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소개소 사장의 고용정책, 대통령보다 낫네
[양형석 기자]
<타짜>와 <도둑들>, <암살> 등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은 6편에 불과한 필모그라피 중에서 두 번이나 '1인 2역 캐릭터'가 등장했다. 최동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박신양이 사기꾼 최창혁과 김선생(백윤식 분)에게 사기당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최창혁의 형 최창호를 모두 연기했다. 영화에서는 최창혁이 서인경(염정아 분)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최창호처럼 '연기'하기도 했다.
2015년에 개봉한 <암살>에서는 전지현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암살 작전 대장이자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과 안옥윤의 쌍둥이 언니 미츠코를 동시에 연기했다. 미츠코는 영화 중반 안옥윤과 대면하는 장면에서 "나도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 좋아해. 그런데 넌 안 했으면 좋겠어"라며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미츠코는 자신을 안옥윤으로 오해한 강인국(이경영 분)의 총에 맞고 사망한다.
이처럼 한 배우가 영화 속에서 두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는 것은 배우에게 매우 어려운 도전이지만 관객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다. 지난 1993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에서도 이 배우의 1인 2역 연기가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케빈 클라인이 미국 대통령과 미 대통령의 대역으로 나선 평범한 직업 소개소 사장을 동시에 연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고 아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데이브>였다.
▲ 케빈 클라인(오른쪽)과 시고니 위버는 복잡할 수 있는 미국의 정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표현했다. |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
데이브는 평소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착하고 이타적인 인물이지만 빌 미첼 대통령은 반듯한 외모 뒤로 뒤에서는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대통령이다. 이 때문에 영부인 엘렌 미첼 여사(시고니 위버 분)와의 사이도 좋지 않고 결국 젊은 여성과 바람을 피우다가 뇌사 상태에 빠진다(대통령과 바람을 피우는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트루먼쇼>, <러브 액츄얼리>등에 출연했던 로라 리니였다).
데이브는 노숙자 쉼터에서 따뜻한 모습을 보이지만 비서실장 알렉산더(프랭크 란젤라 분)는 노숙자를 위한 복지 법안을 거부한다. 이에 데이브는 회계사 친구를 백악관으로 불러 나라의 엉망인 재정을 찾아내 새는 돈을 막아 복지 법안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부패한 비서실장을 해고한 후 과감한 고용 정책을 시행한다. 데이브는 대통령 '대역'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은 '진짜'였던 것이다.
<데이브>는 백악관 내의 권력 다툼과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비리 등 정치권의 어두운 면이 많이 등장하지만 결코 감상하기에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데이브와 엘렌의 묘한 러브 라인이 관객들을 녹여주기 때문이다. 대통령인 남편과 사실상 남남처럼 지내는 엘렌은 데이브의 착하고 소박한 마음씨에 감동 받아 영화 막판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소박한 차림으로 데이브가 운영하는 직업 소개소를 찾아간다.
<데이브>는 국내에서 서울 관객 7만 3000명으로 큰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개봉 19년이 지난 2012년 관객들에게 다시 회자됐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데이브>와 비슷한 소재로 왕의 대역이 등장한 한국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가 개봉했기 때문이다. 물론 <광해>는 조선 시대 배경인 만큼 세세한 사건 전개 등이 많이 다르지만 기본적인 설정과 캐릭터들은 <데이브>와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
▲ 대통령 경호실장은 데이브가 대역임을 알았음에도 끝까지 데이브를 돕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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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첼 대통령이 쓰러지기 전부터 대통령과 온갖 비리를 공모했던 부패한 비서실장 알렉산더는 대통령이 쓰러진 후에도 자신이 정권의 실세가 되기 위해 데이브를 대통령의 대역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오히려 데이브에 의해 해고를 당하고 미첼 대통령의 부정부패를 터트리면서 데이브를 위기에 빠트리지만 공보 담당 앨런 리드(케빈 던 분)의 도움으로 데이브에게 역습을 당한다.
알렌산더는 대통령이 쓰러지자 해외 순방 중인 낸스 부통령에게 모든 비리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낸스 부통령은 누구보다 강직하고 청렴한 인물로 알렉산더의 구속과 미첼 대통령 사망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데이브>에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넘긴 낸스 부통령을 연기한 배우는 1983년 <간디>로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던 영국 배우 벤 킹슬리였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해킹과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IT 전문요원 루터 스티켈을 연기했던 빙 레임스는 <데이브>에서 경호실장 스티븐슨 역을 맡았다. 대통령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묵한 보디가드' 스티븐슨은 <데이브>에서도 조용히 경호에 전념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데이브의 탈출(?)을 도우면서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소"라는 대사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 <데이브>는 북미에서만 제작비의 2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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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펜잔스의 해적>과 <실버라도>, <자유의 절규> 등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클라인은 1988년 범죄 코미디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에 출연했다.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에서 완다의 오빠 오토를 연기한 클라인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클라인은 1990년대 초반에도 <바람둥이 길들이기>, <내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 등에 출연하며 젠틀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클라인은 1993년 <고스트 버스터즈>의 아이반 라이트만 감독이 연출한 <데이브>에서 1인 2역에 도전했다. 2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데이브>는 신선한 스토리와 클라인의 열연에 힘입어 북미에서만 63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맥 라이언과 호흡을 맞춘 <프렌치 키스> 역시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세계 흥행 1억 달러를 돌파했다.
1999년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서 한창 떠오르던 신예 배우 윌 스미스와 함께 출연한 클라인은 2000년대까지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011년에는 <데이브>를 만들었던 아이트만 감독과 18년 만에 재회해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아들의 여자 친구를 빼앗는 애쉬튼 커처의 바람둥이 아버지를 연기하기도 했다. 클라인은 환갑이 훌쩍 지난 나이에도 특유의 '중후한 섹시미'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10~20대의 젊은 관객들에게는 1968년에 설립된 패션 브랜드에 인지도가 밀리지만 중년 이상의 관객들에게 케빈 클라인은 1980~90년대를 주름 잡았던 스타 배우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2017년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올라 <프레즌트 래프터>로 36년 만에 토니상을 수상한 클라인은 1980년대 '책받침 여신'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피비 케이츠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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