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하면 '공업도시'만 떠올라…"여기가 돈 벌어 떠나는 도시인가"[노잼도시]

윤슬기 2024. 8. 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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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 도시의 재미를 찾아서]
<2>'노잼도시' 프레임에 갇혀버린 도시들
②"주말에 울산이요? 서울·부산·대구로 가죠"
20대 없는 울산…서울·인근도시에 비해 활력↓

편집자주 - 재미없는 도시, 이른바 '노잼도시'를 아시나요? 놀거리·볼거리·즐길거리가 부족해 현지인은 심심하고 타지역에서는 방문하지 않는 도시를 말합니다. 2019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러 도시를 두고 노잼도시라는 호칭을 붙였는데요. 재미로 시작된 일종의 '밈'이 대전, 울산, 광주, 청주 등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꿀잼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로 이어질 정도입니다. '노잼' 오명을 쓴 도시는 정말 재미없고 따분한 곳일까요? 도시를 재미있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와 공간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자 합니다.

“코레일은 우리(울산) 덕분에 돈 많이 벌 겁니다. 울산역 통하는 출장 등 비즈니스 수요는 정말 많죠.”

지난달 19일 기자가 방문한 울산역은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보다 서류 가방에 여름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울산 방문 목적이 관광보단 비즈니스인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울산 시민들은 기자에게 휴일에는 울산에 머무는 대신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부산으로 떠나는 청년들이 수두룩하다고 설명했다. 울산에서 돈을 벌지만, 지역 밖으로 나가 돈을 쓰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울산시 관계자도 기자에게 울산이 ‘돈 벌고 떠나는 도시’가 됐다며 한탄을 늘어놨다. 일자리는 물론 백화점, 축제, 관광지 등 좋은 사회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남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아서다. 김두겸 울산광역시장은 "울산이 오줌을 누고 가는 도시가 됐다"며 탄식하기도 했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 서 있는 울산 관광 마스코트 '울산큰애기'상. 사진=허영한 기자

“살기 좋지만 주말엔 서울로”…양면의 도시 울산

울산은 그간 공업도시 이미지로 대표됐지만 사실 바다, 강, 산 등 자연환경을 모두 갖춘 도시다. 울산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은 이 지역의 변화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태화강은 울산이 공업도시로 불리던 시절 대량의 산업 폐수가 유입되면서 수질이 급격히 나빠져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정화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매년 철새가 7000~8000마리 찾아오는 '생태환경의 보고'로 탈바꿈했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사진=허영한 기자

현재는 쉴 곳, 머물 곳, 즐길 곳의 요소를 갖춰 울산 시민은 물론 외지인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강변을 따라 스타벅스는 물론 크고 작은 카페와 음식점이 몰려있다. 이날도 태화강 산책로를 따라 삼삼오오 걷거나, 벤치에 누워 햇볕을 쬐는 시민들로 공원이 붐볐다.

이날 벤치에 앉아 볕을 쬐고 있던 울산 토박이 이복지씨(63)도 "태화강 봐라, 이렇게 좋지 않냐"며 "자전거 타기도 정말 좋다"고 말했다. 이씨는 "울산이 공업도시라는 이미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공장 이미지는 벗은 지 오래"라며 "울산이 이렇게 살기가 좋은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을 외지인들에게 어필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울산이 제조업 황금기를 누리던 시절 울산으로 넘어와 30년째 택시 기사를 하고 있다는 김모씨(68)는 울산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대왕암, 자수정 동굴, 간절곶, 태화강, 장생포 등 관광지를 줄줄 읊었다. 그러더니 "(시에서) 하도 세뇌하듯 방송을 틀고 홍보를 하니 꿰고는 있는데, 관광객은 울산 볼 거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푸념했다. 그는 "전에 한 관광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좋아해서 박 전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울산에 왔는데 여기는 뭐 대나무뿐이 없냐, 이게 뭐냐고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전했다.

울산시청 앞마당에는 논과 실개천과 원두막이 있다. 논에는 벼가 자라고 논두렁에는 두루미 한 마리가 거닐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울산 젊은이들 놀 곳은 서울·부산·대구…노잼 때문?

울산에서 만난 시민들도 울산의 활기가 부산, 대구, 경주 등 인근 도시보다 떨어진다며 이곳의 상황을 설명했다. 마음먹고 놀기로 한 날에는 울산을 아예 떠난다고 했다. 성남동에서 만난 홍정우씨(32)는 "친구들이 날 잡고 놀러 가려고 하면 타지로 가는 경우가 많다. 울산에서 노는 경우는 그냥 가볍게 친구 만나는 정도, 부산·대구에 비하면 분위기 자체가 처져 있다"며 "울산은 시내가 작고 조용한 데 비해 부산 광안리는 일단 사람 많아 활기찬 느낌"이라고 말했다.

울산 성남동 거리
울산 시내 한 건물이 통쨰로 비어 있다.

울산 공리단길에서 카페 '시즈커피'를 운영하는 김현찬씨(36)도 젊은 층 유입이 적은 게 울산의 약점이라고 짚었다. 김씨는 “서울에서 유행하는 펍도 생기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다 보니 퀄리티 높은 외식 프랜차이즈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유흥을 즐기기에 괜찮은 도시”라면서도 “하지만 대학이 없어 젊은 층이 많지 않고, 이들을 끌어들일 문화적 혜택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사람들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에는 대학교의 숫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울산에 있는 대학교는 울산대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2곳이 전부다. 이날 조선해양축제, 울산시청, 공리단길, 울산역, 성남동 등 울산에서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여러 곳 방문했지만, 젊은 층 중에서도 특히 20대는 잘 찾아볼 수 없었다.

공업도시 울산의 상징인 울산 남구의 공업탑. 사진=허영한 기자

젊은이들이 호응할 만한 골목상권도 생기를 잃은 듯한 모습이다. 울산 시청부터 원도심인 공업탑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도로는 바쁜 차들로 분주했지만, 가는 길 내내 가장 많이 보인 건 ‘임대’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공실이었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빈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공업탑 인근에 발달한 카페거리 '공리단길'을 찾는 발걸음도 뜸했다. 최근 공리단길에는 소위 '힙하다'고 불리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10곳이 채 안 돼 'OO단길'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인근 고등학교의 학생도 공리단길이 어디냐는 기자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권이 침체하면서 PC방·노래방 등 Z세대가 놀 곳도 줄폐업하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울산의 번화가 성남동을 찾은 15세 김모군은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켠 채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김군은 "학교 끝나고 PC방 찾아서 성남동에 왔다"며 "요즘 망한 곳이 많아서 핸드폰으로 검색해보고 이곳저곳 찾아야 PC방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성남동 상권은 구도심의 로데오거리 같은 모습이었지만 한 가게 건너 임대 혹은 공실이라 번화가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부산-경주에 '낀' 도시 울산…'공업도시' 이미지만 각인
울산역 플랫폼에 있는 입간판의 모습. '울산(통도사)'이 부산과 경주 사이에 끼어있다. 사진=윤슬기 기자@

둘째의 설움이라는 말이 있다. 위로는 첫째, 아래는 동생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사이에 낀 둘째는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애매한 포지션 탓에 가족 내 존재감이 희박해지기도 한다. 울산이 그렇다. 위로는 경주는, 아래로는 부산이 있다. 경주에는 '역사 도시' 이미지가 밀리고, 부산에는 '관광도시' 이미지를 빼앗겼다.

사실 울산은 반구대 암각화 등 선사시대부터 역사를 축적해온 지역인 데다, 자연경관을 골고루 갖춰 관광 잠재력이 큰 도시다. 하지만 키워드를 선점하지 못하면서 아직까지 울산은 '공업도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울산을 키운 건 팔할이 공업이지만, 재미가 도시 경쟁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지금 시기에는 공업도시 이미지가 되려 울산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울산 시청 앞 구도심 거리. 울산은 현대중공업, 현대차, 현대모비스, SK, 모비스, 에쓰오일, 고려아연 등 내로라하는 국내 굴지의 기업이 모여있는 도시고,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부자’ 광역시기도 하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울산을 빠져나가 서울이나 인근 도시로 소비 유출이 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울산시민들도 노잼도시 오명에는 '공업도시 울산'이라는 배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입을 모았다.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 공장 굴뚝 속 단조로운 모습이 재미없다는 평가로 이어졌고, 자연히 외지인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상태가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도 이러한 이미지가 재미없는 도시로 낙인찍히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진단했다. 유영준 울산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사실 우리가 교과서에서부터 울산은 공업도시라고 배우지 않나, 산업단지(산단)밖에 없다는 이미지가 있다"며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은 애초에 재미가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시 관계자도 "울산의 그동안 이미지는 공업도시였다"며 "심지어 경주-부산 사이에 끼어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것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들 "소소한 꿀잼 만들어주세요"…울산, '꿀잼 도시’ 도약의 관건

울산은 최근 꿀잼도시 만들기에 분주하다. 태화강에 세계적 공연장을 조성하고 카누 슬라럼 경기장을 만들고 대규모 리조트를 짓는 등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안을 궁리 중이다. 울산시는 또 케이팝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28년 완공 목표로 케이팝사관학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이 적어 20대 유입이 적으니 이를 통해 젊은 층의 도시 유입을 확대하고자 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다만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크고, 화려한 건축물보다는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생활 속 재미였다. 갓난아기와 함께 성남동에 방문한 30대 이모씨는 "아기랑 가족 단위 놀러 갈 때 태화강 등에 가기는 하지만 여기를 매일 갈 수는 없지 않으냐.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조선해양축제에 방문한 고등학생 황예빈씨(18)도 "솔직히 울산에서 놀거리가 뻔하다"며 "삼산동에 가서 노래방 가고 카페 가고 끝"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많았으면 좋겠다"며 "오늘 불꽃놀이처럼 화려한 볼거리도 늘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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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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