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옥상에 서 있는 한 사람에게

2024. 8. 1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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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은 참 묘한 공간이다. 옥상을 생각하면 맨 먼저 나는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헤아리는 사람이 떠오른다. 저 깊은 아래를 응시하는 사람의 젖은 눈망울 같은 것.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막한 마음 같은 것. 그와 동시에 한숨을 삼키며 다시금 가파른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사람의 구부정한 등도 떠오른다. 그의 묵묵한 뒷모습." 최근 아침달출판사에서 펴낸 박소란 시인의 산문 '빌딩과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수술실 등에 불이 들어오고, 엄마와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병원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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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옥상은 참 묘한 공간이다. 옥상을 생각하면 맨 먼저 나는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헤아리는 사람이 떠오른다. 저 깊은 아래를 응시하는 사람의 젖은 눈망울 같은 것.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막한 마음 같은 것. 그와 동시에 한숨을 삼키며 다시금 가파른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사람의 구부정한 등도 떠오른다. 그의 묵묵한 뒷모습.” 최근 아침달출판사에서 펴낸 박소란 시인의 산문 ‘빌딩과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에세이를 읽다가 엄마와 나란히 백병원 옥상에 올라갔던 어느 밤이 떠올랐다. 오빠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머리를 부딪쳤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지럽고 구토가 나온다고 했다. 응급실에 갔더니 한시라도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수술실 등에 불이 들어오고, 엄마와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병원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자 우리는 찬바람이라도 쐴 겸 옥상으로 올라갔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엄하고 강인했던 엄마의 구부정한 등이 그때는 참 작게만 보였다. 빌딩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고 매웠다. 맞은편 건물의 붉은 불빛이 조난 신호처럼 깜빡거렸다. 그때 옥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호락호락 ‘희망’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을 때 우리는 두 손을 모으게 되나보다. 당장 명쾌한 해답이나 구원을 바라서가 아니라 막막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수술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삭발한 머리에 메스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족히 한 뼘은 되어 보였다. 침대 아래 놓인 오빠의 낡은 신발을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 지난 일이다. 그때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옥상에 망연히 서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곁에서 묵묵히 손을 잡아주는 마음은 또 얼마나 귀한가.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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