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는 발레... 거울보기가 제일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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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기자]
"발레를 한다고?"
"아, 네..."
여기서 대화를 끝낼 수는 없다. 추가 질문이 없어도 부연 설명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잘하는 건 아니구요, 그냥 다니는 거예요. 별거 없어요. 아직 다리 찢기는 안 되지만."
발레를 배운다고 하면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나를 본다. 머쓱하다. 누가 봐도 발레를 배울 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누구를 설득할 생각은 없다. 그냥 한다. 왜냐하면 나는 '발레리나'이기 때문이다. 로망은 아니다. 그러기에 발레는 너무 힘든 예술이다.
▲ 발레는 자세가 중요하다. 팔동작 '폴드 브라' 연습 중이다. |
ⓒ 정시현 |
녹음한 내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처럼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내 포즈는 내가 보기에도 이상하다. 같이 배우는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선생님 눈에는 더 황당하겠지? 쑥스럽고 또 부끄럽다. 그래도 모든 수치심은 흐르는 땀 속에 녹아 사라진다.
주변 눈치를 보지만 모두가 웃고 있다. 우리는 모두 미소로 대화한다. 실수 때문에 인상을 쓰는 법은 없다. 거울을 보면서 실망해도 선생님과 동료의 웃음을 보면 좌절감은 단번에 사라진다. 발레를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모두 웃는다.
지난 1년 동안, 발레복 종류도 늘었고, 오전반에서 오후반으로 수업 시간도 바꾸었다. 지금도 수업 시작 전, 스트레칭만 시작하면 마음이 설렌다. 기대한 것만큼 잘하진 못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어설픈 동작에 실망하지 않는 '무적의 취미 발레단'이다.
우리는 공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나는 공연에 참여하진 못했다. 지금 내 로망은 무적의 취미 발레단 공연에 참여하는 일이다. 일 년쯤 되면 무대에 설 줄 알았는데… 아직 연결 동작 하나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겨우 서 있다.
발레 수업의 시작은 가장 기본 동작인 '플리에'이다. 이제야 순서를 외운다. 이마저도 팔동작인 '폴드 브라'와 합해지면 여전히 헤매고 있다. 한 달마다 순서가 바뀌는데, 선생님의 시범을 보면 여전히 좌절한다. 로망은 로망으로만 간직해야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래도 나는 한다. 왜냐하면 발레는 못해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잘해도 부럽거나 질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못한다는 걸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 15년간 학교에 다녔건만 이렇게 경쟁심이 들지 않는 교실은 처음이다. 똑같이 배우는 수업에서 누가 몇 년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다 같은 수강생일 뿐이다.
▲ 바에 손을 올리고 파세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
ⓒ 정시현 |
어딜 가든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하고, 옆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취업 시장에서 겪는 좌절감은 분노처럼 항상 솟아 올랐다. 아직 취업이라는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발레가 길러준 '좌절감 극복 근력'은 나를 좌절감에 빠지지 않게 하고 있다. 발레는 내게 큰 가르침 하나를 주었다.
발레 실력은 빠르게 늘지 않았다. 모두가 선망하는 발레의 이미지, 우아하고 고상한 모습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아름다운 춤의 뒷면에는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고통스러운 스트레칭과 근력을 기르기 위한 높은 강도의 매트운동을 해야 했다. 그게 스트레스가 되진 않았다. 나는 '백조의 호수'의 백조가 아니다. 백조가 될 생각도, 될 가능성도 없다. 나는 그냥 '오리'다.
"나 발레 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엄청난 유연성을 자랑하는 포즈를 기대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오리는 그저 오리다. 여기서 딱히 벗어나고 싶지 않다. 주변에 백조가 가득했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업에서 우아한 백조는 선생님뿐이다. 우리 발레단 모두 오리들이다. 거울을 보며 항상 오리라는 걸 깨닫는다. 오리들끼리, 아니 내가 제일 못하는 오리라 해도 무슨 상관인가. 나는 항상 '오리의 호수'에서 공연 중이다.
오리라고 발레를 대충 하는 건 아니다. 제일 일찍 도착해 스트레칭도 꾸준히 한다. 발레 관련 책도 읽는다. 발레 근육이나 용어 등 나머지 공부도 열심히 한다. 공연도 보러 다니며 은근히 욕심도 내본다. 다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낼 필요가 없으니 유유자적 웃으며 다닐 뿐이다. 가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에게 "오늘 순서 잘 맞추던데요?"라는 칭찬을 받으면 그만이다.
좋은 점도 있다. 발레 수업이 끝나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수업 내내 집중해서 순서를 맞추고, 있는지도 몰랐던 근육을 사용해서 용을 쓴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온갖 심각한 생각이나 깊은 감정도 끝나고 나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뒤끝 길다'는 평가를 받는 내가 모든 것을 잊게 되다니. 실로 놀랍다. 내 오리 체험은 나를 다시 취업 시장에 나가게 한다.
▲ 균형(발란스)를 잡는 연습 중이다. 일년이 지났건만 영 쉽지 않다. |
ⓒ 정시현 |
몸매 걱정도 덮어두자. 발레를 배우면서 걸림돌이 되는 게 있다면 체형에 대한 편견이다. 마른 사람만 발레를 한다는 망할 편견 때문인지 발레복은 죄다 마른 체형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신경 쓰지 말자. 발레리나의 몸매를 꿈꾸며 거울을 바라보면 그동안 내내 괴로울 것이다. 발레를 하면 내 몸을 당당하게 바라볼 힘도 키울 수 있다. 오직 균형만 신경 쓰면 된다. 넘어지지만 말자.
발레를 시작하기 전까지 항상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이룰 때도 있었고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 과정이 즐겁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기까지 주변 사람은 친구이며 동시에 경쟁자였다. 피 말리는 경쟁 속에 승자가 되든 패자가 되든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오리의 발레는 다르다. 함께 수업을 듣던 수강생들이 공연을 하고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갈 때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었던 건 그들과 '경쟁'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토슈즈를 신을 때 나는 이전에 배운 동작에서 헤매고 있다.
여전히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한다. "근육을 쓰세요!"라고. 그리고 여전히 나는 어느 근육을 써야 하는지 모른다. 그런 다음 거울을 보며 활짝 웃는다. <미운 오리 새끼>는 더 이상 동화가 아니다. 백조가 될 수 없는 진짜 오리 이야기, 나는 오늘도 발레복을 챙기고 학원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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