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화합과 대비로 완성한 '환상의 파편'

김희윤 2024. 8. 1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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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랑, 강유진 개인전 '환상의 파편: 풍경의 새로운 시각'

"정원과 그림은 많이 닮았다. 작가와 정원사는 주어진 공간에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디자인하고 계획을 세워 일을 시작한다. 작업이 진행된 후에도 여러 가지 우연과 필연이 맞물려 작용하여 그 공간이, 화면이 완성되어간다. 오랜 시간 그들의 관심과 정성은 필수조건이다."

-작가 노트 中

pool with fire,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91.4x121.9 cm, 2024.[사진제공 = 선화랑]

선화랑은 9월 14일까지 강유진 작가의 개인전 '환상의 파편: 풍경의 새로운 시각'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해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한 Oak Spring Garde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얻은 시각적 체험과 영감을 바탕으로 한 신작을 주축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인상 깊게 본 주변 풍경과 공간, 그 공간의 구조 그리고 연상이 되었던 일상 속 소재를 한 화면에 병치시키고 융합해내며 자신의 방식대로 화면 안에 기억과 경험을 소유하고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영감을 독특한 풍경으로 표현해낸다. 이러한 새로운 풍경의 탄생은 작가의 라이프 스타일과도 연관 지을 수 있다.

과거 영국 유학과 결혼 후 여러 지역을 정기적으로 이주하며 생활해야 했던 가족의 삶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 때마다 낯섦과 수용이라는 반복되는 과정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자신이 던져진 상황에 긴밀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쏟아부었고 이것은 오히려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을 도울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업에 새로운 원동력이 됐다.

공항, 수영장 등 도심의 인공적 공간을 주로 그렸던 작가는 최근 거주지의 변화를 겪으며 자연물을 소재로 한 작업을 주 화면으로 삼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D.C와 가까운 지역에 정착했지만, 그전 거주했던 유타주는 바람, 물,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협곡과 지각 변동으로 형성된 단층 지대, 솔트레이크시티의 설경처럼 뚜렷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어 그 자체가 캔버스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Maelstrom in nature,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97 x 145.5cm, 2024.[사진제공 = 선화랑]

당시 영감은 작품 Crepe cake canyon, Mountain with Crepe cake, Mountain with Meat 시리즈에서도 엿볼 수 있듯 길을 따라 마주한 대자연이다. 독특한 지형과 유사성을 가진 일상 속 대상을 화면에 끌어들여 융합한 화면은 소재의 평범성을 뒤흔들며 또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이것은 ‘풍경과 정물’,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시각적인 몰입과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지난해 참여했던 Oak Spring Garden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자연과 정원, 자연 속 조각 작품들은 작가에게 새로운 작업의 영감과 소재가 됐다. Oak Spring Garden은 원예가, 정원 디자이너, 자선가이자 컬렉터였던 레이첼 램버트 멜론이 설립한 공간으로, 예술가, 인류학자, 식물학자, 생태학자, 환경학자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작가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탐구하며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다. 정원은 자연으로 이루어진 곳이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이 가꾸어 낸 인공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 레지던시 기간 방문했던 글렌스톤 박물관과 세인트 브라이드 농장 필드 투어에서 마주한 리처드 세라, 제프 쿤스 등의 조각작품에서도 큰 영감을 받았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이러한 상반된 성질, 상황, 대비되는 두 요소를 결합해 하나의 풍경처럼 재구성한다.

작가의 작품을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요소는 주재료인 에나멜페인트다. 에나멜은 안료의 물성을 강조하기에 매우 효과적이고, 또 뿌리고 흘리는 드리핑 기법(붓을 사용하지 않고 안료를 캔버스 위에 떨어뜨리거나 붓는 회화기법)을 통해 에나멜페인트가 저절로 섞이며 우연적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효과는 구체적 형상의 묘사를 제한하며 추상적 요소를 적극 드러낸다.

sunrise, enamel and acrylic on canvas, 40.6x50.8cm, 2024.[사진제공 = 선화랑]

화면에 매끄럽게 발린 에나멜 표면의 광택 효과는 관객이 그려진 이미지의 형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시선을 화면 밖으로 반사하기도 한다. 관객의 시선이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가 화면 밖으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며 그 시선의 흐름이 유동적이기를 작가는 유도한다. 에나멜의 유동적 특성과 우연적 효과를 활용해 추상과 구상의 조화를 이루며, 관객에게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질적이고 상반된 소재를 조합하고 재구성해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화면은 추상적 요소와 구상적 요소, 2차원과 3차원적인 공간, 곡선과 직선, 디테일과 전체, 뜨거움과 차가움, 불편함과 안락함, 우연과 의도, 현실과 비현실 등의 대립 항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교차하거나 중첩되고 병치되면서 마치 하나의 풍경처럼 조화롭게 섞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타이틀 '환상의 파편' 처럼 이러한 여러 요소가 화면에 공존하고 있는 제3의 풍경 속에서 관객에게 여러 층위를 선보인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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