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제철 독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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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제철 독서는 제철 과일처럼 계절에 맞는 책을 읽을 때 더 재미있다는 의미로 내가 방금 지어낸 것이다.
물론 식도락에도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 더울수록 더 화끈한 책을 읽는 독서의 고수도 있을 거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엔 바깥 활동하기에 좋아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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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독서’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제철 독서는 제철 과일처럼 계절에 맞는 책을 읽을 때 더 재미있다는 의미로 내가 방금 지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리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아니어서 어디선가 이 말을 쓰고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런 말을 들어보신 분께는 정중히 사과드린다.
여름은 사실 책 읽기뿐만 아니라 만사가 다 귀찮다. 하지만 진정한 애서라가면 이런 계절에 더욱 힘을 내야 한다. 그래서 제철 독서가 필요하다. 방법은 쉽다. 더울 때 차가운 음식을 먹듯 시원한 느낌이 드는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물론 식도락에도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 더울수록 더 화끈한 책을 읽는 독서의 고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르 클레지오의 ‘사막’처럼 제목에서부터 이미 열기가 전해지는 소설을 집어든다는 건 아무래도 망설여진다.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는 명작이다. 그렇지만 미국 대공황 시기 땡볕에 흙먼지 날리는 서부가 배경인 이야기는 한여름에 읽기엔 역시 무리가 있다.
대신 선선한 산지나 바다가 배경인 소설이라면 제철 독서로 좋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나 토마스 만 ‘마의 산’은 어떨까. 짧고 경쾌한 문장으로 거친 바다낚시의 모습을 그린 ‘노인과 바다’는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마의 산’은 분량이 길지만 배경이 스위스 산 중턱의 한가로운 요양소다. 거기서 젊은 주인공은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배운다. 열차에 올라타 스위스로 향하는 여정을 설명하는 앞부분에서부터 마음은 이미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설렌다.
바다나 알프스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아예 북극이 배경인 소설도 있다. ‘북극 허풍담’을 쓴 작가 요른 릴은 북극을 동경해 20년 가까이 그린란드에서 지낸 경험이 있는데, 이 소설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배경 자체가 온통 영하의 날씨인데 더해 우리나라 아재 개그에 도전하는 그린란드식 허풍 유머를 읽으면 썰렁하다 못해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전통적 성향의 독서가라면 추리소설도 제철 독서로 괜찮다. 폭설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의 산장이나 기차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는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설정이다. 추천작으로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쥐덫’과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그리고 일본 현대 추리소설계를 이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과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가 읽어볼 만하다. 특히 작가 자신이 스노보드 마니아라서 소설이지만 겨울과 눈에 관한 묘사에 있어서만큼은 현장감이 압권이다.
제철 독서는 비단 여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엔 바깥 활동하기에 좋아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쉽지 않다. 그럴 때 읽는 책은 여름과는 또 다르다. “자, 그럼 아무쪼록 이 여름을 책과 함께 건강히 보내시기를. 곧 가을 제철 독서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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