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급 자리 줄이고 출장비 삭감…비상경영 선포하는 기업들, 왜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중간간부급인 ‘담당’ 자리를 줄이는 등 조직을 슬림하게 개편했다. 담당 중 임원이 아닌 10여명의 자리를 없앤 것이 핵심이다. 중복된 역할을 줄여 조직 다이어트에 나선 것.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임원이 아니지만 임원급 대우를 받았던 자리를 없애니, 회사로선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하자 재계가 허리띠를 졸라매며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비대해진 조직을 단순화하고,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 지출 항목도 재점검하며 조직 긴장감이 높이고 있다.
비상경영 선포하는 기업 늘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비상경영을 선포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특히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조직 슬림화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지난달 비상경영을 선언한 SK온은 최고관리책임자(CAO)와 최고사업책임자(CCO) 등 일부 C레벨 직책을 폐지하고, 성과가 미흡한 임원은 연중이라도 보임을 수시 변경하기로 했다. 11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낸 SK온은 흑자전환 달성까지 모든 임원의 연봉을 동결한다. 롯데지주 역시 이달부터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해 계열사별로 비용 절감 대책을 세우고 있다.
리더급 자리는 줄이지만 근무 강도는 높아지는 분위기다. SK그룹에선 올해 토요 사장단회의가 부활했다. 삼성은 지난 4월부터 임원 대상 주 6일제를 공식화했고, 이후 HD현대오일뱅크와 BGF리테일 등이 잇따라 도입하며 확산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7일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어 기존 경영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통상 9~10월 시작하던 내년 경영계획 수립도 이달로 당기기로 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인공지능(AI) 거품 논란과 중동 지정학적 불안 재확산 등이 더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HD현대 관계자는 “그룹 매출의 90% 이상이 수출에서 나와 글로벌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외출장, 비용 절감 위한 집중 타깃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긴축경영에 돌입하는 기업도 늘었다. 특히 해외출장은 비용 절감을 위한 집중 타깃이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 출장 인원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대외 환경을 고려해 불필요한 낭비 요인이 없는지 살펴, 꼭 필요한 실무진 위주로 출장단을 꾸릴 방침이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는 임원 해외 출장 시 비즈니스 대신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LG전자와 롯데케미칼은 기존의 출장 예산을 20% 축소하기로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특히 출장이 잦은 부서에서는 올해 출장비를 몇십억원 줄이겠다는 목표 액수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서 최고경영자(CEO)에게 보고하기도 했다”라며 “매년 관례로 가던 출장도 특별한 고객 미팅이 없으면 아예 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실 임차료와 운영비 같은 고정비를 줄이려는 노력도 이어진다. 올해 들어 사업구조 재편(리밸런싱)에 나선 SK그룹은 임차료 절감을 위해 계열사의 사무실 임대차 계약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LG화학의 일부 부서는 올해 사무용품 비용 결재선을 기존 팀장에서 임원으로 한단계 더 올렸다. 또 사무직을 대상으로 휴가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연차 100% 소진을 권고하며 연차수당 줄이기에 나섰다.
“직원들 생산성에 영향 미칠 수도”
재계에서는 이 같은 시도가 비용 절감 효과 자체보다는 조직에 위기 의식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한다. 다만 관성처럼 경비 절감을 위해 각종 혜택을 줄이고, 그 정도가 과할 땐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컨설팅 전문가 쉐인 코인은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 혜택을 줄이면 생산성에 영향을 미쳐 회사가 얻는 금전적 절감 효과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며 “회사는 비용을 어디에서 절감해야 할지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미국처럼 해고가 자유롭지 않으니, 위기를 맞은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 고정비 감축”이라며 “사업을 혁신하거나 새롭게 전략을 짜는 방향으로 직원들에게 드라이브를 거는 게 더 효과적인 위기 대응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선을·박해리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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