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이 더 덥노, 욕본다"…공무원들 '악몽의 28도' 44년째
16일 오후 1시20분쯤 부산 연제구 연제동 부산시청사 10층. 낮 최고 기온이 33도까지 오른 이날 총무과 사무실 온도는 28.3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공공기관 실내 권장 온도(28도)보다 0.3도 높은 정도였다. 하지만 사무실에 머물며 청사 관리 담당 공무원들과 이야기하며 20여분 동안 머물자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흘러내렸다.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어서 실내 온도가 29도 가까이 오를 때도 있었다. 직원 자리마다 선풍기를 돌리며 버틴다”고 말했다.
“시청이 더 덥노” 노인들 은행 몰렸다
1999년 연제동으로 옮겨온 부산시청사 28층짜리 건물엔 직원 3000여명이 일한다. 청사관리팀에 따르면 이 건물은 중앙 냉ㆍ난방 방식이어서 특별히 더 덥거나 시원한 층은 없다고 한다. 온도를 28도로 설정해 냉방을 돌려도 매년 7월 말부터 8월 중순 사이 3주가량은 모든 층 사무실 온도가 28도를 넘어간다. 민원인 응대 업무를 주로 하는 2층 행복민원실과 일부 회의실을 제외하고는 시장실에도 에어컨 등 냉방 기기가 따로 없다.
이날 시민 개방 공간인 부산시청 1, 2층 복도 쉼터엔 에어컨 대신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공간이 넓고 외부로 드나드는 출입문이 있는 만큼 쉼터에까지 에어컨을 가동하긴 어렵다고 한다. 더위를 피해 시청사 쉼터를 찾은 노인들은 선풍기 앞자리에 앉아 쉴 새 없이 부채질을 했다. 권장 온도인 28도보다 더 시원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시청사 내 민간 은행 점포 등에도 사람이 몰렸다. 대중교통과에 볼일이 있어 시청에 왔다는 60대 진모씨는 “시청에 들어오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민원 업무를 보는 동안 땀이 흥건해져 여기(은행)에 왔다”고 했다. “이래 더운데 (공무원들이) 어째 친절하게 대해주겠노? 참말로 욕본다.” 진씨가 덧붙인 말이다.
열대야 기록 갈아치워도, 44년째 ‘28도’ 규정
부산시청 같은 공공기관은 행정 규칙인 ‘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에 따라 여름철 실내 온도를 28도로 유지한다. 44년 전인 1980년에 만들어진 이 규정은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에 근거를 뒀다. 28도 아래로 낮추더라도 처벌받는 건 아니지만, 에너지 소비량이 예년보다 증가한 기관엔 페널티(불이익)가 주어질 수 있다.
이 규정이 관행적으로 유지되는 사이 폭염과 열대야는 해마다 심해졌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부산의 폭염(낮 최고 33도 이상) 일수는 2000년 4.3일에서 지난해 11.2일로, 이 기간 열대야(밤 최저 25도 이상) 일수는 9.2일에서 23.8일로 늘었다. 16일 기준 부산엔 22일 연달아 열대야가 이어져 1904년 관측 이래 ‘연속 열대야 일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이날 기준 서울(26일 연속)도 연속 열대야 일수 최장 기록을 다시 썼다. 인천엔 24일, 제주에선 32일 동안 열대야가 이어졌다.
올해 이런 폭염이 예상되자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6월 “올해 여름엔 실내 온도를 26도로 낮출 수 있다”는 취지의 공문을 각 공공기관에 보냈다. 하지만 시ㆍ구청과 일선 행정복지센터 등 민원인이 많은 기관에선 여전히 냉방 온도를 28도에 맞추고 있다고 한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냉방 온도로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인이 있을까 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8도 기준, 조절 논의 절실”
공무원 사회 일각에선 해마다 폭염이 심해지는 만큼 40년 넘게 이어져 온 실내 온도 28도 규정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공공기관이라도 에너지 절약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매년 여름 전력 총수요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최근 들어선 각 지자체도 탄소 배출 제재 압박을 받는 등 현실적 부담도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최고 기온이 매년 오르고, 폭염과 열대야 일수 등이 길어지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공공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해서라도 28도 기준 조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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