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8·15 독트린 "한반도 전체에 자유민주 통일국가 만들 것"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며 “분단 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성일 수 밖에 없다”며 이처럼 밝혔다.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30년 만에 나온 통일 독트린은 ▶3대 통일 비전 ▶3개 통일 추진 전략 ▶7대 통일 추진 방안을 담은 ‘3-3-7’ 구조로 구성됐다. 핵심은 ‘자유의 확장’으로, 통일의 주체를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으로 규정하며 인권 증진을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이 아닌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한 가운데 정부는 우리 헌법이 규정한 ‘자유 민주 국가’를 통일 한반도의 미래상으로 제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 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며 “자유의 가치를 북녘으로 확장하고,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데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3·1절 기념사에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말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이날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 통일’이라는 표현만 9번 썼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통일 독트린의 핵심은 자유와 인권을 북한으로 확장하는 것이 결국 통일이라고 규정한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기초한 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에 발표한 통일 독트린은 민족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김정은의 행보에 대응하는 측면이 강하다. 김정은은 올 초 헌법을 개정해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라고 지시했다. 선대의 유훈인 통일 개념도 폐기하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이날 경축사에서 3대 통일 비전(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행복한 나라, 창의와 혁신으로 도약하는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나라)을 통해 미래 통일 대한민국의 모습을 제시한 건 이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김정은의 ‘두 국가 체제’ 선언에 맞서 정부는 여전히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지향하는 ‘1민족 1국가 1체제’ 통일국가 실현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독트린의 제목을 ‘자유 통일을 위한 도전과 응전’으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헌법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응전’인 셈인데, 헌법 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북한은 우리의 국력 격차가 커지자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면서 체제 단속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는 북한 정권의 선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제적으로 실천하고 이끌어나갈 행동 계획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통일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우리 국민이 자유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가치관과 역량을 더욱 확고히 갖고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간절히 원하도록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며 ▶국제사회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북한 주민 변화를 위한 방안과 관련, 윤 대통령은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다차원적인 노력을 펼치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북한 인권 국제회의 추진, 북한 자유 인권 펀드 조성, 인도적 지원 계속 추진,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확대 등 구체적 실천 방안도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동시에 “남북대화는 보여주기식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의 평화 보장과 생활 개선 등을 논의하는 실질적 자리가 돼야 한다”며 남북 당국 간 실무 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했다.
이어 “여기에서 긴장 완화를 포함해 경제 협력, 인적 왕래, 문화 교류, 재난과 기후변화 대응에 이르기까지 어떤 문제라도 다룰 것”이라며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억류자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현안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또 “북한이 비핵화의 첫 걸음만 내딛더라도 정치적·경제적 협력을 즉각 시작할 것”이라며 지난 2022년 제시한 ‘담대한 구상’ 기조를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협의체 구성은 물론, 정부의 새로운 통일 독트린에 호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북한과의 사전 교감 작업 등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통일 독트린이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정치한 준비 작업에 기반했다기보다는 이념적 당위성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독트린 내용 중 핵심인 북한 인권 문제만 하더라도 북한은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언급만 해도 극렬히 반발한다. 지향점으로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를 세운다는 것도 북한으로서는 체제 위협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다분하다. 이번 독트린 발표를 불과 사흘 앞두고 정부 내 대북 강경파로 대표되는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임명,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내정 등 혼선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인사 조치를 한 것도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정부는 이번 독트린이 9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보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핵심인 3단계 통일 과정(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을 어떤 식으로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3원칙인 자주·평화·민주 중 “민족자결의 정신에 따라 남북 당사자 간의 해결”을 통해 통일을 추구하는 자주, “무력에 의거하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방법으로 하는 평화 등은 상대적으로 경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유를 내세우면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다차원적 노력을 전개하겠다는 의지 표명은 북한으로 하여금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더욱 키우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정영교 기자 wisepe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신들은 무조건 헤어진다” 이혼할 부부 96% 맞힌 교수 | 중앙일보
- 병원서 성폭행 후 살해된 인도 수련의…동료 의사들 무기한 파업 | 중앙일보
- 30분 달리기와 맞먹는다…뇌박사도 놀란 '1분 운동법' | 중앙일보
- '베드신 몸매 보정' 거부한 여배우, 이번엔 뱃살 당당히 드러냈다 | 중앙일보
- 신유빈이 안아준 일본 선수 '가미카제 발언' 발칵…중국 "선 넘었다" | 중앙일보
- 뜬구름 잡아 덕업일치 이뤘다…협회까지 만든 '구름 연구가' | 중앙일보
- "인간은 몇 번의 극적 변화 겪는다"…노화 시점 44세와 60세 | 중앙일보
- [단독] '체조 전설'도 겪은 마음의 병…韓선수단 14% "불안 느꼈다" | 중앙일보
- "욜로족? 대세는 요노족"…1000원짜리 맥주·과자 쏟아진다 | 중앙일보
- ‘영향 아래 있는 여자’ 美 할리우드 배우 제나 로우랜즈 별세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