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냈지만 여행 안 갔다…"집 나가면 고생" MZ 이색 피서법

이보람 2024. 8. 1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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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성무(33)씨는 올해 여름휴가 때 여행 대신 '집캉스'를 선택했다. 이씨가 집캉스 동안 시켜먹은 배달 치킨. 사진 독자제공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980년~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MZ·젠지(GenZ)’ 세대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방식으로 무더운 밤을 보내고 있다. 극한 더위에 고물가 등 요인이 겹치면서 여행이나 강가 나들이 등 전통적인 피서(避暑) 대신 ‘집캉스(집+호캉스)’를 하거나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직장인 이성무(33)씨는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여름휴가를 집에서 보냈다. 애초 해외여행을 알아봤지만, 여름철 극성수기여서 항공권 요금이 평소보다 2배 가까이 비싸 부담이 됐다. 이씨는 “아내와 상의 끝에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밤에도 최저 기온이 25°C가 넘는 열대야가 계속 됐지만 집캉스는 달랐다. 여행 비용을 대신할 겸 에어컨을 하루종일 틀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게임을 했고, 아내와 함께 즐기는 야식은 배달로 해결했다. 이씨는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라며 “집캉스를 마음껏 해도 밖에서 쓰는 돈보다는 훨씬 덜 든다”고 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달 11~12일 리서치 플랫폼 라임을 통해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여름휴가 계획을 설문 조사해 보니 전체 응답자의 27.8%는 ‘휴가를 내지만 여행은 가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대신 ‘집에서 TV 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시청한다(39.8%)’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한국민속촌 공포체험 콘텐트 관련 영상. 한국민속촌 공식 유튜브 채널 '속촌아씨' 영상 캡처


젊은 세대 사이에선 집에서 나와 심야 공포 체험을 하는 것도 입소문을 탄 지 오래다. 경기도 용인 한국민속촌의 경우 여름 매일 밤 12시까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심야 공포촌’을 운영한다. 실감나는 귀신 분장을 한 배우들이 체험장을 돌아다니면서 관객들을 놀래킨다. 지난 1일 민속촌 공포체험을 다녀 온 안재홍(34)씨는 “휴가철을 맞아 열대야를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다녀왔다”고 9일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무서워서 대성통곡 했다” “오싹한 게 여름 데이트로 딱”이라며 ‘인증샷’을 올리거나 함께 갈 사람들을 모으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유명 일본 공포만화를 구현한 이색 전시회나 버스를 타고 공포체험을 즐기는 부산의 ‘썸머 호러나이트’ 등도 인기다.

퇴근 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찬 음식을 찾아다니며 더위를 피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대표 주자는 평양냉면이다. 전국 평양냉면 맛집을 탐방하는 한 인스타그램 계정은 구독자가 1만명이 넘는다. 이 계정에 유명 평양냉면집 목록이 올라오자 800개에 가까운 ‘좋아요’ 반응이 달렸다. 회사원 김선영(26)씨는 “같은 평양냉면이라도 어떤 재료를 쓰는지에 따라 가게마다 다 맛이 다른 것이 재미있다”며 “퇴근 후 열대야엔 ‘평냉투어’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공유된 평양냉면 탐방 관련 이미지(왼쪽)와 '#평냉'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들. 인스타그램 캡처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경험한 기성세대의 여름 휴식 방식이 ‘돈 들고 힘들다’고 인식하는 젊은 세대들은 더 합리적이고 의미 부여가 가능한 피서 방법을 추구하는 것 같다”이라고 분석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젊은 세대들은 경제적 여력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체험·경험과 그로 인한 만족을 중요시한다”며 “열대야를 보내는 방법도 그에 따라 여러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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