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처칠의 백서

고승욱 2024. 8. 1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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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은 식민지장관이던 1922년 6월 '팔레스타인 아랍 대표단과 시오니스트 조직과의 서신'이라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처칠은 3중 계약을 맺은 영국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고서에 담았다.

그 기원이 1922년 보고서를 일컫는 '처칠의 백서'다.

그때 중동의 지정학에 정통한 팔레스타인 고등판무관 허버트 새뮤얼이 초안을 잡고, 전쟁 전 해군장관으로 오스만제국을 직접 상대한 처칠이 완성한 보고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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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욱 수석논설위원


윈스턴 처칠은 식민지장관이던 1922년 6월 ‘팔레스타인 아랍 대표단과 시오니스트 조직과의 서신’이라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당시 중동은 격변기였다. 이곳을 지배하던 오스만제국은 1차대전 동맹국의 패배에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영국은 1915년 아랍 부족들에게 국가 건설을 약속하고 오스만제국에 맞서 싸우게 했다(맥마흔·후세인 각서). 그러면서 이듬해 프랑스와 중동을 나눠갖는 비밀협정을 체결했고(사이크스·피코 협정), 1917년 막바지에 이른 전쟁의 군비 확보를 위해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지방에 국가 수립을 약속했다(밸푸어 선언).

처칠은 3중 계약을 맺은 영국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고서에 담았다. 골자는 위임통치를 맡은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게 해준다는 약속을 지키되 그곳에 사는 아랍계 주민들은 새로 생기는 유대인 국가의 국적을 부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모순된 세가지 약속을 모두 지킬 수 있다는 ‘황당한 묘안’을 보고받은 의회는 곧바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 담긴 정책이 밸푸어 선언과 충돌하지 않는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결과를 내각에 통보했다. 이런 토론이 1년 가까이 진행되면서 영국은 팔레스타인 정책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백서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사안이나 주제를 조사한 정부 보고서다. 그 기원이 1922년 보고서를 일컫는 ‘처칠의 백서’다. 영국은 전쟁을 이기겠다는 생각만으로 상반된 약속을 남발했고, 부도수표를 수습하지 못해 난관에 빠졌다. 그때 중동의 지정학에 정통한 팔레스타인 고등판무관 허버트 새뮤얼이 초안을 잡고, 전쟁 전 해군장관으로 오스만제국을 직접 상대한 처칠이 완성한 보고서가 나왔다. 의회는 이를 토대로 쉬지 않고 토론했고, 자유당에서 보수당으로의 정권교체로 총리가 바뀐 내각은 일관성을 잃지 않고 의회의 토론 결과를 정책으로 입안했다. 이 정도는 돼야 백서라고 한다. 시늉만 하는 토론에 부치려고 적당히 만들려면 백서라는 이름을 빼는 게 낫다.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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