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전 회장이 쏘아 올린 공…'제왕적 권력' 금융그룹 지배구조 '수술대'
임기 만료 회장·은행장 거취에도 '불똥'
우리은행에서 전 지주 회장이 연루된 대규모 부적정 대출 의혹이 불거지면서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금융지주 회장의 절대적 권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금융권 지배구조 개편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16일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 부정적 대출 의혹으로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둔 조병규 행장의 거취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임기 절반이 남은 임종룡 회장에 대한 책임론도 확산되고 있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을 대상으로 616억원에 달하는 대출을 실행했는데, 이 중 350억원 가량이 특혜성 부적정 대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손 전 회장이 물러난 이후에도 올해 초까지 관련 대출이 추가로 취급되며, 현 임 회장이 조직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거듭되는 금융사고 발생에 우리금융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번 사건은 여신 심사 절차에 의한 부실 대출 사고로 선을 그었다. 우리은행은 지난 4월 해당 직원을 징계했지만, 금감원에 보고하거나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규정 시행세칙 67조1항에 따라 취급여신 부실은 금융사고로 보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우리은행은 뒤늦게 추가 조사를 벌여 이달 9일 부당대출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소했지만, 손 전 회장은 포함하지 않았다. 임 회장은 최근 열린 긴급 임원회의에서도 이번 사건의 원인을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인 일부 직원들의 처신"으로 못박았다. 고위급의 배임·횡령이 아닌 일부 직원의 잘못이라는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시각은 다르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의 부당대출 검사 결과를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지주 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체계에서 지주 및 은행의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한다"고 언급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손 전 회장이 연관됐는지 여부는 수사기관에서 밝혀 낼 부분"이라면서도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지주 회장의 책임은 없고 권한만 부각되는 점이 항상 제기돼왔고, 이런 의미에서 내부통제 문제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손 전 회장의 영향력은 최근까지 그룹 전반으로 미쳤다. 부당대출은 손 전 회장이 재임 중이었던 퇴임 이후인 올해 초까지 4년간 이어졌다. 퇴임 직후에는 우리은행 측과 연간 4억원을 받는 고문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몇 년간 부정적 대출이 이뤄졌지만, 내부통제를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나 상임감사는 유명무실했다.
심지어 해당 기간 우리은행 상임감사는 금융 감독에 전문성을 가진 금감원 출신이었다. 우리금융 준법 담당 고위 관계자는 "내부통제 관련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준법 감시인 소관이고, 사고가 난 이후 사안을 밝혀 징계를 하는 부분이 감사의 영역"이라먼서도 "감사 인력들도 올해 1월 자체 감사를 통해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내부통제를 지속 개편해왔음에도 사고가 발생해서 회장님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며 "재발방지를 위해 여신 프로세스를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사건이 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를 개편할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상초유의 지주 회장이 연루된 금융사고는 지주 회장의 장기집권에 대한 강력한 반대 명분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같은 이유로 금감원이 임 회장의 연임을 미리 견제하기 위한 '경고' 보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사건이 제보로 시작됐고, 금감원의 검사 결과 발표 시점도 미묘하다는 이야기가 도는 이유다.
임기 만료를 눈 앞에 둔 지주회장이나 행장은 부담이다. 금감원은 상반기부터 지주·은행 이사회 릴레이 간담회를 진행 중이다. 종합감사가 예정된 KB국민은행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주·은행 사외이사들과 면담을 갖고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금감원은 사외이사의 역할과 권환을 강화해 은행 지배구조 및 내부통제를 감시할 방침이다.
5대 은행장 임기는 올해 연말 일제히 만료된다. 차기 행장 인선 작업은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 따라 다음달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금융지주에서는 이석준 NH농협금융 회장이 올해 말,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이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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