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짓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인간에 매력” “궁극의 영화는 날카로운 질문 던져야”

임세정 2024. 8. 17.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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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볼버’ 오승욱 감독, ‘무뢰한’ 이어 전도연과 재회
“전도연은 연기 스승, 가장 예리한 질문 가진 배우”
오승욱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오 감독은 “연기에는 답이 없다. 앞뒤 장면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 찾고, 배우가 잘하는 걸 끄집어내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오승욱 감독은 누아르 영화 팬들에게 ‘무뢰한’(2015)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 감독과 제작사 사나이픽처스, ‘무뢰한’의 히로인 전도연이 다시 만났다는 소식은 일찍부터 관객들의 기대감을 지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오 감독은 “전도연 배우와 삼겹살에 낮술을 하다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새 작품을 내놓는 데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리다보니 ‘촬영이 오래 걸리지 않는 저예산 영화로 한 번 같이 해보자’는 말을 건네더라”면서 “주인공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직진하는 내용은 어떨까 생각했다. 5층 석탑에 올라가면서 층마다 있는 고수들을 격파하는 이소룡의 ‘사망유희’(1978)에서 착안한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일 개봉한 ‘리볼버’에는 그의 뮤즈 전도연에 임지연, 지창욱 등 새로운 얼굴을 더했고 이정재, 전혜진, 정재영 등 호화로운 특별출연진이 모였다. 그는 “어마어마한 배우들이었다”고 했다.

오승욱 감독은 ‘리볼버’에 함께 출연한 임지연, 전도연, 지창욱(사진 왼쪽부터) 등에 대해서는 “어마어마한 배우들”이라고 추켜세웠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오 감독은 “궁극의 영화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벼리고 벼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고 늘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현명한 배우들은 약간의 뉘앙스 차이도 살려내는데, 그런 장면들 중에서 최고를 선별하는 작업이 아주 즐겁다. 나를 많이 긴장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와 작업한 배우들 역시 “오 감독은 질문에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오 감독은 “내가 시나리오를 썼어도 연기에 답은 없다. 앞뒤 장면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고, 배우가 잘하는 걸 끄집어내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며 “좋은 연기를 발견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전도연은 내게 연기 스승이다. 가장 예리한 질문을 가지고 오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건조하고 차가운 영화지만 마지막엔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는 구간이 있다.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을 때 모든 등장인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은 마치 무대에 올려진 희극같다.

오 감독은 “강남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왕처럼 사는 인물들이 밤중에 아무도 없는 숲속으로 갔을 때 혼자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면 우스꽝스러워진다.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휠체어를 밀어보지 않은 그레이스(전혜진)가 야산의 자갈길에서 힐을 신고 휠체어를 밀려고 전전긍긍하다가 예상치 못하게 체면을 구기는 모습에선 그간의 허세가 드러난다”며 “코미디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각 인물의 밑바닥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려는 인물이 등장하는 점, 형사라는 직업이 활용된다는 점 등이다.

오 감독은 “이번에도 죄지은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서는데 ‘무뢰한’ 때는 그 사람이 결국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으면 했다. 어두운 이야기에 빠져있다보니 그게 싫어지더라”며 “감정적으로 너무 고통스럽게 일하고 싶지 않다는데 전도연과 뜻이 맞았다”고 했다.


위기에 빠진 형사가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몇 년 동안 영화를 준비하면서 형사가 주인공이 아닌 작품도 썼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만 제작이 성사되더라”며 “형사들과 인터뷰하다가 현대 사회에서 죄와 죄가 아닌 것 사이에서 항상 외줄타기를 하고 자칫하면 죄에 발을 빠뜨리게 되는 사람이 바로 형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사들은 스스로를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더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죄를 짓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 인간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며 “어린 시절 ‘레미제라블’ 등을 보고 그런 면에서 감동받았고, 여전히 거기에 꽂혀있다. 관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면서 천천히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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