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공허하다면
[김은미 기자]
어느 날 한 외국 작가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한국'이라는 주제로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한국을 비하하는 건가?' 하고 분노했지만, 뼈아픈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꼬집어서 그 누구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우울과 공허와 외로움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무너진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진료실에서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을 만나왔던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지용이, 그 의문에 답한다.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다시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알려주고 있다.
▲ 책표지 빈틈의 위로 |
ⓒ 아몬드 |
그러다 툭~ 하고 뭔가 끊어져 버리면 그제야 단순한 슬럼프가 아닌 심각한 '우울증'이었음을 깨닫는다. 무기력과 무의욕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라 질병에 의해 생겨난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를 모르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거나, 알면서도 끝까지 외면하는, 무지하거나 비겁한 이들이 우리 사회엔 너무도 많다(23쪽)는 것이다.
우울증을 인정하게 되면 나약한 실패자라고 낙인찍힐 것 같은 두려움, 뒤처질 것 같은 압박감과 불안감이 페르소나를 더욱 비대하게 만들어 현대인들의 숨통을 조여오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부러워함직한 위치에 있는 강다솜 아나운서도 심한 무기력증으로 퇴근 후 '누워 있는 사람'으로 산 적이 있고, 책상 밑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 안정감을 얻었다는 고백은 매우 충격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빈틈이 없을 경우 우울증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I형 인간이지만 유연한 관계 형성을 위해 E형 인간인 척 살아낸다는 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지, 강다솜 아나운서의 사례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에 지친 마음이 회복되고 충전되면서 마음의 곳간이 채워지는 사람인데, 그런 '숨 쉴 틈'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삶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아주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들이 내 일상을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142쪽)이 된다는 걸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곤 한다. 여전히 삶이 힘들지라도 자신만의 꽃밭을 가꾸면서 숨구멍과 빈틈을 만드는 일이 우리를 구한다(145쪽)는 강다솜 아나운서의 조언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선천성 골형성부전증이라는 희귀난치병을 가지고 태어나 '아픈 아이 페르소나' 덕분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 살았던 서미란 피디의 단단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개인적으로는 전 프로농구 선수 김태술의 고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농구선수로 활약할 당시의 모습은 알지 못하지만 JTBC <뭉쳐야 찬다>에 등장해 조기축구 수비수로 열심히 뛰는 모습을 봐왔던 터라 그의 숨겨진 아픔을 목도한 순간 마음이 숙연해졌다.
비상과 추락을 모두 경험한 뒤 결국 참패를 인정한 순간 그가 느꼈을 자괴감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약하게 핑계 대지만, 더 열심히 살아!'라고 외치는 마음1과 '압박감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살 방법을 분명히 있어. 네 행복을 찾아'라고 말하는 마음2가 치열하게 싸우는 가운데 그가 깨달은 결론은 '천천히 자신을 보듬어주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머무르면 후회와 자책으로 우울해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집착하면 끝없는 걱정들로 불안해진다. 그 우울과 불안을 피해가는 방법은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것'뿐이다.(288쪽)
그저 이런 시간을 내게 선물해 주고 싶다. 긴 시간 동안 바쁜 삶의 궤적에 묵묵히 협조하며 열심히 달리고 희생해온 나에게, 이런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다.(중략) 더 길게, 더 건강한 마음으로 일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더 아껴보고 싶어서.(311쪽)
<빈틈의 위로>는 아무리 숨 막히고 앞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숨 쉴 틈'을 만들어내다 보면 조금 더 건강한 사회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책이다. 그저 일상 속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슬쩍 끼워 넣는 것만으로도 잃었던 삶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 준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균형을 적절히 맞추면서 스스로에게 빈틈을 선물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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