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기의 난'…中국기 안 달았다고 대만계 호텔 "퇴출" 테러

신경진 2024. 8. 1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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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중국 인플루언서 '장교관'이 프랑스 파리의 대만계 호텔체인인 에버그린 로렐 호텔 로비에서 지배인에게 중국 국기가 걸리지 않았다며 항의하고 있다. 오른쪽은 파리 올림픽 기간 로비에 걸린 만국기. 사진 웨이보 캡처

중국의 '대만 옥죄기'가 관·민 할 것 없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엔 대만계 호텔 체인이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 게양을 거부했다며 온라인 불매 운동까지 생겨났다. 중국 당국의 '공포 통치'로 대만인들의 중국 탈출이 급증하는 등 대만 측이 느끼는 불안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16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최근 대만계 호텔에 대한 온라인 테러는 한 중국인 여행 인플루언서가 불을 지폈다. ‘장교관적유취인생’(이하 장교관))이란 아이디를 쓰는 해당 인플루언서가 웨이보(微博·중국판 X)에 프랑스 파리의 대만계 호텔인 에버그린 로렐 호텔이 파리 올림픽 기간 중국 국기 게양을 거부했다고 온라인에 고발하면서다. 설상가상 이 호텔의 홈페이지에 중국과 대만이 나눠 표기돼 있다는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까지 나왔다.

급기야 중국 네티즌의 불매 요구가 폭주하면서 중국의 플랫폼 기업들이 해당 호텔을 온라인에서 퇴출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는 가운데 대만 언론은 ‘오성기의 난(亂)’이라며 중국 국기 리스크를 우려했다.

장교관은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지난 11일 파리 에버그린 로렐 호텔에 체크인하는 과정에서 로비 천장에 걸린 만국기 가운데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동영상 게시물을 지난 13일 올렸다. 이어 "(휴대한 비슷한 크기의) 오성홍기를 공짜로 주겠으니 걸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직원은 책임자가 휴가 중이라 자신이 결정할 권한이 없다며 거절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호텔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 국적 주방장에게 들었다"며 "오성홍기가 본래 만국기 중에 있었지만, 대만인 지배인이 잘라낼 것을 요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지불한 호텔 숙박비를 포기하고 당시 촬영한 영상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장교관은 이튿날에도 유사한 동영상을 올렸다. 호텔 지배인이 만국기를 구입할 당시부터 중국 국기가 들어있지 않다며 장식할 권한은 호텔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 주방장은 호텔 투숙객의 60~70%가 중국인 관광객이라고 주장했고, 호텔 지배인은 5%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 두 번째 영상에 강하게 반발했다. 네티즌들은 “에버그린 계열 호텔엔 묵지 말자” “대만 독립 반대” 등의 글을 올리며 호텔 불매 운동에 나섰다. 일각에선 오성홍기 게양을 둘러싸고 대만 기업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중국 관영 매체였다. 지난 15일 관영 중국신문사 산하인 '국시직통차(國是直通車)'는 상하이의 에버그린 로렐 호텔 홈페이지가 중국과 대만을 병렬로 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대만을 독립국으로 표기한 것이란 항의였다.

또 온라인에선 "에버그린 항공사의 상하이 사무소 홈페이지가 중화민국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온종일 에버그린 이슈가 중국 SNS를 도배했다.

결국 중국 플랫폼 기업들도 이런 시류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중국 최대 인터넷 여행사인 씨트립은 상하이, 말레이시아 페낭, 태국 방콕의 에버그린 로렐 호텔의 예약 서비스를 중단했고, 가오더(高德)와 바이두(百度) 지도 서비스가 상하이 에버그린 호텔 표기를 삭제했다. 생활정보 안내 플랫폼인 다중뎬핑(大眾點評)은 상하이 체인의 식당을 '영업 정지'로 표시했다.

대만계 호텔 체인인 에버그린 로렐 상하이호텔 홈페이지에 15일 밤 최근 파리 체인점의 중국 오성홍기 미게양과 관련해 부주의함이 있었다며 올린 사과문. 사진 에버그린호텔 사이트 캡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상하이 에버그린 로렐 호텔은 홈페이지에 사과 성명을 게재했다. 성명에선 "파리 지점의 일 처리가 경솔했다"며 고객에게 불편을 끼친 데 대해 사과했다. 성명은 또 "에버그린 그룹의 창업자 창룽파(張榮發)는 생전에 양안의 경제 무역 협력에 온 힘을 다했다"며 "호텔은 당시 이념을 받들어 양안 관계가 평화롭게 발전하고 양안 인민이 앞으로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대만 “민족주의로 위대한 중국 못 만들어”


이처럼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대만 정부도 발끈했다. 15일 대만 대륙위원회의 량원제(梁文傑) 대변인은 “민족주의로 비즈니스를 간섭하고, 트래픽을 올리는 행위는 중국을 위대하게 만들지 못하고, 국제사회에 더욱 반감을 키울 뿐”이라고 비난했다. 중국에서 민족주의가 트래픽을 올리는 비즈니스로 전락했으며, 유사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반면 중국 측은 묵묵부답이다. 중국 대만판공실과 주프랑스 중국 대사관 등 당국은 16일까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과거에도 유사 사례들은 있었다. 중국 온라인 여행사들은 2016년 주한미군이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하자 한국 여행 상품을 모두 퇴출했다. 관련 당국이 유선으로 여행사들에 '한한령(限韓令)'을 발동한 결과였다. 2018년에는 글로벌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 호텔이 홈페이지에서 티베트·홍콩·마카오·대만을 ‘국가’와 대등하게 분류했다는 이유로 상하이 지방 정부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당시 메리어트 측은 홈페이지 서비스를 중단하고 표기를 수정한 뒤 공개 사과했다.


“중국 내 대만인 탈중국 엑소더스”


대만인들이 더 크게 공포감을 느끼는 건 중국의 사법 판단이다. 16일 BBC는 "중국 당국이 대만 독립 성향의 인사들에게 최대 사형을 구형할 수 있다는 법 집행 방침을 밝히면서 불안을 느낀 대만인들이 앞다퉈 중국을 탈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2009년에는 중국에 거주하는 대만인이 40만명이 넘었지만, 2022년엔 17만7000명으로 급감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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