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 질문 그만" 천우희도 질색팔색…배우들 꺼낸 속내

서정민 2024. 8. 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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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류덕환의 실험


큰 철학자의 깨달음도, 세 살짜리 아이의 호기심도 출발점은 같다. ‘질문하기’다. 누군가를 잘 이해하고 싶을 때도 질문이 필요하다. 답에 따라 그 사람의 현재 생각과 취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 나 자신에게 질문해본 적이 있던가?
“배우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콘셉트의 프로젝트 전시 ‘NONFUNGIBLE: 대체불가’를 기획한 배우 류덕환. [사진 에틱 아카이브]

배우 류덕환(37)이 프로젝트 전시 ‘NONFUNGIBLE: 대체불가’를 기획한 이유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앤더슨씨’에서 8월 9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되는 ‘NONFUNGIBLE: 대체불가’는 류덕환이 평소 친한 배우 류승룡, 천우희, 지창욱, 박정민을 직접 인터뷰한 영상과 그들이 출연한 8편의 짧은 필름을 상영하는 자리다.

“배우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콘셉트의 프로젝트 전시 ‘NONFUNGIBLE: 대체불가’를 기획한 배우 류덕환과 인터뷰 및 짧은 영상 작업을 함께한 배우 천우희. [사진 에틱 아카이브]

지난 3년 간 ‘에틱 아카이브(ETIK ARCHIVE)’라는 영상 기록 팀을 꾸리고 프로젝트를 준비한 류덕환은 “앞으로도 배우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로 2006년~2007년 청룡·백상·대종상 등 남자 신인연기상을 모두 휩쓴 류덕환은 5살 때인 1992년부터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를 끝낸 2020년까지 6개월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3년 전 결혼하고 처음으로 긴 휴가를 가지면서 미술·음악·무용·디자인 등 다른 예술 장르를 열심히 찾아 다녔는데 “질투가 났다”고 했다.

“배우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콘셉트의 프로젝트 전시 ‘NONFUNGIBLE: 대체불가’를 기획한 배우 류덕환과 인터뷰 및 짧은 영상 작업을 함께한 배우 류승룡. [사진 에틱 아카이브]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로 작품을 만드는데, 배우는 필연적으로 타인으로 살아야 하는 직업이라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죠. 맡은 역할에 따라 타인을 잘 표현하기 위해 걸음걸이, 말투까지 관찰하고 따라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뭔지, 지금 내가 관심 있는 건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작품이 끝날 때마다 미디어 인터뷰를 통해 수많은 질문과 답을 하지만 내용은 대부분 홍보·마케팅 중심이에요. 아마도 그 순간 배우가 아닌 ‘나’에 대해 질문 받는다면 배우들은 굉장히 당황할 거예요. 그래서 친한 배우들을 불러 편한 자리를 만들고 제가 직접 질문 해봤죠. 요즘의 ‘나’에 대해 말해보라고.”

“배우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콘셉트의 프로젝트 전시 ‘NONFUNGIBLE: 대체불가’를 기획한 배우 류덕환과 인터뷰 및 짧은 영상 작업을 함께한 배우 박정민. [사진 에틱 아카이브]

10분 남짓한 인터뷰에서 배우들은 모두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는다. 천우희는 ‘이 질문은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질문에 “‘누구랑 친해요?’라는 질문은 가십을 원하는 것 같아서, ‘내 연기에 점수를 준다면?’이라는 질문은 내 연기에 점수를 매기는 게 싫어서”라고 답한다. 박정민은 ‘배우 박정민과 인간 박정민’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배우 박정민은 겁이 너무 많다. 나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게 너무 무섭다. 인간 박정민은 한 마디로 ‘찐따’”라고 답한다.

“배우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콘셉트의 프로젝트 전시 ‘NONFUNGIBLE: 대체불가’를 기획한 배우 류덕환과 인터뷰 및 짧은 영상 작업을 함께한 배우 지창욱. [사진 에틱 아카이브]

8편의 필름 역시 길이는 1분 정도로 짧지만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류승룡의 ‘짐진자’는 수많은 짐을 지고 끊임없이 걸어가야 하는 인생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천우희의 ‘패스트 액팅(FAST ACTING)’은 새로운 연기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것을 실행할 수 없을 만큼 시간에 쫓기는 현장 실정과 ‘효율적 연기’에 대한 애환을 다뤘다. 지창욱의 ‘지창욱’은 배우 지창욱과 인간 지창욱의 일과를 거꾸로 돌리면서 두 사람이 별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류덕환은 “지창욱의 필름에선 세수하는 장면이 핵심인데 세수를 하나 안 하나 똑같이 잘 생겨서 주제 전달에 실패한 것 같다(웃음)”며 후일담을 전했다. 이들 필름은 모두 인터뷰에서 핵심 키워드들을 골라 류덕환이 콘셉트와 콘티 초안을 정하면, 배우들이 아이디어를 더해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연출·연기까지 해낸 작품들이다. 류덕환은 “배우가 저작권을 갖는 NFA(Non-Fungible Actor·대체불가 배우) 영상”이라고 했다. 이번 프로젝트 전시명도 ‘대체불가’인데 여기에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전시 마지막에선 관객들도 배우들과 같은 의자에 앉아 인터뷰를 경험할 수 있다.

“배우는 선택을 받는 직업이죠. 작가가 쓴 이야기에 맞춰야 하고, 감독의 OK사인이 나야 연기를 인정받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정작 배우는 그 작품에 저작권이 없어요. 그래서 배우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 톤도 정하고, 연출도 연기OK 사인도 직접 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저작권’이라는 민감한 표현을 쓴 이유는 배우도 출연 작품에 권리를 갖자는 의미가 아니라, 배우도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해서 저작권을 갖는 또 다른 작품 문화가 생겼으면 하는 의미에요.” 물론 대체불가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의 이야기라는 의미도 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미덕은 관객들 역시 인터뷰 대상이라는 점이다. 예매 시 미리 신청하면 배우들이 인터뷰 했던 똑같은 의자에 앉아 류덕환이 미리 준비한 질문 중 하나를 받게 된다. 이때 관객은 촬영 장치가 달린 거울을 보면서 답을 하고, QR코드를 통해 자신의 인터뷰 영상을 휴대폰으로 받아갈 수 있다.

류덕환이 미리 준비한 질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나요?’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나요?’ ‘(직업이 아닌) 꿈이 있나요?’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일치하나요?’ 등이다. “현장에선 하나의 질문에만 답을 할 수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른 질문들의 답도 찾으면서 ‘나’를 찾는 경험을 하길 바래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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