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곰들을 괴롭히고 희생시켰나
글로리아 디키 지음, 방수연 옮김
알레, 436쪽, 2만2000원
곰 만큼 인간과 친숙한 동물도 드물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한민족은 100일 동안 마늘과 쑥으로 버텨 인간이 된 ‘웅녀’의 자손이다. 세계 곳곳의 토착 설화나 고대 신화에서도 어김없이 곰이 자주 등장한다. 현대의 어린이들은 ‘곰돌이 푸’를 보고 자라고 ‘테디 베어’를 안고 자고 일어난다. 책은 “가족 같은 곰의 이야기는 곰과 땅을 공유하는 거의 모든 인간 문화권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유도 추측해 본다. 인간과의 유사성 때문이다. 곰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보기 드문 포유류이고, 가죽을 벗겨 창백하게 드러난 곰의 사체는 충격적일 정도로 인간의 몸과 비슷하다고 한다.
인간과 공존했던 곰은 멸종의 길을 걸어왔다. 갯과 동물은 늑대부터 여우까지 35종, 고양잇과 동물은 41종에 이르지만 곰은 8종밖에 남아 있지 않다. 우리에게 친숙한 대왕판다와 반달가슴곰을 비롯해 미국흑곰, 북극곰, 회색곰(불곰), 느린보곰, 안경곰, 태양곰 등이 주인공이다. 모두 인간의 탐욕과 개발로 인해 서식지에서 밀려나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곰 8종의 아픈 상처와 인간과의 공존 가능성을 탐색한다.
생존한 곰 가운데 가장 극과 극의 처지에서 대비를 보이는 곰은 대왕판다와 반달가슴곰·태양곰일 것이다. 둘 다 갇혀 지내고 있지만 환경은 천양지차다. 알려진 대로 대왕판다는 중국 정부와 국민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애지중지 보존되고 있다. ‘판다 외교’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로 보내져 세계인의 사랑도 받고 있다. 한 조사에서 대왕판다는 공자와 쿵후, 녹차를 제치고 ‘넘버 원’의 중국 문화의 상징으로 통한다. 저자는 “대왕판다는 인간의 가장 악한 본성을 경험하지 않아도 됐던 동물계의 유일한 생명체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만난 반달가슴곰과 태양곰은 ‘담즙곰’으로도 불린다. 오로지 인간에게 담즙(웅담)만을 제공하기 위해 좁디좁은 우리에 갇혀 사는 곰이 한때 4300마리까지 있었다. 동물복지단체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2005년부터 베트남에서는 불법이 됐지만 여전히 곰 사육은 암암리에 계속되고 있다. 곰 사육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저자는 “담즙곰보다 비참한 삶을 사는 동물을 떠올릴 수 없었다”면서 “담즙곰은 고통 말고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웅담 채취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곰은 대략 2만 마리로 추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부분은 수요가 가장 많고 사육이 합법인 ‘대왕판다의 나라’ 중국에 갇혀 있다.
미국흑곰은 다른 곰들과는 다른 곤경에 처해 있다. 북아메리카 대륙을 호령하던 미국흑곰은 한때 멸종위기에 내몰렸지만 환경보존 정책의 성공 사례로 언급될 만큼 개체 수가 크게 늘었다. 현재 미국흑곰의 개체 수가 90만 마리에 달해 다른 일곱 종의 곰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다. 하지만 야생에 있어야 할 흑곰들은 주택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가 됐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사살된 268㎏의 흑곰을 부검하자 위에는 포장도 벗기지 않은 상태의 스테이크 두 덩이와 파스타, 감자, 달걀, 아보카도, 키친타월, 슬라이스 햄 등이 가득 차 있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도시곰’은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됐다. 처음 흑곰들 몇몇이 야영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일이 벌어지자 요세미티국립공원에서는 쓰레기장을 만들었고 더 많은 곰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흑곰들은 관광상품이 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곰들은 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 야영장에 침입하고 차량을 부수기 시작했다. 한 보고서는 “쓰레기 구덩이에서 경쟁을 견디기 힘들었던 곰들은 길가에서 구걸하는 처량한 노상강도 신세가 됐다”고 표현했다. 뒤늦게 인간들은 쓰레기장을 폐쇄하고 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에게 과태료를 물리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곰들은 조금 더 조금 더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공격성마저 띠기 시작하면서 인간과의 충돌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가 1년 내내 넘쳐나는 지금 곰들은 한밤중이면 냉장고를 뒤지는 불면증 환자가 되어버렸다”면서 “미국흑곰은 더 이상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곰은 북극곰이다. 삶의 터전인 해빙(海氷)이 줄면서 북극곰의 개체 수는 1987년 이후 50%가량 감소했다. 국제북극곰협회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인위적인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북극곰은 이번 세기말이 지나면 캐나다 북극 제도 최북단 퀸엘리자베스제도에만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지만 북극에서 곰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것 같다. 북미 회색곰의 서식지가 따뜻해진 기온의 영향을 받아 북쪽으로 확대되면서 북극과 가까운 곳에 회색곰이 발견되고 있고, 흥미롭게도 북극곰과의 교배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회색곰과 북극곰의 이종교배가 곧 광범위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결국 북극곰이 사라진 자리를 회색곰이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저자는 곰을 찾아 나섰던 대장정을 마무리하며 이번 세기말을 넘겨서도 살아남는 곰은 대왕판다와 미국흑곰, 그리고 회색곰 세 종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곰을 잃는다는 것은 인간이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여정을 곁에서 지켜봐 준 아름답고도 깊은 관계를 잃는다는 뜻과도 같다”고 말했다.
·인간의 친구이길 원했던 곰은 이제 살기 위해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
·곰이 살기 힘든 지구는 인간에게도 미래가 되지 못한다
·저널리스트답게 곰이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다각도로 그리고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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