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서 조심할 건 한국인'...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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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기자]
유학, 이민, 여행 등 해외로 나가는 경우 한국인들이 종종 듣게 되는 씁쓸한 조언이 있다. 바로, 외국에선 더욱 한국인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재외 동포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708만 명에 이르는 재외 동포가 전 세계 곳곳에 산다. 어느 나라에서든 온라인이나 한인회를 중심으로 한인 커뮤니티를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 호주 한국계 기업 '스시 베이'는 호주 직장 규제 기관으로부터 고용 착취 등 혐위로 123억 원대 벌금을 부여받았다. 화면은 홈페이지 갈무리. (https://www.sushibay.com.au/) |
ⓒ 화면갈무리 |
이번 벌금은 호주의 공정 근로 옴부즈맨(호주 직장 규제 기관) 소송에서 나온 역대 최고액이라 한다. 해당 기업이 2016년부터 5년간 163명의 직원에게 초과 근무수당, 휴일수당, 연차 수당 등을 주지 않거나, 취업 비자 보증을 조건으로 임금 일부를 떼어내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혐의다.
▲ '스시 베이' 홈페이지 캡쳐. 해당 기업의 핵심 가치 중 '직원에 대한 충성'과 '윤리 경영' 이라는 항목이 있다. (https://www.sushibay.com.au/) |
ⓒ 스시 베이 홈페이지 |
실제 호주 공정 근로 옴부즈만은 2016년에도 호주 한국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호주의 근로 법률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동참해 달라는 서신을 보낸 적이 있다. 호주 정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호주 이민자 중 6명 중 1명이 최저 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일할 정도로, 호주 내 이주민 임금 착취는 만연한 문제다.
당시 옴부즈만이 직접 나서서 한인 기업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조사하고 서신을 보냈다는 것, 더불어 이런 한인 사회 내 임금 착취 문제가 올해까지 수년 간 반복되고 있다는 데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사상 최고 벌금을 징수 받은 한인 기업... 개선되지 않는 임금 착취
호주에 한국인이 가면,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직업은 흔히 두 종류로 나뉜다. 소위 '한인 잡'(직업을 뜻하는 영어 Job)과 '오지 잡'(Aussie Job, Aussie는 호주 사람들을 뜻하는 영어 속어)이다. 한인 잡은 한인 동포가 운영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고, 오지 잡은 호주인이 고용주인 곳에서 일하는 것이다.
한인 잡은 대부분 한국인 고용주와 직원들과 일하기에 영어를 잘 못해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호주 근로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급이 호주 최저 시급보다 낮거나 주말, 공휴일 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고용계약서를 쓰지 않고 주급을 현금으로 받는 '캐시 잡'이 많아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정부 보호를 받기가 어렵다.
한편, 오지 잡은 호주인 고용주가 호주 근로법을 준수하며 운영하는 곳에서 하는 일이다. 주급을 현금으로 받더라도 최저 임금 보장은 물론, 근로 형태에 따라 퇴직 연금, 주말 및 공휴일 수당 등 정당한 노동자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어떤 고용주 밑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노동에 대한 대가가 다르니, 호주 한인 청년들에게는 오지 잡 구하기가 목표다.
공식 기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6년에도 호주 공정 근로 옴부즈만은 한인 커뮤니티 내 지속적인 임금 체불과 관련해 한인 고용주와 직원을 인터뷰했었다. 그런데 이에 따르면 한인 고용주들은 호주 정부의 근로 규정을 먼저 확인하기보다, 호주 내 한국 커뮤니티에 의존하여 "통상적인 임금"을 설정했다고 한다. 물론 그 "통상적인 임금"은 호주 최저 시급보다 적었다.
시드니의 한 한국 식당 운영자는 최저 임금에 맞춰 제안할 경우 한인 자영업 사회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할까 봐, 최저 임금의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급 12달러에 직원 모집 광고를 냈다고 말했다. 2016년 당시 최저 임금은 $17.70, 한화로 치면 약 1만 6천원 정도였다.
한인 고용주들은 한인 청년들이 영어도 못하고 경험도 없다는 것을 저임금의 이유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시드니의 한 한인 유학생(익명 요청)은 지금도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호주에 오자마자 공부도 하고 돈도 벌면서 적응도 해야 했기에, 우선 말이 잘 통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한인 잡을 하게 됐어요. 저는 평일엔 최저 임금을 받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주말 근무 수당으로 받지 못해요.
그래도 다른 한인 잡에 비해 잘 받는 편이에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돈은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캐시 잡이어도 소득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미 최저 임금보다 낮게 받으니 굳이 신고 안 해요."
그런데 이는 청년들이 호주에 정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까지 한다. 인터뷰에 응한 유학생은 최근 집을 구할 때 엄청 애를 먹었다고 덧붙였다.
"호주에선 집 구할 때 소득을 증명해야 하는데, 정부에 보고하는 소득이 없으니 제 소득은 0이거든요. 결국 한국에 계신 부모님 소득과 가족 관계까지 증명해야 했어요. "
뒤처진 한국의 노동 인식
여전히 많은 한국인 청년들이 언어 장벽과 호주 사회와 제도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임금 착취를 당하거나, 착취를 당하고도 자신의 잃어버린 권리에 대해 어쩔 수 없다며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스시 베이 판결도 피해자로 추정되는 163명 중 용기 있는 단 2명의 신고 덕분에 이뤄진 일이었다. 유독 한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불합리한 행태가 문화적으로 자리 잡은 건 왜일까?
개인적으로는 수직적인 한국의 위계질서와 더불어, 시키는 대로 하는 주입식 교육과, 노동자의 권리를 주창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뒤처진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주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는 스웨덴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데, 올초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일화가 생각난다. 이 또한 한국 사회의 뒤처진 노동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스웨덴의 건설 현장 노동자들 모습(사진 출처:Plattform/Scandinav/Imagebank.sweden.se) |
ⓒ ImageBank Sweden |
나도 과거 스웨덴에서 유학할 때 아시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스웨덴의 노동 환경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스웨덴 친구들은 가족이나 친척들로부터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노조에 가입하라는 조언을 종종 듣는다고 전했다. 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임금 착취와 같은 노동 문제는 노조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노조가입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호주 교민 내 자정 노력도 필요
논란이 된 이번 호주의 '스시 베이' 사건은 국내의 뒤처진 노동 환경과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해외에 사는 한인 사회까지 퍼진 것을 보여준다.
다행히, 또 당연히, 모든 한인이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 호주 교민 커뮤니티에서는 많은 교민들이 젊은 한인 청년들에게 '호주의 노동자 보호법은 비자에 상관없이 적용되며, 공정 근로 옴부즈만은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알리며 권리를 지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안내하기도 했다. 이곳에 계신 분들 중 부도덕한 노동 계약을 제공하는 교민들이 없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이며.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제2의 새로운 삶을 꿈꾸며 호주로 떠나는데, 먼저 정착한 교민들이 이들을 이용하고 부도덕하게 착취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관련 기사: 호주로 간 청년들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는 이유 https://omn.kr/29eph ).
한인 사회의 악질적인 행태를 끊는 방법이 있을까. 먼저는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겠지만, 자정하고자 하는 한인 고용주들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노동은 국경과 국적에 상관없이 신성하며,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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