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복수 해봐서 아는데...' 이 유명한 말의 주인공
[김종수 기자]
▲ 파울로 코스타를 상대로 앞차기를 시도하는 이스라엘 아데산야(사진 오른쪽). 아데산야는 거리를 두고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
대신 부족한 부분을 특유의 스토리나 유려한 언변으로 채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애니메이션 및 영화광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옹박>을 보고 파이터의 꿈을 꾸고, 일본만화 <나루토>의 주인공 우즈마키 나루토를 가장 존경하며 <데스노트>를 즐겨봤다고 밝혔다. 유명 격투만화 <파이터 바키>의 여러 장면을 스스로 흉내내며 SNS에 올리기도 했다.
만화 속 주인공은 시련을 겪지만 이겨내고 결국 정상에 선다. 아데산야 역시 종종 영화나 만화속 주인공에 스스로 빙의하기도 한다. 그런 아데산야를 향해 '오타쿠 같다'고 놀리는 이들도 있다. 아데산야 본인은 별반 신경 쓰지 않는다.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격투 인생 최대 천적 잡아내다
지난해 4월까지 아데산야 격투 인생에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알렉스 페레이라(36·브라질)였다. 일부에서는 '라이벌'이다고 포장해주기도 했지만 냉정히 봤을 때 아니었다. 그냥 일방적으로 당한 열세 관계였다. 중요한 순간마다 당했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영광을 빼앗겼다. 아데산야 입장에서는 페레이라가 빌런 대장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재작년 11월 이전까지만 해도 아데산야는 '미들급 역대 최강'을 논하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화려한 파이팅 스타일에 비해 판정 경기가 많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스트라이커, 레슬러, 주짓떼로 등 상대 유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내며 자신을 부정하는 이들과 싸워나갔다. 하지만 또다시 페레이라표 지뢰가 터졌다.
페레이라에 대한 아데산야의 원한은 깊었다. UFC 287대회 전까지 상대 전적 0승 3패였다. 킥복싱 무대서 2번, UFC에서 한 차례 패했으며 마지막 패배 과정에서는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까지 빼앗겼다. 아데산야는 미들급에서 12연승을 거두며 무적의 챔피언으로 군림해왔다. 더 이상 해당 체급에서는 이룰 게 없어 보였다.
입식 격투가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던 숙적은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킥복싱 무대서 전장을 옮겨온 페레이라는 UFC에 입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아데산야와 매치업이 성사됐고 5라운드 TKO로 승리를 거두며 벨트마저 가져갔다. 격투 스포츠에서 최정상급 선수가 특정 상대에게 내리 3연패를 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아데산야는 지난 세 번의 경기에서 분명 내용적인 면에서는 이기고 있었다. 그러나 페레이라의 전매특허인 왼손 훅이 폭발하며 막판 역전패를 허용하는 마무리를 반복했다. 페레이라의 약진과 함께 아데산야의 최강 이미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페레이라와의 4번째 대결(UFC에서는 2번째)은 그야말로 격투 인생을 걸고 승리를 가져가야만 하는 한판이었다.
아무리 아데산야가 그간 이뤄놓은 게 많다고 해도 특정 상대에게 자꾸 지면 자신감이 무너진다. UFC 기준 2차전에서마저 진다면 팬들도 등을 돌릴 것이고 주최 측에서도 다른 흥행카드를 만지작거릴 공산이 컸다. 랭킹 쟁탈전에 들어가 밑에서부터 다시 치고 올라와야 되는 상황이 펼쳐지지 말란 법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아데산야는 해냈다. 아데산야는 2라운드에 다리에 데미지를 입은 척하며 페레이라를 유인했다. 직전 경기에서 다리에 충격을 받아서 스텝이 묶인 사이 맹공을 허용해 KO패 한 것을 역이용한 전략이었다. 아데산야의 준비된 낚시는 성공했다. 페레이라는 절뚝거리는 아데산야를 따라 들어가 피니시를 노리고 펀치와 니킥을 퍼부었다.
그 순간 아데산야는 페레이라의 타격 빈틈을 노리고 있었고 눈에 들어왔다 싶은 순간 전광석화 같은 오른손 오버핸드훅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한방을 허용한 페레이라는 큰 충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오버핸드훅이 한번 더 터지자 실신한 페레이라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승리후 아데산야는 "복수는 달콤하다고 하던데, 실제로 해보니 정말 달콤하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행복감을 느껴봤으면 좋겠다"라며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면 무엇인가를 계속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현 미들급 챔피언 드리퀴스 뒤 플레시(사진 왼쪽)는 전진 압박을 즐긴다. |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
페레이라 이후 다시 날을 세우고 있는 또 다른 숙적이 있으니 다름아닌 미들급(83.9kg) 챔피언 드리퀴스 뒤 플레시(30·남아공)다. 오는 18일(이하 한국시간) 호주 퍼스 RAC 아레나에서 열리는 'UFC 305: 뒤 플레시 vs 아데산야' 메인 이벤트가 그 무대다. 둘의 맞대결은 이번에 처음인데도 정말 많이 싸운 관계같다. 옥타곤이 아닌 장외에서 독설, 논쟁을 주고받으며 앙숙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작은 뒤 플레시였다. 그는 지난해 3월 데릭 브런슨과의 대결을 앞두고 미디어데이에서 "UFC 챔피언 벨트가 아프리카에 온 적이 있었던가?"라고 물었다. UFC에는 카마루 우스만(37·미국/나이지리아), 이스라엘 아데산야, 프란시스 은가누(37·프랑스/카메룬) 등 세 명의 아프리카 챔피언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파이터들이었다.
뒤 플레시는 "내가 UFC 아프리카 파이터다. 나는 아프리카 공기를 마신다. 나는 매일 아프리카에서 일어난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여전히 살고 있다. 그게 아프리카 챔피언이다"고 강조했다.
이는 아데산야의 신경을 크게 건드렸다. "네가 누군데 우리의 아프리카인다움을 의심하느냐?"고 분노했다. 아데산야는 아프리카 출신인 우스만, 은가누와 자신을 데이비드 O. 러셀의 영화를 따라 '쓰리 킹즈'라고 부르며 형제처럼 지낸다.
뒤 플레시가 내세우는 건 현재 거주지다. 아데산야와 우스만, 은가누는 이민을 떠나 더 이상 아프리카에 살지 않는다.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업적을 만들겠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한다.
반면 아데산야가 내세우는 건 인종과 고난의 역사다. 아프리카 흑인은 굶주림과 정치 불안으로 인한 폭력, 나라를 떠나서는 인종차별을 겪었다. 그에 반해 뒤 플레시는 백인 특권층으로 대다수 아프리카인들이 경험하는 고난을 겪지 못했다는 게 아데산야의 입장이다. 아데산야는 지난해 7월 옥타곤에서 마주한 뒤 플레시에게 "내가 아프리카인이란 걸 증명하기 위한 DNA검사는 필요 없다. DNA 검사를 해봐라. 네가 어디 출신인지 알려줄 것이다"고 소리쳤다.
뒤 플레시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 남아공으로 이주한 프랑스 위그노의 후예다. 그래서 프랑스 성을 갖고 있다. 아데산야는 뒤 플레시의 발언을 아프리카 쓰리 킹즈의 업적을 지우려는 식민주의자적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어쨌거나 둘은 파이터다. 결착은 옥타곤 안에서 낼 수밖에 없다. 뒤 플레시와 아데산야는 둘 다 킥복서 출신이다. 뒤 플레시는 저돌적으로 압박하는 스타일이고, 아데산야는 레그킥을 차며 기회를 노리다가 타이밍을 노려 카운터 타격으로 경기를 끝내는 타입이다.
도전자 아데산야는 "내가 집중하면, 정말로 집중한다. 난 상대를 파괴한다. 이번엔 진짜 집중했고, 이 친구를 박살낼 것이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챔피언 뒤 플레시는 "아데산야가 1라운드 KO를 노린다면 경기는 2라운드 안에 끝날 것이다. 하지만 아데산야가 평소처럼 나온다면 확실히 3라운드에 끝내겠다"고 자신했다.
■ UFC 305 '뒤 플레시 vs 아데산야' 대진표
메인카드 (TVING 오전 11시)
[미들급 타이틀전] 드리퀴스 뒤 플레시 vs 이스라엘 아데산야
[플라이급] 카이 카라-프랑스 vs 스티브 얼섹
[라이트급] 마테우슈 감롯 vs 댄 후커
[헤비급] 타이 투이바사 vs 자이르지뉴 로젠스트루이크
[웰터급] 리징량 vs 카를로스 프라치스
언더카드 (TVING 오전 9시)
[헤비급] 주니어 타파 vs 발터 워커
[페더급] 조쉬 쿨리바오 vs 히카르도 하모스
[여성 플라이급] 케이시 오닐 vs 루아나 산토스
[페더급] 잭 젠킨스 vs 허버트 번즈
파이트패스 언더카드(UFC 파이트패스 오전 7시 30분)
[라이트급] 톰 놀런 vs 알렉스 레예스
[웰터급] 송커난 vs 릭키 글렌
[플라이급] 스튜어크 니콜 vs 헤수스 아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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