, 이를 제외하고 대학가 상권이라고 부르기 무색하게 썰렁했다. 청주의 문화유산 직지심체요절을 본뜬 '직지뼈해장국감자탕'이라는 음식점 간판이 청주라는 정체성을 알리고 있었다.

청주의 번화가에 속하는 성안길. 사진=허영한 기자

노잼도시 밈이 쏘아 올린 공…청주는 지금 변화 중

청주시는 도시의 활력 저하를 인지, 시민들에게 일상적인 재미를 되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청주에는 대전 못지 않게 유명 베이커리가 많다. 시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빵지순례(빵+성지순례)'와 카페투어 등이 유명하다는 점을 포착하고 관련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디저트베이커리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도농복합단지의 특성을 살려 '캠핑 성지' 조성도 다른 지자체보다 앞서 추진 중이다. 청주는 전국 최대 규모의 복합 캠핑장 설계를 진행 중이고, 2026년에 준공할 예정이다. 특히 일상에서 시민들이 쉽고 저렴하게 공연을 접할 수 있도록 소규모 공연장과 갤러리를 만들고 카약·패들보드를 즐길 수 있는 수상레저 체험장도 신설했다.

청주의 번화가에 속하는 성안길. 사진=허영한 기자

"재미란 결국 상대적인 것"…청주는 살기 좋은 곳

청주가 꿀잼도시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아직 와닿지 않는다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노잼'이라는 불만은 문화의 정점인 서울과 비교해서 나오는데, 서울과 가까운 청주의 지리적 특성상 비교되기 쉽다는 것이다.

청주 토박이이자 충북대에 재학 중인 '청잘알(청주를 잘 아는 사람)' 정현구씨(26)는 청주가 재미없는 이유를 서울과 비교해 랜드마크나 아이콘이 없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정씨는 "피크닉 할 한강이 없고, 서울과 달리 미술관도 부족하고, 이렇다 할 아이콘도 없다. 특징이 없으니 노잼도시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청주의 '노잼도시' 인식은 서울 출신 등 청주에 일하러 온 외지인들이 그들의 시선으로 청주를 재단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청주=노잼도시' 공식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충남 부여 출신으로 충북대에 재학 중인 박찬우씨(26)는 "그래도 청주는 살만한 곳"이라며 "성안길 등 놀러 다닐 곳도 있고 부여를 생각하면 여기는 정말 좋다"고 말했다. 충북 괴산에서 현장 학습차 문화제조창을 방문한 중학생들은 "청주가 안 좋은 것이냐, 괴산은 청주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라며 노잼도시 인식에 씁쓸해했다.

▶직전 기사 : 5성급호텔·복합쇼핑몰 0개…"광주엔 역사만 있지 핫플이 없다"

▶다음 기사 : 이찬원은 왜 울산서 노래를 부르게 됐나…지역축제만 1100개인데 '노잼'이라고?

청주=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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