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도, 조선도, 자동차도 '줄파업'
HD현대중공업 노조, 28일 파업 예고…계열사 노조도 연대파업
기아 노조, 현대차 교섭 조기 타결에도 파업 수순…20일 찬반투표
한국GM 노조, 잠정합의안 부결 이후 게릴라식 파업으로 사측 압박
여름휴가 시즌이 지나자 산업계가 또다시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도 문제지만, 일 년의 절반 이상을 노조와 줄다리기로 진을 빼는 고질적 관행이 심각한 병폐라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집행부의 ‘15~18일 나흘간 파업’ 지침에 따라 평일인 이날 파업에 돌입했다. 집행부는 휴일인 15일과 주말인 17~18일은 휴일 근로 거부 지침을 내렸다.
‘샌드위치 연휴’ 기간에는 사무직 직원들이 생산직 교대근무자가 빠진 생산라인에 지원을 나올 수 없다는 점을 감안, 사측에 효과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파업 일정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삼노 조합원의 대부분은 디바이스솔루션(DS) 소속으로, 이들의 파업은 주로 반도체 생산차질을 목적으로 한다.
전삼노는 지난달 8일부터 25일간 총파업을 벌인 뒤 현업에 복귀했지만, 이후에도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게릴라식 파업을 지속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동안의 파업으로 삼성전자가 입은 생산차질은 사실상 없었다. 전삼노 조합원 규모가 3만6000여명으로 전체 직원(약12만5000명)의 29% 수준인데다, 조합원 파업 참여율도 한계가 있어 생산라인을 멈추는 정도의 영향을 미치긴 어렵다.
하지만 연초부터 반년 넘게 노사 갈등이 이어지면서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는 것은 경영 측면에서 마이너스다. 전삼노가 집회를 벌이면서 사측과 경영진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일삼는 것도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HD현대도 조선 및 건설기계, 전력기기 계열사 노조의 파업 움직임으로 악재를 맞았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오는 28일 오후 2시부터 3시간 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노조는 조선업 호황이 올해부터 실적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만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에서 큰 폭의 임금인상과 성과금 지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 성과금 산출기준 변경, 정년 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임단협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한 상태다.
앞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현대일렉트릭지회, 건설기계지회는 지난달 22~24일 쟁의행위 찬반 투표에서 파업을 가결한 바 있다. 이들 중 현대중공업지회와 현대일렉트릭지회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로부터 조정중지 결정을 받아내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하다. HD현대의 다른 조선 계열사 노조인 현대삼호지회는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현대중공업지부는 28일 이전까지 사측과 교섭에 진전이 없을 경우 계속해서 파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며, 다른 계열사 노조 지회들도 쟁의권을 확보하는 대로 동조 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HD현대 계열 노조 지부와 지회가 모두 파업에 나설 경우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삼호, HD현대미포 등 조선 계열사들은 물론, HD현대일렉트릭, HD현대건설기계까지 영향권에 들게 된다.
자동차 업계도 파업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기아 노조)는 형제 회사인 현대자동차의 교섭 조기 타결에도 불구, 사측과 줄다리기를 이어가며 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기아 노조는 지난 8일 사측에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한 데 이어, 오는 20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 오는 19일로 예정된 2차 조정회의에서 중노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고 20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과반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노조는 쟁의권을 확보하게 된다.
그동안 기아는 현대차와 사실상 동일한 수준에 교섭을 타결해 왔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12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기본급 11만2000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성과금 500%+1800만원, 주식 25주 지급 등 역대 최고 조건을 담은 잠정합의안을 가결하며 올해 교섭을 최종 타결했다.
기아 역시 임금성 부분에서는 현대차 노사가 타결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년 연장과 ‘평생 차량할인’ 조항 원상복구 등 단협 쟁점이 남아있다. 특히 노조 집행부는 2022년 폐기됐던 퇴직자 평생 차량할인 제도를 부활시킬 것을 공약으로 내걸고 지난해 선거에서 승리한 터라 올해 교섭에서 관련 단협 수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GM 한국사업장은 지난달부터 이어진 줄파업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한국GM 노조)가 지난달 8~10일과 18~19일 하루 8~12시간의 파업을 벌이면서 수천 대의 생산차질을 입었다.
지난달 23일 노사가 기본급 10만1000원 인상, 일시금 1300만원(타결 일시금 350만원, 성과금 700만원, 격려금 250만원) 지급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으나, 같은 달 25~26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이후 여름휴가에 따른 일주일간의 가동 중단을 거쳐 5일 조업을 재개했으나 7일과 13, 14일 생산라인별로 번갈아 조업을 멈추는 게릴라식 파상파업을 단행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 미국향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 및 파생 차종 수출물량이 호조를 보이며 실적 개선 흐름을 타던 한국GM으로서는 노조 파업이 치명적이다. 지난달 수출은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로 전년 동월 대비 44.3% 감소한 2만365대에 그쳤다.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교섭 테이블에서 생산적인 논의가 오가기보다는 집행부가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강성 일변도의 태도를 보이면서 교섭이 장기화되고 파업이 일상화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일 년 내내 교섭으로 진을 빼는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벗어나야 기업도, 근로자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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