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불리한…그들의 자립을 허하라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여기, 시작부터 지나치게 불리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자립준비청년’이다. 우리나라 18세 미만 아동 중 약 3만명이 원래 가정이 아닌 아동보호시설이나 위탁가정의 보호를 받는다. 매년 4000여명의 아동이 신규로 보호조치를 받고, 18세가 넘은 약 2100명은 보호가 종료된다. 대입이나 직업 훈련, 장애나 질병 등의 경우 25세까지 보호 기간이 연장된다. ‘자립준비청년’은 시설이나 위탁보호가 종료된 청년을 말한다.
이들 절반은 부모 등 가족이 있지만, 시설 퇴소 이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당장 살 집이 없는데, 들어갈 수 있는 전세임대주택이나 자립지원시설 등은 턱없이 부족하다. 시설에서 퇴소한 청년은 일반 청년보다 대학 진학률이 낮고, 졸업하는 비율 또한 낮다. 더욱이 근로소득이 증가하면 수급 자격이 박탈되도록 설계된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자발적으로 일하려는 의지를 낮춘다.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거의 고립되어 있어, 최근 조사에서 자립준비청년 절반 가까이 자살 생각을 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청년의 4배가 넘는 수치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대책이 없는 게 아니다. 지난해 정부는 자립준비청년에 대해 국가가 부모의 심정으로 챙기겠다고 했다. 수당 금액을 높이고, 의료비 지원 사업을 신설하고, 전국에 자립지원 전담기관과 지원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쉽다. 시설을 나온 자립준비청년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에 따라 최소 5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까지의 자립정착금을 지급받는데, 이런 정착금을 가족에게 뺏기거나 사기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또한 지원 인력 1명이 100명 이상의 자립준비청년을 관리하는 현실에서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자립준비청년 10명 중 4명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된다.
우리나라 지원 체계와 유사한 일본은 서비스의 통합성을 높여 상담, 주거 지원, 직장 구하기 등의 서비스를 통합 관리하고 있다. 영국은 실질적인 자립이 되도록 모든 자립준비청년이 개별 조언자의 1:1 지원을 받는 사후 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 청년들에게도 진로와 취업 정보 제공, 생활 기술 교육 등 실질적 도움이 제공되도록 통합적 예산과 멘토 기능의 인력 확충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가정의 보호가 부재한 이들에게 심리적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상담이나 심리 치료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형식적인 제도 마련이 아닌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자립 준비가 제대로 돼 온전한 사회인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책이 촘촘하게 제공돼야 한다.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고 ‘부모 찬스’가 당연시되는 이 시대에 자신의 선택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을 홀로 감당하는 자립준비청년에게 사회의 보살핌을 제공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책무가 아닐까.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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