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만 탐하는 국회를 탄핵하고 싶다 [신율의 정치 읽기]
그런데 요즘 국회는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최소한의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요새 국회는 오직 권력 투쟁을 위해 존재하는 곳 같다. 권력 투쟁이야 늘 있기 마련이지만, 국회에서의 권력 투쟁은 물밑에서 이뤄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국회는 아예 드러내고 권력을 탐한다. 한마디로, 민생 법안에 대해 여야가 협상을 통해 합의하고 그 과정에서 고민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줘야 할 국회가, 아예 적나라하게 권력을 탐하고 권력을 빼앗거나 지키려 하는 권력 투쟁의 장이 됐다.
지금 국회가 하는 일이라고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탄핵을 발의하는 일, 툭하면 청문회를 개최하는 것, 그리고 관례를 무시하고 수적 힘으로 뭐든 밀어붙이는 것, 이를 저지하려는 여당 행위가 전부다. 요새 국회에서 민생을 두고 논쟁하거나, 법안을 두고 밀고 당기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일각에서는 금투세 문제로 여야가 갈등하지 않느냐 반문한다. 이게 표면적으로는 정책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국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금투세 관련 토론을 민주당에 제안하며,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이 나와도 좋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런 제안에 고민하기는커녕 “검찰이 주가 조작 등의 부분에 대해 아무런 수사를 안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투세를 얘기하자는 것은 상황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얘기”라는 입장을 내놓거나, “(여당이) 할 수 있는 말은 금투세밖에 없는가”라며 “한심한 것 같다”고 반응했다.
이는 지금 국회가 어떤 상황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여야정 협의체를 만든다 했으니, 이제 국회가 일 좀 하려나 기대한다. 정말 그럴까.
여야정 협의체를 만들자면서 민주당이 하는 말을 보자.
민주당은 여야정 협의체 구성과 관련 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은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자율 권한을 갖고 일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국정 운영에 절대적 책임과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함께해야 의미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과연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할 의사가 있는지 의구심조차 든다.
그럼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권을 행사할 정도로 막강한 자율적 권한을 갖고 있을까. 현재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면, 이재명 전 대표는 90%에 육박하는 누적 득표율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고, 그의 말 한마디에 최고위원 선거 득표 순위가 흔들린다. 그만큼 민주당은 ‘이재명의 민주당’ 소리를 듣는 ‘1인 중심 정당’이다. 이런 정당의 원내대표가 상당한 파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나. 한마디로, 상대 정당 원
내대표의 자율적 권한을 말할 상황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영수 회담 제안도 나온 것 같다. 영수 회담 제안은, 지난 8월 6일 민주당 전당대회 TV 토론에서 이재명 전 대표가 “경제 상황이 매우 안 좋기 때문에 경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건지, 꽉 막힌 대결적인 정국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한번 만나서 진지하게 말씀 나누고 싶다”고 말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런 발언이 있은 후 8월 8일,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은 앞서 언급한 내용과 함께 “여야정 상설협의체보다 영수 회담 우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일단 여야정 협의체를 만들고 이후 해당 협의체를 확장하는 대신, 먼저 영수 회담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당이 영수 회담 성사를 주장하는 것은, 이재명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 제고와도 관련 있다. 만일 국회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하면, 두 번째 영수 회담도 못할 것은 없다. 정국 돌파구 마련을 위해 여권이 먼저 양보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과거 역대 정권 사례를 보면, 여야정 협의체가 있다 해서 정치가 복원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권 때도 여야정 협의체는 있었지만, 구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단지 지금은 국회가 워낙 하는 일 없이 싸우고만 있으니, 여야정 협의체라도 만드는 것이 어떠냐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번 국회가 여야 합의로 통과시킬 것 같은 법안이 두 개 있기는 하다. 하나는 일명 ‘구하라법’이고 다른 하나는 ‘간호법’이다. ‘구하라법’은 워낙 여론 관심이 큰 사건을 계기로 만든 법안이라,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여야 모두 이미지에 손해가 되지는 않는다. ‘간호법’은 과거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바 있다. 때문에 이번에 재발의해서 통과된다면, 민주당으로써는 ‘단독 행위’의 정치적 정통성을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고 반길 것이다. 국민의힘과 정부 입장에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PA 간호사(임상 전담 간호사)를 합법화하는 조치가 절실하고, 이를 위해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과거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입장을 바꿨다는 비판을 듣고 체면이 구겨져도, 일단 급한 불은 꺼야 하기에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 이렇듯 여야의 ‘이익의 공통 분모’를 지닌 법안과 일 안 한다는 국민적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국민적 관심이 큰 법안 두 개는 통과되겠지만, 그 외 다른 법안은 통과될 것 같지 않다.
청문회의 ‘희한한’ 운영도 국회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 국회는 가히 ‘청문회 천국’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죽했으면, 방통위 공무원들이 “사무처 직원을 너무 힘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국회 방통위에 호소했을까.
이런 국회를, 그리고 이런 국회의원들을 정신 차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 헌법에 국민소환제가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없다. 지금이라도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면 좋으련만, 도입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하는데, 요새 국회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의원들이야말로 4년 임기 동안에는 ‘철밥통 중 철밥통’이다. 자신들은 공무원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줄줄이 발의하면서, 정작 자신들 입지는 ‘노터치’다.
국회 존재 목적은 국민이 필요한 법을 만드는 것인데, 요새 권력 쟁취의 장으로 그 성격이 변했음에도 우리 국민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공허하게 외칠 수밖에 없다.
“국회를 탄핵한다”고.
물론 국회의원은 탄핵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실행에 옮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국민 마음을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다면, 계속 외쳐야 한다.
“국회를 탄핵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3호 (2024.08.21~2024.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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