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부터 안경곰까지… 지구상에 여덟종만 남은 곰 [북리뷰]
글로리아 디키 지음│방수연 옮김│알레
단군신화·곰돌이 푸·패딩턴…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동물
기후변화·서식지 소멸로 위기
웅담채취 고통 반달가슴곰부터
헤엄치다 익사하는 북극곰까지
곰들의 ‘참혹한 생존현실’ 기록
한민족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단군신화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곰 부족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 건국신화는 참을성 있게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며 동굴에서 견딘 곰이 호랑이를 제치고 결국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다.
처음 듣는 아이라면 누구나 신비롭게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전 세계를 둘러보자면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로이터통신의 세계 기후 및 환경 분야 특파원으로 지구 곳곳을 누비는 저자에 따르면 사람과 곰을 동일시하거나 곰을 숭배하는 토착 설화는 지구 곳곳에서 나타난다. 곰은 강인한 동물 중 거의 유일하게 사람처럼 두 발로 설 수 있었고 더욱이 넓은 서식 범위 덕에 인간에게 친숙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인적이 드문 로키산맥의 접경지대로 이사 온 뒤부터다. 그곳의 곰들은 그의 생각보다 빈번히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내려왔다. 심지어 한번은 세 시간 동안 마을을 떠나지 않은 곰을 결국 야생동물관리국 직원들이 사살했다. 그리고 곰의 죽음에 분노하는 사람들을 보며 궁금해졌다. 도대체 곰이 뭐길래 위협을 받으면서도 살리고 싶어 하는지 말이다.
저자는 곰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며 두 번 놀라게 된다. 테디베어 곰 인형과 유명 캐릭터 ‘곰돌이 푸’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곰을 향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것에 놀랐고 그러한 곰이 지구상에 단 8종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는 직접 발품을 팔아 대륙을 건너다니며 곰의 현실을 마주한다. 그의 여정은 남아메리카에서 시작한다. 빨간 모자를 챙겨 쓰는 캐릭터 ‘패딩턴’의 모티브가 된 안경곰이 그 주인공이다. 아시아의 느림보곰(인도), 반달가슴곰과 태양곰(이상 베트남), 대왕판다(중국)의 특성과 모습을 자세히 그린다. 전 세계에 가장 많은 개체 수가 남아 있는 미국흑곰과 불곰(미국)까지 관찰한 후에는 북극으로 건너가 북극곰을 마지막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크기와 생김새, 좋아하는 먹이와 성격까지 제각각인 곰들이지만 저자는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해 낸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베트남의 반달가슴곰이 마치 한국의 과거처럼 여전히 인간에 의한 웅담 채취로 고통받고 있음을 폭로한다. 또한 그는 애완 목적의 남획과 사냥으로 인도 느림보곰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와 적극적인 자연 개발 활동은 인간과 곰 사이의 완충지대를 없애고 결국 두 종이 보다 자주 서로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총에 맞아 죽어가는 미국흑곰과 불곰이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인간의 직접적 물리 행동에 의한 피해보다 심각한 것이 기후 위기라는 사실도 강조한다. 고산지대의 운무가 뒤덮는 숲에서 살아가는 남미 지역의 안경곰과 얼음 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북극곰은 기후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안경곰의 터전인 운무림은 25년 뒤 최대 80%가 사라질 예정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북극곰은 생활할 수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찾아 헤엄치다 익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의 과학기술이 곰의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대왕판다의 개체 보호를 위해 연구를 계속했던 중국 과학자들의 노력을 대표적인 예시로 든다. 그러기에 다른 곰들도 완전히 멸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곰들은 지금과 달리 동물원과 연구실의 유리창 안에서만 인간을 마주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저자는 곰의 멸종이 가시화되더라도 인간이 기후 위기를 늦출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놓는다. 100년 후 8종 중 단 3종의 곰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 곰을 잃는 기후 위기란 더 많은 인간이 고통받는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436쪽, 2만2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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