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정당행위 상황 착각한 '정당한 이유'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자신을 밀치는 경찰관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오인해 경찰관을 밀쳐낸 남성에게 공무집행방해죄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해당 남성이 경찰관의 행위를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보다 엄격하게 따져봤어야 한다는 취지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채,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의 판단에는 위법성 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 형법 제16조의 '정당한 이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라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형법 제16조(법률의 착오)는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에 의해 금지돼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허용돼 있다고 착각하고 행위한 경우 그렇게 오인한 데에 정당한 이유가 인정될 때만 범죄 구성요건 중 책임이 없다고 인정해 범죄가 성립되지 않도록 한 규정이다. 통상 학계에서는 형법 제15조의 사실의 착오와 구별해 '금지착오'로 불린다.
한편 이번 사안처럼 위법성이 조각되는 상황, 가령 정당방위 상황이나 정당행위 상황을 오인한 사례를 학계에서는 '위법성 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로 분류한다.
구성요건적 사실에 관한 착오인 '사실의 착오'와 법적 금지에 대한 착오인 '금지착오'의 중간 영역에 속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늦은 밤 집에 들어온 친구나 이웃을 강도라고 착각, 정당방위 상황으로 오인하고 폭력을 행사한 경우나 이번 사건처럼 공무원의 적법한 공무집행을 위법하다고 오인하고 해당 공무원을 제지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경우가 전형적인 예다.
대법원은 그처럼 상황을 오인한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왔다.
이씨는 2022년 6월 24일 자정 가까울 무렵 택시를 잡아서 승차했지만, 택시기사가 예약 택시라는 이유로 하차를 요구하자 승차거부로 신고하겠다며 하차를 거부했다.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경찰서로 갔고, 인근 용산 이태원파출소 앞 도로에 택시를 정차한 택시기사는 파출소로 들어가 '예약 택시인데 손님이 마음대로 타서 안 내린다'는 취지로 신고했다.
이후 A 경위(남)와 B 순경(여)이 이씨가 타고 있는 택시로 다가가 택시 앞 '예약' 푯말을 확인한 뒤 이씨에게 택시에서 내리라고 얘기했지만 이씨는 하차하지 않았다.
이씨가 승차거부로 택시기사를 신고하겠다고 하자 B 순경은 이씨에게 "승차 거부와 관련해선 120번으로 민원을 접수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야기한 것과 말이 다르지 않느냐"며 고성을 내며 항의했고, B 순경은 "뭐가 다르냐"고 받아쳤다.
이씨가 항의하며 B 순경에게 다가가자 옆에 있던 A 경위는 이씨를 밀치며 제지했고, 이씨는 그런 A 경위를 두 차례 밀치면서 "왜 미는데요?"라고 항의했다.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지다 A 경위가 다시 이씨를 당기고 밀치자 이씨는 A 경위를 밀면서 실랑이를 했고, 이후 다른 경찰관들이 출동해 이씨를 제압하면서 상황이 정리됐다.
검찰은 이씨가 모두 4차례에 걸쳐 적법한 공무집행 중인 A 경위를 밀쳤다고 판단,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택시기사의 승차 거부는 현장에 있는 경찰관에게 직접 신고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씨가 A 경위와 B 순경에게 신고 접수를 요구한 것이 부당한 행위라고 볼 수 없는 점 ▲A 경위와 B 순경이 택시 앞에 있는 '예약' 푯말만 보고 예약 택시라고 단정, 택시기사를 보내고 이씨에게 다른 택시를 타고 돌아가라고 한 점 ▲이씨가 손을 뒤로 하거나 팔짱을 낀 채 상당한 시간 동안 항의를 계속했을 뿐 욕설을 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던 점 ▲A 경위가 이씨를 두 차례 밀치자 이씨가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행위를 하게 된 점 등을 그 같은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B 순경에게 큰 소리를 치면서 몸을 앞으로 들이 밀은 행위는 피고인의 승차거부 신고접수를 받아 주지 않는 부당한 경찰관들의 행위에 적극적으로 항의를 하기 위한 행위로 보이고, 그럼에도 A 경위가 피고인을 두 차례에 걸쳐 세게 밀자 피고인이 A 경위를 밀게 됐는데, 피고인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경찰관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항하여 한 행위로 보일 뿐이고 사회적 통념상 상당한 정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렇다면 피고인의 폭행 행위는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되므로, 피고인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검사는 항소했지만 2심 법원도 1심 법원의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달리 이번 사안이 정당행위 상황을 오인한 '위법성 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 사례라고 봤다.
먼저 재판부는 "당시 고성을 지르면서 여자 경찰관에게 다가가는 피고인이 유형력을 행사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남자 경찰관이 피고인을 제지하기 위해 밀치는 행위 및 그 이후에 이뤄진 일련의 행위는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에 따른 행위라고 못 볼 바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소강상태 이후의 남자 경찰관의 행위만 떼어내 보면 피고인이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아니함에도 목 부위를 잡아당기고 미는 등의 행위를 하고 있으므로, 위법하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전후 맥락을 고려한 전체 상황을 보면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며 "따라서 경찰관들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의 입장에서도, 단지 고성으로 항의만 했을 뿐 유형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 아닌데 남자 경찰관이 유형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을 밀치고 당기는 등의 행위를 하자 이에 저항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서, 당시 남자 경찰관의 유형력 행사가 경찰권 남용으로 위법하다고 오인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못 볼 바 아니다"라며 "따라서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는 위법성 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가 있어 책임이 조각된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그렇다면 피고인에 대해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씨의 행위를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 위법성이 없다고 본 1심 범원의 판단은 잘못됐지만, 이씨가 무죄라는 결론은 옳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고인이 자신의 몸을 밀어낸 A 경위의 행위를 위법하다고 오인해 A 경위를 밀친 것이므로 이는 위법성 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라고 판단했다"라며 "그러나 이 사건에서 위와 같은 행위로 나아가게 된 전제사실 자체에 관하여는 피고인의 인식에 어떠한 착오도 존재하지 않고, 다만 경찰관인 A 경위의 직무집행의 적법성에 대한 피고인의 주관적인 법적 평가가 잘못됐을 여지가 있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므로 피고인에게 위법성 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착오한 것은 A경위가 자신을 밀치는 행위가 경찰관의 직무집행 행위로서 적법한지, 위법한지에 대한 것일 수 있을 뿐, 경찰이 자신을 제지하기 위해 유형력을 행사한다는 사실 자체에는 이씨의 인식에 착오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즉 사실 측면에서의 착오가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공무집행이 적법한데도 위법하다고 오인한 경우에는 형법 제16조가 적용되므로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않는다"라며 "그런데 피고인은 택시 승차거부와 관련한 경찰관들의 반복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항의를 계속하다가, A 경위가 B 순경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자 곧바로 욕설을 하며 A 경위를 여러 차례 밀었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의 행위는 당시 피고인이 술에 취했던 점이나 그 상태에서 근거 없는 항의를 계속하면서 스스로 흥분하게 된 점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라며 "이처럼 피고인이 스스로 오인의 계기를 제공하지 않았거나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정도의 오인 회피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 사건에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씨가 A 경위의 행위가 위법한 공무집행이라고 생각한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술에 취한 탓에, 혹은 항의 과정에서 스스로 흥분해서 잘못된 판단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설령 원심의 판단처럼 피고인에게 자신을 제지한 A경위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오인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이는 A 경위를 밀친 피고인의 최초 행위를 정당화할 근거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이후 A 경위가 피고인에게 선제적으로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았는데도 여러 차례에 걸쳐 먼저 A 경위를 밀치며 유형력을 계속 행사한 피고인의 행위까지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이씨의 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만큼 파기환송심에서는 이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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