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후대에게 좋은 자본시장을 물려주어야 하는 이유
사회적 차원 자본 효율적 배분
부동산보다 소액주주 위한 시장을
경제 발전이란 측면에선 한국은 기적이다. 식민지 국가로 시작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 유일한 나라이다. 오늘날의 선진국 대부분이 과거 제국주의 국가였다면 점을 감안하면, ‘한강의 기적’은 괜한 수식어가 아니다. 여기에 현대 민주주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합법적인 투표를 통해 과거의 정치적 독재 체제를 청산한 몇 안 되는 국가이다.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50여년 만에 잡은 아웃 라이어이다. 이 결과의 표현이 주가 2000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내년이면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단기간의 성장에 따른 양극화 문제에 대한 논란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노동 소득이 삶에 미치는 영향 보다 자산규모의 힘이 더 커지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호주의 사회학자·경제학자들이 함께 쓴 에서는 현대를 ‘자산 이코노미(Asset Econom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자산의 보유가 인생의 기회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자산을 보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자산 분화의 시발점은 다름 아닌 주택 소유 여부라고 한다. 호주의 얘기가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의 얘기를 듣는 듯하다. 더 문제는 인구 고령화는 지역 간 양극화를 가속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정치적 입장이나 학문적 배경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국 사회에 부동산 문제만큼 첨예하고 합의가 안 되는 분야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지난 50여년간의 한강의 기적은 우리에게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와 민주주의를 남겨 주었다. 과연 지금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겨 주어야 할까. 양극화된 부동산 시장을 남겨 주어야 할까. 고갈된 국민연금을 남겨 주어야 할까. 미래를 가늠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좋은 일자리와 훌륭한 자본시장을 남겨주면,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은 자명하다.
자본시장은 사회적 차원에서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자본을 축적한 사람에게서 필요한 사람으로 흐르게 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에서 높은 곳으로 자본을 이동시킨다. 이 과정에서 리스크를 함께 한 주주들은 보상을 받는다. 자본시장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에는 젖줄 역할을 하고, 성공한 기업들은 리스크를 공유한 주주들에게 보상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국내 증시를 놓고 보면 주주들은 젖줄 역할만 하고, 보상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상장할 때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구애하다가 상장 후엔 나 몰라라 하는 기업들이 너무 많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주주들의 이익이 뒤로 밀리는 일도 잦다. 이래서는 개인투자자들이 기업의 주식을 오래 보유할 이유가 없다. 자본시장이 갖춰야 할 효율적인 자본 재배치도 일어나지 않는다.
좋은 자본시장을 갖추는 일은 자산 이코노미 시대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부동산은 입지 상품으로 개별성이 강하기에 레버리지 없이 접근하기 어렵다. 부동산 위기가 사회 전체의 위기로 확산하는 이유가 바로 부동산 시장에 내재한 레버리지 때문이다. 반면 주식투자는 소액으로도 접근이 가능하고 레버리지도 부동산 시장만큼 광범위하지 않다. 연금에서 투자하는 것은 레버리지가 불가능하다. 자본시장이 소액 주주들을 이용하고 버리는(?) 시장이 아니라 동반자로 인식하는 시장으로 개선된다면, 한국 증시도 3000포인트대 이상을 기록하지 않을까. 경제 발전, 민주주의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자본시장의 개혁이 이뤄진다면, 한국 사회는 한 단계 레벨 업되지 않을까. 최근 부동산값 상승세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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