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유행어 된 '코코넛 나무'…그 뿌리는 '이단 경제학자 아버지'
"어머니는 제게 '너희들이 코코넛 나무에서 방금 떨어진 것 같니?'라고 말씀하셨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해 5월 백악관에서 열린 히스패닉 교육 관련 행사 연설 중 불쑥 이렇게 말했다. 당시만 해도 "뜬금없다"는 싸늘한 반응 탓에 해리스 부통령에겐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정작 대선 후보가 된 이후엔 그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밈(meme)'으로 떠올랐다.
해리스 부통령이 말한 '코코넛 나무'란 "모든 일엔 맥락이 있다"는 뜻이다. 도대체 이 발언은 어떤 연유로 나온 걸까? 해리스 부통령은 인도 이민자 출신 어머니와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런 자신의 배경과 가족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겨온 해리스 부통령이 이를 도드라지게 보이기 위해 '코코넛 나무' 얘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코코넛 나무'의 한 기둥인 해리스 부통령의 부친 도널드 해리스(85)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해리스가 인도계 혈통을 강조하다가 갑자기 흑인이 됐다"고 공격했을 때도, 해리스 부통령은 흑인 정체성을 내세우는 등 '아버지의 유산'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 父, 최초 흑인 종신교수된 "이단 경제학자"
도널드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 경제학자로 1972년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의 첫 흑인 종신교수가 됐다. 그는 '포스트 케인스주의'를 개발경제학에 적용한 대표적인 학자로 꼽힌다. "주류의 맹점과 잘못된 전제를 잘 파악하는 이단 경제학자"(이코노미스트) 등의 평가를 받는다.
그는 78년 발표한 『자본 축적 및 소득 분배(Capital Accumulation and Income Distribution)』에서 '청사진 책(book of blueprints)'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주류 사상과 달리 자본가들이 임금과 이윤 수준에 따라 청사진을 선택하고, 따라서 여러 균형 상태가 존재한다는 이론이었다. 도널드는 이 책의 서두에 "카멀라와 마야(카멀라 해리스의 여동생)에게 (헌정한다)"고 적었다.
98년 도널드 교수는 학계에서 은퇴한 후 자메이카로 돌아가 경제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약 30년간 공항 민영화, 기업 세금 감면, 법인 토지 등록제 등을 자메이카 정부에 권고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이 기간 자메이카의 국가 부채가 크게 감소했고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도널드 교수의 자문을 받았던 퍼스벌 제임스 패터슨 전 자메이카 총리는 "오늘날 우리의 경제 개선은 상당 부분 도널드의 산업 정책에서 확립된 원칙과 우선순위에 기초했으며, 기대했던 결실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 받아 도널드 교수는 2021년 국가 훈장까지 받았다.
"어린 딸에게 빈국의 빈부격차 설명"
해리스 부통령 역시 이런 부친의 영향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의 연설문에서 곧잘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교수의 글은) 복합명사나 문장이 거의 없고 피상적인 이론을 다룬다"며 "카멀라의 '말비빔(word salad·관련 없는 단어들이 섞여 알 수 없는 말)' 연설을 지적한 공화당원들은 도널드 교수의 글에서 선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WP는 도널드 교수의 측근을 인용해 "도널드는 늘 저개발 지역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그것이 해리스 부통령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다만 현재 이들의 부녀 관계는 불분명하다. 해리스 부통령은 모친인 샤말라 고팔란이 도널드 교수와 이혼한 이후 줄곧 어머니 손에 컸다. 2020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과거 마리화나 흡연 사실이 논란이 되자 "자메이카 가정에선 흔한 일"이라고 변명했는데, 이를 두고 도널드 교수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무덤에서 뒤척이실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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