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김혜연의 AHA]한상호 "AI로 인한 생각의 확장, 패러다임 바꿀 것"
편집자주 - 아시아경제는 나날이 발전하는 생성형 AI가 예술창작 분야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사람'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공학자와 예술인의 관점에서 고찰해보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매월 한 차례씩 김대식 카이스트(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와 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가 예술창작인과 대담하거나 작품에 관해 토론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코너 제목에 들어가는 'AHA'는 'AI, Human & Art'를 뜻합니다. 생성형 AI의 미래를 누구보다 뜨겁게 탐구하는 김대식 교수, 생성형 AI와 무용을 과감하게 접목시키고 있는 김혜연 안무가를 통해 AI와 사람, 그리고 예술이라는 묵직한 화두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시기를 기대합니다.
한상호 한국교육방송공사(EBS) PD는 유명 다큐멘터리 PD이자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저술가이기 이전에 시대의 변화를 탐구하고 호흡하는 실험가로서의 정체성도 지니고 있다. 그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작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를 세상에 내놓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배경이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게 전부일 것만 같은 그에게 생성형 AI의 시대는 어떤 의미일까.
-애니메이션, 영화 등 다양한 작업을 해오셨지만 감독님의 고향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다큐멘터리를 떠나 방송 자체를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국문과를 졸업했는데 대학 시절 방송 관계된 일이나 영상을 만들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고, 국문과를 간 것도 시인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글을 써야 되는 사람인지 모르는 데다, 시대가 변하면서 글만으로는 전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도 조금 늦게 한 편인데 졸업하는 시점에서 어떤 길을 가야 될 건가 생각을 해보니 뭔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원래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했으니까 방송이 가장 쉬운 접근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방송국 시험을 봤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고, 마지막 기회가 EBS였습니다. 당시 EBS는 아주 초기의 방송사였고, EBS 다큐멘터리도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어요. 약소한 체급의 방송사였던 터라 작가들도 일을 잘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환경이 오히려 저에게 시간적 여유를 줬고, 그때 방송국에 있던 자료실에서 우연히 BBC 다큐멘터리를 많이 시청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감독의 길이 열린 것 같습니다.
AI가 바라보는 AI다큐, '참여적 저널리즘' 통한 새로운 정의
창작의 요소에 주관적 해석 더해지는 다큐픽션 장르의 등장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챗GPT에 질문)
▲과거의 다큐멘터리는 주로 사실의 객관적 기록과 이를 통한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영상 장르로 정의되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현실 세계의 사건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어 관객에게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정보를 전달하고 교육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다큐멘터리는 객관성과 진실성을 중시하며, 기록적이고 관찰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초첨을 맞췄습니다.
2024년 현재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나 전달을 넘어, 다양한 매체와 표현 방식을 통해 새롭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다큐멘터리는 전통적인 영상과 사진에 머무르지 않고 애니메이션, 가상현실(VR), 그리고 인터랙티브 미디어와 같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주제 면에서도 과거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릅니다. 특정 개인이나 소규모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섬세하게 전달하기도 하죠. 다큐멘터리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인간의 삶과 그 속에 담긴 복잡한 이야기를 조명하는 매체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관객이 직접 다큐멘터리의 진행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참여적 저널리즘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있어서 관객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더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을 반영할 수 있게 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창작적 요소와 주관적 해석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다큐픽션(Docufiction) 장르가 등장했습니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2024년의 다큐멘터리는 매체와 표현 방식, 주제의 다양성, 관객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사실과 창작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개념을 확장하며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다층적인 현실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를 연구하는 유명한 학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부분은 '참과 거짓이 없어지는 세상'입니다. 리얼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이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많은 분이 그 지점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예술이나 창작의 경우 소수의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나름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악기를 다루는 식으로 지속이 되었죠. 하지만 이제는 충격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하는데, 표현 능력 자체보다는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고가 더 중요해졌어요. 이런 측면에서 확장해 생각해보면 참이냐 거짓이냐의 유무보다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중심이 되는 쪽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은 콘텐츠가 진실보다는 거짓에 가깝더라도 재미가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같은 방향으로 소비가 일어나고 있어요. 이런 변화 속에서 과연 100년 후에도 다큐멘터리는 존재할까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시청자 수는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어요. 과거에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자료들을 지금은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손쉽게 구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콘텐츠 장르에서의 ‘귀함’, 즉 희소성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진실을 다양하게 많이 접할 수 있으면 더 현명해지고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모두가 모든 팩트를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이런 정보의 확장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희소성 사라지는 시대
생성형 AI 접목해 탄생시킨 '위대한 인도'
-이런 시기에 최근 생성형 AI를 활용한 신작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를 선보이셨어요. 어떻게 다큐멘터리에 생성형 AI를 접목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생성 AI는 어떤 역할로 활용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인도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이후 김대식 교수님과 강성용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님의 대화를 통해 진행되는 형식을 활용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중 가장 새롭게 다가온 부분이 바로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일 처음 접목해본 것은 인도의 역사적 인물부터 독립운동의 주역들, 황제들을 AI로 살려내 말 할 수 있게 하고, 대화도 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사이사이 '발리우드 영화'처럼 두 분이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안무가가 짠 춤을 무용수가 추면 그 움직임만 촬영한 후 생성형 AI 도구에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여러 장면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제작 방식이었다면 출연자들이 몇 달씩 안무 지도를 받아 가며 엄청난 연습과 노력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작업이기도 하고, 비용과 제작 기간이 충분하게 받쳐줘야 할 수 있었던 시도인데 조금의 시행착오만 거치면 편리하게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놀라울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 절감을 경험했습니다. 무엇보다 비용 측면에서 기존 CG 제작과 비교하면 100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었죠.
-불과 1년 전만 해도 영상 부문에서 생성형 AI의 효용성이 크지 않았는데 엄청난 발전 속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대체하며 시간적 효용성을 제공하고 비용을 줄여주는 생성형 AI를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요? 그리고 최근의 생성형 AI 다큐멘터리 작업 이후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떤 것일까요?
▲생성형 AI를 활용해 '위대한 인도'를 제작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있었어요. 작업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 더 많은 생각으로 확장된다는 점이에요. 이전에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은 너무 쉽게 가능해졌어요. '한반도 공룡'이라는 영화를 CG로 만드는 작업을 10년 동안 해온 사람이라서 영상에서의 기술 작업이라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이 과정에는 공룡 하나를 만들 때도 모델링하는 사람, 텍스트를 입히는 사람, 움직이게 뼈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리고 움직이게 하는 애니메이터 이외에도 수십명, 수백명이 공룡 하나를 구현하기 위해 작업을 하는데 지금의 생성형 AI는 프롬프트만으로 공룡을 만들어내고 움직이게까지 할 수 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죠.
이런 점에서 생성형 AI는 직업이나 업종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모든 부분에서 패러다임 자체가 변할 것으로 예상해요. 이전에는 안무는 안무가, CG는 CG 전문가, 영화는 영화감독의 전문성을 요구했고 작업이 맡겨졌다면 이제는 어떤 업무도 한 사람이 해낼 수 있죠. 그래서 요즘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새로운 접목과 시도를 또 고민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생각도 못 한 작업, 지금은 너무 쉽게 가능"
"생성형 AI로 인해 모든 부분의 패러다임 변할 것"
-생성형 AI의 시대에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변할까요? (챗GPT에 질문)
▲생성형 AI의 시대에 다큐멘터리는 기존의 형태와 기능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큽니다. 가장 먼저 생성형 AI는 다큐멘터리 제작의 많은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스토리를 구성하거나, 영상 편집을 자동으로 처리해 제작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주제를 다룬 콘텐츠가 더 빠르게 생산될 것입니다.
그리고 AI를 활용한 다큐멘터리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습니다. 관객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동안 AI를 통해 실시간으로 질문을 하거나,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이 결합된 다큐멘터리는 관객이 다큐멘터리 속 상황을 실제로 경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AI가 독자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습니다. 이는 다큐멘터리의 내용과 형식을 보다 창의적으로 재해석할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다큐멘터리를 더 혁신적이고 포괄적인 미디어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윤리적 문제와 사실성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 다큐멘터리가 AI 시대에 맞춰 변화하면서도, 그 본질적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한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한상호 PD는?
EBS 다큐멘터리 PD이자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로열홀러로웨이 칼리지에서 다큐멘터리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큐멘터리 〈문자〉(2002), 〈마이크로의 세계〉(2004), 〈한반도의 공룡〉(2008) 등을 연출하며 삼성 언론상, 한국피디대상, 실험 대상, 방송·통신 대상 등을 수상했다. 〈명의〉 〈극한직업〉 〈시대의 초상〉 등을 기획하고 〈싱어즈, 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를 기획 및 프로듀싱했다. 3D 애니메이션 영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두 편과 〈번개맨 더 비기닝〉(2023) 등을 감독했다. 다큐멘터리와 영화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며 저서로는 『공룡 전사 빈』,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위대한 인도』 등이 있다.
김대식 카이스트(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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