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8·15 독트린 "한반도 전체에 자유민주 통일국가 만들 것"

유지혜, 정영교 2024. 8. 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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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며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며 “분단 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성일 수 밖에 없다”며 이처럼 밝혔다.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30년 만에 나온 통일 독트린은 ▶3대 통일 비전 ▶3개 통일 추진 전략 ▶7대 통일 추진 방안을 담은 ‘3-3-7’ 구조로 구성됐다. 핵심은 ‘자유의 확장’으로, 통일의 주체를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으로 규정하며 인권 증진을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이 아닌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한 가운데 정부는 우리 헌법이 규정한 ‘자유 민주 국가’를 통일 한반도의 미래상으로 제시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뉴스1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 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며 “자유의 가치를 북녘으로 확장하고,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데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3·1절 기념사에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말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이날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 통일’이라는 표현만 9번 썼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통일 독트린의 핵심은 자유와 인권을 북한으로 확장하는 것이 결국 통일이라고 규정한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기초한 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1월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가 1월15일 수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되었다"라고 보도했다. 회의에선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기구를 폐지하는 결정이 나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화국의 부흥발전과 인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한 당면과업에 대하여'라는 시정연설을 통해 헌법 개정과 전통적 남북관계의 단절을 선언했다. 뉴스1

특히 이번에 발표한 통일 독트린은 민족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김정은의 행보에 대응하는 측면이 강하다. 김정은은 올 초 헌법을 개정해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라고 지시했다. 선대의 유훈인 통일 개념도 폐기하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이날 경축사에서 3대 통일 비전(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행복한 나라, 창의와 혁신으로 도약하는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나라)을 통해 미래 통일 대한민국의 모습을 제시한 건 이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김정은의 ‘두 국가 체제’ 선언에 맞서 정부는 여전히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지향하는 ‘1민족 1국가 1체제’ 통일국가 실현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독트린의 제목을 ‘자유 통일을 위한 도전과 응전’으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헌법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응전’인 셈인데, 헌법 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북한은 우리의 국력 격차가 커지자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면서 체제 단속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는 북한 정권의 선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제적으로 실천하고 이끌어나갈 행동 계획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통일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우리 국민이 자유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가치관과 역량을 더욱 확고히 갖고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간절히 원하도록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며 ▶국제사회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북한 주민 변화를 위한 방안과 관련, 윤 대통령은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다차원적인 노력을 펼치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북한 인권 국제회의 추진, 북한 자유 인권 펀드 조성, 인도적 지원 계속 추진,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확대 등 구체적 실천 방안도 소개했다.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동시에 “남북대화는 보여주기식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의 평화 보장과 생활 개선 등을 논의하는 실질적 자리가 돼야 한다”며 남북 당국 간 실무 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했다.

이어 “여기에서 긴장 완화를 포함해 경제 협력, 인적 왕래, 문화 교류, 재난과 기후변화 대응에 이르기까지 어떤 문제라도 다룰 것”이라며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억류자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현안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또 “북한이 비핵화의 첫 걸음만 내딛더라도 정치적·경제적 협력을 즉각 시작할 것”이라며 지난 2022년 제시한 ‘담대한 구상’ 기조를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협의체 구성은 물론, 정부의 새로운 통일 독트린에 호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북한과의 사전 교감 작업 등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통일 독트린이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정치한 준비 작업에 기반했다기보다는 이념적 당위성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신문은 지난 7일 "평안북도 피해복구 전구에 파견되는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진출식이 지난 6일 수도 평양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피해 복구 현장에 나갈 것을 결의한 청년들의 수가 약 30만명에 이른다면서 "이런 폭발적인 탄원(자원)열풍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뉴스1

실제 독트린 내용 중 핵심인 북한 인권 문제만 하더라도 북한은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언급만 해도 극렬히 반발한다. 지향점으로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를 세운다는 것도 북한으로서는 체제 위협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다분하다. 이번 독트린 발표를 불과 사흘 앞두고 정부 내 대북 강경파로 대표되는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임명,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내정 등 혼선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인사 조치를 한 것도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정부는 이번 독트린이 9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보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핵심인 3단계 통일 과정(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을 어떤 식으로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3원칙인 자주·평화·민주 중 “민족자결의 정신에 따라 남북 당사자 간의 해결”을 통해 통일을 추구하는 자주, “무력에 의거하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방법으로 하는 평화 등은 상대적으로 경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유를 내세우면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다차원적 노력을 전개하겠다는 의지 표명은 북한으로 하여금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더욱 키우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정영교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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