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내가 아는 김형석은
광주 진실 밝힌 경상도 학자
그런 그가 국민 분열 중심에
독립운동사가 전공 아닌데
경솔하고 안이한 인사 무리수
그의 소중한 유산 묻힐 우려
몸에 안 맞는 옷은 버려야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아는 그 사람 맞나”, 또 하나는 “맞다면 왜 하필 독립기념관장이지”였다. 내 머릿 속에 김형석은 올곧게 대북 지원에 매진해온 합리적 보수의 전형으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김 관장을 취재원으로 처음 만난 것은 24년 전인 2000년이었다. 그는 교계 대북지원 단체인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총장이었다. 재단의 북한 어린이 지원 사업 취재차 2001년 6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의 진가(?)를 확인했다. 공항 통과부터 평양의 병원, 교회 등을 방문할 때마다 그는 환대를 받았다. 북한 세관원은 그가 선물로 준 테니스 라켓을 받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외국 방문단이 평양에 도착하면 으레 거치는 만수대 김일성 동상 참배도 우리 일행은 피할 수 있었다. 김 사무총장이 북 인사들에게 “기독인은 동상 참배를 할 수 없다”고 계속 주입시킨 결과다.
이쯤되면 진보 성향 인사로 여길 법 하지만 그는 보수 교단을 섬긴 보수 성도다. 평양 취재 때 기자에게 “1990년대 대기근, 잇단 자연재해는 하나님의 심판에 다름 아니다”라며 북한 정권을 비판했다. 대북 지원은 정치 목적이 아닌 어린이 등 약자, 취약층을 도와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일의 역량을 키우기 위함이라는 신념이 뚜렷했다. 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대북지원에서 이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출입처를 옮기며 그와의 2년여 교류는 끝났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활약상을 접했다. 2004년 4월 민주화 인사들이 독식하던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민주통일 부문)’을 수상했다. 2010년대 후반 재단에서 은퇴한 뒤엔 역사학자로서의 소명의식에 부응했다. 대표적인 게 광주민주화운동 관련해서다. 경상도 학자가 광범위한 자료 분석과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군 개입’, ‘시민군의 교도소 습격’과 같은 5·18을 둘러싼 오해와 루머의 허구를 파헤쳤다. 광주의 대동세상과 평화사상도 조명했다. 이를 ‘광주, 그날의 진실’(2018년)에 담았다. 진보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 책을 “광주의 진실에 한발 다가선 노작(勞作)”이라 극찬했다.
5~6년 전만 해도 진보에게 칭송 받고 보수에게 ‘빨갱이’ 소리를 듣던 그다. 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김 관장을 ‘뉴라이트 인사’ ‘밀정’이라 비판한다. 발언, 행보의 일부만 떼내 공격한다. 그의 걸어온 길을 놓고 볼 때 외부의 비난은 지나치다.
하지만 이를 자초한 게 그의 선택이란 점에서 안타깝다. 독립기념관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기 위해 국민 성금을 통해 87년 세워졌다. 취지와 상징성에 따라 37년간 보수·진보 정권 할 것 없이 독립운동가 후손 혹은 독립운동사 전문 학자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선택했다. ‘듣보잡’이라는 세간의 평가엔 수긍 못하지만 독립운동사가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닌 건 사실이다. 통일운동 관련 단체장이면 몰라도 독립기념관장은 어울리지 않는 자리다.
차관급 인사를 기업 공채 뽑듯 하지 않기에 독립기념관장 인선에 정권의 의중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재단법인 ‘대한민국 역사와미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했던 일부 우파 성향 발언(‘진짜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이 아니라 1948년 8월 15일이다’) 등이 정권의 구미에 맞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해 홍범도 흉상 논란 등 일제 역사 논쟁으로 사회가 홍역을 치렀기에 좀 더 인사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정부도, 지원한 그도 경솔하고 안이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운동가로서 쌓아올린 그의 지향과 가치가 이번 인사로 빛이 바랬다는 점이다. 업적들이 ‘뉴라이트’ 프레임에 묻혀 버렸다. 그의 달란트가 유용하게 쓰일 여지는 많았다. 20여년간 100여차례 방북한 보수 성향 대북지원 전문가의 조언은 남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요즘 소중할 수 있다. 사회에 만연된 진영 갈등을 해소하는데 ‘광주의 진실을 밝힌 경남 진주 학자’의 지혜는 긴요했을 것이다.
김 관장은 대북사업, 5·18 연구, 심지어 관장 역할에 이르기까지 그 목적에 ‘국민 통합’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두 동강 난 국민 분열 광복절의 주역이 돼버렸다. 내가 아는 김형석은 자리에 연연하는 게 아닌, 신앙·평화·사랑의 정신으로 약자를 생각해온 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은 벗어버리는 게 상책 아닐까. 그가 뿌린 의미있는 유산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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