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역 9번선로... 나와 같은 30대 청년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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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연 기자]
▲ 구로역 추모공간 |
ⓒ 이의연 |
오래된 지상 역사 내부엔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교통카드를 찍은 것이 지난 달에만 50번을 넘겼다. 길게 늘어진 맞이방과 선로로 내려가는 9개의 계단은 이제 현관을 나서면 보이는 아파트 복도와 같이 느껴진다.
며칠 전 이곳 맞이방에 추모 공간이 마련되었다. 분주한 아침 시간에 언뜻 지나가며 보았을 때는, 과거 어느 역에서 벌어진 사고의 몇 주기를 기리는 줄 알았다. 하루가 지나고 저녁이 되어 다시 그곳에 멈추어서야 이것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진 일인 줄 알았다.
지난 9일, 새벽 2시경, 전선을 수리하던 작업차와 선로 점검차가 충돌해 30대 초반의 작업자 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9번 선로의 계단 옆에는 추모글이 적힌 검은 현수막, 국화꽃이 놓인 탁자 앞에 망자를 위로하는 소주와 커피, 여러 음료가 놓여있었다. 그 옆엔 포스트잇과 검은 띠로 뒤덮인 게시판이 있었다.
사고는 빠르게 수습되었고 평일 아침 전철은 정상적으로 운행되었다. 전철은 그 선로를 지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을 실어 날랐고, 아무 일 없는 하루를 보내게 했다. 9번 선로 위의 추모 공간을 보지 못한 이들의 일상은 여느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역과 작업자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특정인의 악행은 보이지 않고 안전 절차의 미비로 인해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로 매듭지어지는 것 같다. 분노할 대상이 분명치 않으니 관심은 더욱 빠르게 식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죽고 또 매일 죽는다. 이 명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죽음이 지금 여기 일상의 공간에서, 나와 같은 나이의 노동자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은 매끄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그 죽음이 다른 이들의 일상을 돌보는 중에 일어났다는 것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고용노동부에서 공개한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매년 2000명에 달한다. 노동자 만 명당 한 명꼴이라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일에는 여전히 이토록 많은 희생이 필요한 듯하다. 우리의 문명은 어느 때보다 죽음을 정복해 가는 듯해 보이지만,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에 빚지고 있었다.
매 순간 모든 이들을 추모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나 최근 10년 사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수차례 인명 재난을 목도 하면서 여러 트라우마가 중첩되었다. 죽음을 기억하자는 말은 지나치게 많이 발화되었고 끝내 뭉툭해졌다. 마음의 연료도 소진되어 자기 삶을 지탱하기에 빠듯한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서둘러 이들의 흔적을 치우고 기억에서 밀어낼 만큼, 다시 정시에 출발해야 할 만큼 우리의 문명과 경제활동, 일상이 중차대하고 시급한 것인지 떠올려본다. 구로역의 작은 추모 공간도 노동조합에서 설치한 것이었는데, 죽음의 사건도 역과 전철의 운영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있지 않은가 곱씹는다.
적어도, 아무리 못해도 그들이 이곳에 존재했음을 알게 하는 일 정도는 우리가 용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의 문명이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반복하며 정상 작동을 과시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에도 자연스러우면 좋겠다.
오늘도 전철을 탄다. 전철은 이전과 같이 운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구로역의 9번 선로를 이전과 같이 무심히 지나칠 자신이 없다. 커피를 좋아했다던 나의 또래 두 사람이 거기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은, 걸음을 조금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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