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거장이 택한 한국계 감독... 이 영화 보면 이해 된다
[김성호 기자]
한국계 이민자 영화인들이 각지서 활약하고 있다. 그 대표라 해도 좋을 이가 정이삭이다. 28년 전 할리우드 명작 블록버스터를 새로 단장해 내놓은 신작 <트위스터스>의 연출자가 바로 그다. 할리우드 거대 자본이 투자된 이 영화 연출을 두고 쟁쟁한 감독들이 거론된 끝에 선택된 것이 바로 그였다.
정이삭이 <트위스터스> 연출자로 낙점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이 바로 <미나리>다. 10여 년 간 무명에 가깝던 그를 일약 주목받는 감독으로 만든 영화가 이 작품이란 뜻이다. 한국계 미국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는 36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시작으로, 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외국어영화상까지 거머쥐었다. 윤여정이 한국 배우 가운데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받기까지 했다.
▲ 영화 <미나리> 스틸컷 |
ⓒ 판씨네마 |
<미나리>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하나는 <미나리>가 선댄스며 골든글로브가 주목할 만큼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분히 과대평가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비단 <미나리>뿐 아니라 <패스트 라이브즈>나 박찬욱이 연출한 TV시리즈 <동조자> 등 여타 미국에서 상영된 아시아계 이민자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대동소이한 평가를 받는다. 적절한 평가란 방어와 과대평가 됐다는 공격 사이, 진실은 그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어느 모로 봐도 이민자 이야기가 미국에서 많이 제작되고 있단 건 분명하다. 또 근래 들어 과거보다 더욱 호평을 받고 있다는 점 또한 그렇다. 그 근간엔 과거보다 다양한 영역에 진출해 자리 잡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저들의 배경을 작화한 작품에 공감하고 있다는 배경이 있을 테다. 또한 다수 미국인이 과거와 달리 이민자의 사정에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아시아계에 대한 평균적 시선 또한 과거보다 분명히 나아졌다 평가할 수 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떡볶이며 김치, 두부 따위를 미국에서 소개할 당시엔 초라한 평가를 마주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 정부 주도로 K푸드를 홍보하는 상황에서도 수시로 강한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이 있었다.
▲ 영화 <미나리> 스틸컷 |
ⓒ 판씨네마 |
영화도 마찬가지다. 동양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는 백인 미국인들에게 그들의 삶과 상관없는 어색하고 낯선 일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시아, 특히 한국문화에 호감을 가진 이들에게는 기꺼이 경험하고 싶은 누구의 사정이 된다. 한두 세대를 지나며 미국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공고히 뿌리내린 미국에서, 심지어 세련된 문화적 위상을 갖춘 한국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요소일 수 있다.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상전벽해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쓰는 말이겠다.
<미나리>는 바로 이 같은 흐름에 수혜 받은 작품이다. 영화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주로 이민을 간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다.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어머니 모니카(한예리 분)는 1세대 이민자다. 농부의 자식인 제이콥과 달리 모니카는 서울 태생이지만 둘은 서로를 사랑하여 맨주먹만 쥐고 멀리 미국까지 이민을 왔다고 했다. 처음은 캘리포니아였고, 어찌어찌 하여 아칸소로 새로 자리를 옮긴 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한인이 별로 없는 아칸소로 옮겨온다는 건 한국인 사회, 또 한인교회가 싫어서라던가. 그와 같은 대사가 스치듯 지나가는 가운데 이들은 아칸소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다. 영화는 이들의 새 시작을 가까이서 비춘다.
▲ 영화 <미나리> 스틸컷 |
ⓒ 판씨네마 |
제이콥에겐 외딴 트레일러 집은 양보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는 농장을 꾸려 한국음식에 쓰이는 채소를 길러낼 계획이다. 갈수록 늘어가는 한국 이민자를 생각하면 한국 음식, 그에 들어가는 재료가 각광받게 되리란 계산이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며 얻은 수익만으론 아메리칸 드림, 본래 이민을 오며 생각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막막함이 크게 작용했다. 젊고 힘이 있을 때 어떻게든 성패를 가려보겠단 게 제이콥의 마음이다.
첫 농사다 보니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농장에 필요한 물을 끌어와 대는 것부터가 문제다. 생산한 농작물을 사기로 한 한인 사업가들까지 말을 바꾸니 사업이란 그리 쉽게 성패를 가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의 지지라도 있어야 하겠으나, 아내는 아내대로 불안하고 고민이 커서 제이콥의 마음도 좁아지기만 한다.
늘어나는 빚 속에 쉴 틈 없이 일하는 두 사람이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간절했다.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윤여정 분)가 아칸소로 오게 된 계기다.
▲ 영화 <미나리> 스틸컷 |
ⓒ 판씨네마 |
<미나리>는 역경과 이해에 대한 이야기다. 낯선 나라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으려는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는 역경에 맞선 가족의 도전기가 된다. 이민자의 경제적 어려움과 일상적 인종차별, 사회적 연결망의 부재, 그로 인한 고립과 가난의 위협 등이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운 현실감 있는 실화로써 실감나게 구현된다.
한편으로 영화는 구성원이 서로를 이해하는 가족드라마이기도 하다. 손자 데이빗이 처음엔 낯설어 하던 할머니 순자를 이해하는 과정이고, 또 사위가 데면데면하던 장모 순자에게 다가서는 과정이기도 하다. 삶에 지쳐 처음 마음과 달리 멀어졌던 부부가 그래도 남편과 아내라고 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조금씩 생물학적 가족을 넘어 현지의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 또한 담겨 있다. 말하자면 영화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포착한다. 구성원들이 부부와 가족, 이웃이란 이름으로 결합하는 모습을 붙든다. 때로 감당키 어려운 재앙이 있을지라도.
▲ 영화 <미나리> 포스터 |
ⓒ 판씨네마 |
정이삭의 드라마는 그저 희망차기만 하지는 않다. 삶 가운데 어찌할 수 없는 재난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의 가능성을 포착한다. 토네이도를 쫓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트위스터스> 연출은 그의 지난 필모그래피를 볼 때 점프컷처럼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삶 가운데도 토네이도 못지않은 재난이 언제든 있으니까 말이다.
전 재산이 든 헛간을 태우는 불길은 분명한 재난이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그에 대항하는 모습은 희망이다. 금방이라도 갈라설 듯 위태롭던 저들의 지난 시간이 차라리 더 취약해보였던 것은 이 영화가 재난으로부터 희망으로 다가섰음을 알린다. 화재보다도 부부의 일상적 다툼을 더욱 재난처럼 그린 정이삭이다.
그렇다면 토네이도를 다룬 작품 또한 남다르게 그려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정이삭이 <트위스터스>의 적임자라고 주장해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를 감탄시킬 수 있으리라고, 진정으로 다를 수도 있겠다고.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기차 배터리만 위기일까... 위험한 윤 정부의 자화자찬
- "김 국장 죽음 조사해야...한국 부패 선진국 될 수도"
- 이장우 대전시장 "친일 작가 전집 발행, 전면 중단" 지시
- 박찬대 "채상병 특검, 한동훈 안 수용"...한 대표 답변은?
- '노동법원' 30년 논의에 마침표를 찍자
- 암벽에 새긴 "일본 망해라", 누가 썼을까
- "개는 개답게"란 말, 당신은 어떨 때 쓰시나요?
- [오마이포토2024] "KBS를 극우친일방송, 땡윤방송으로 만드는 박민 즉각 사퇴"
- 이틀 앞 민주당 전당대회, 유일한 '뇌관'은 정봉주
- 윤 대통령, 25만원법-노랑봉투법 거부권 재가... 모두 21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