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토스트 집에서 발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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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기자]
문을 열자마자 열기를 밀어내는 시원한 냉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 멀지 않은 그곳에 가끔 세 아이의 점심이 기다리고 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엄마가 차려주는 밥 세 끼를 종종 지겨워한다. 밥때가 되면 메뉴가 무어냐고 물었다가 미간을 일그러뜨리곤 한다. 무더위 속에서 매 끼니를 준비해야 하는 나의 수고로움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의 지겨움을 달래주고 나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 나는 가끔 그곳을 찾는다. 토스트를 판매하는 매장.
최근 초중고 학교가 모여 있는 옆 동네에 토스트 매장이 새로 생겼다. 프랜차이즈 토스트 집니다. 전국에 900여 개의 매장이 운영 중이며, 해외 가맹점까지 생긴 명실상부 최고의 토스트 매장이다.
2003년 충청권에서 시작된 이래, 내가 이 토스트의 매력에 빠진 지도 어언 20여 년이 훌쩍 넘었다. 달콤 특제 소스와 두툼하리만치 가득 들어찬 양배추의 조합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물리지 않는다. 다양한 입맛을 고려한 메뉴의 다양성이 우리 다섯 가족의 선택을 받기에도 손색이 없다.
특히, 새로 생긴 이 매장은 자꾸만 발길을 끄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빵빵하게 튼 에어컨 덕분에 일종의 피서지라는 느낌이 든다. 문을 여는 그 순간부터 문밖에서의 불쾌지수가 뚝 떨어진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는 손님으로서 존중받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키오스크가 입구에 있어서 원하는 토핑이나 빵 종류를 선택할 수 있어 편리하다. 대기 번호가 있어 공평하게 주문 순서에 맞게 음식을 받을 수 있으니, 불만이 생길 이유가 없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젊은 여성 직원의 경쾌한 인사 멘트도 생기발랄하다. 게다가 주변에 빵집, 김밥집, 국숫집, 아이스크림 전문점, 편의점까지 인프라가 잘 형성되어 있어 더욱 이용할 가치가 높다. 한 마디로 참 마음에 드는 곳이다.
▲ 출입문이 활짝 열려있는 오래된 가게 에어컨이 없는 토스트 매장. 그러나 그곳에는 브랜드의 본질인 친절이 존재하고 있었다. |
ⓒ 본인 |
새로 생긴 매장을 애용하다가 오랜만에 오래된 그 가게를 방문했다. 토스트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청이 있었고, 차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생긴 매장으로 가려면 도보로 20분, 왕복 40분이 걸리는데, 폭염경보가 내려진 마당에 차마 걸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찾게 된 오래된 가게는 어쩌면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추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보란 듯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 더위 속에서 가게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에어컨은커녕 두 대의 선풍기가 온 힘을 다해 돌아가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곳에서 어떻게 신선한 음식이 만들어질 수 있겠냐는 불신이 앞섰다. 선뜻 들어서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지만, 어쨌든 같은 프랜차이즈니 우리의 점심 한 끼를 위해 불편한 마음을 애써 치웠다. 내가 들어서자 선풍기를 독점하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벽에 붙은 때 묻은 메뉴판을 보며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늘 즐겨 먹던 메뉴, '베이컨 베스트 기본' 한 가지로 통일하고 주문했다.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벽 테이블로 갔고, 체중이 좀 나가는 사람이 앉으면 부러질지도 모를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았다.
토스트가 완성될 시간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주인 아주머니가 자신이 쐬던 선풍기를 내 쪽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아, 괜찮아요. 앞뒤로 바람이 통해서 그렇게 덥지 않네요."
뜨거운 철판 앞에서 빵을 구워야 할 아주머니에게 바람이 닿는 게 더 합당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고, 아주머니는 두 번 권하지 않고 선풍기를 다시 제 쪽으로 돌렸다. '어서 오세요'라든지, '선풍기 틀어드릴까요?'라든지 손님을 맞는 주인장으로서의 어떤 멘트도 없던 그녀가 말없이 선풍기를 틀어줬다가 다시 돌리는 모습을 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말수가 적고 사교성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성격인 듯한데, 그래도 손님이라고 대우를 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싹싹하지도 않고, 적극적이지도 않은 모습으로 어떻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한자리에서 장사해 온 걸까? 보통 자영업을 하는 상인의 이미지와 다르게 수더분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모습은 네이버 매장 리뷰에서도 놀라운 결과를 빚어내고 있었다.
두 매장의 리뷰에 참여한 사람 수는 116명, 108명으로 거의 비슷했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항목은 두 가지로 두 매장이 같았다. 음식이 맛있다는 평과 가성비가 좋다는 평. 그것은 프랜차이즈 자체의 점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매장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아니나 다를까 '매장의 청결도'와 '인테리어'에 대한 평이었다. 새로 생긴 매장의 청결 상태에 좋은 평을 해 준 이는 45명인데 비해 오래된 가게는 단 10명의 선택을 받았을 뿐이었다. 또한 새 매장의 인테리어가 멋지다는 평이 8명인데 비해 오래된 가게는 단 1명의 선택을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된 수치였다. 나만의 평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맛살을 들어 올릴 만큼 놀라운 항목은 '친절해요'라는 항목이었다. 새 매장의 리뷰에 참여한 인원이 조금 더 많은 와중에 '친절해요' 수치는 새 매장 36명, 오래된 가게 31명으로 거의 비슷했다.
나는 리뷰 결과를 보고서 토스트를 만드는 주인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 모습 어디가 그렇게 친절하다고 느껴졌던 걸까? 모자와 유니폼을 깔끔하게 갖춰 입고 낭랑한 목소리로 응대하던 젊은 여성 직원에 비해 표정 없는 그녀가 친절하다고 느낄 만한 요소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31명의 의견이 의아했던 찰나, 누군가 힘찬 걸음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가게 앞에 주차된 택배 트럭이 보였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택배 기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딱 봐도 용량이 상당해 보이는 텀블러 하나를 들고 와서 가게 안에 설치된 정수기에서 냉수를 한가득 담아 갔다.
토스트를 구매하기 위함도 아닌데, 그저 지나다가 들러서 냉수를 담아 가다니! 비록 개미만 한 목소리였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택배 기사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을 보며,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하다는 평을 받은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엄마, 그 가게가 그래 보여도 우리 중학교 때 애들한테 엄청 인기 있었어. 마구잡이로 주문해도 아줌마는 한 번도 순서를 틀리게 준 적이 없었어. 주문한 애들이 줄 서 있었던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먼저 온 사람을 기억하고 실수 없이 줬다니까? 그 바쁜 와중에도 아줌마가 한 번도 인상 쓴 걸 본 적이 없어. 착한 분인 것 같아."
토스트를 먹으면서, 중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지난 아들이 추억을 나눠주었다. 그러고 보니 학기 중에 교복 입은 중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가게 모습을 본 기억이 났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 토스트를 만드는 모습이 상상이 됐다.
별다른 놀거리, 먹거리가 없던 곳에서 주인아주머니가 건넨 토스트와 음료는 한창 먹을 때인 아이들의 식욕을 채우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의 장소가 돼 주었을 것이다.
비록 세월의 흔적을 많이 담고 있어 모양은 허름해 보여도, 이 프랜차이즈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브랜드 키워드가 그곳에도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Friendly(#친절한 #우호적인 #다정한 #친숙한 #상냥한), Casual(#무게감이 적은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With(#함께하는 #소통 #나누는 #선한 #인연이 있는).
최신화 되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고, 급격히 변화하는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나의 생각은 진실한 친절을 알아볼 줄 아는 중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운 편견일 뿐이었다.
어쩌면 정형화 된 친절의 모양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진심을 담은 작은 행동 하나에 감동하게 되니 말이다. 결국 브랜드의 본질을 잘 지키는 곳이 위력이 있는 게 아닐까. 세련되지 못한 오래된 가게가 10년이 넘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이제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주 뒤면 중학교가 개학을 하고 오래된 가게는 더욱 바빠질 것이다. 토스트를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행복하게 웃을 아이들의 모습이 벌써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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