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과학자 우대 없으면 나라 미래도 없다
중국의 첨단기술 역량이 미국을 추월하고 있다고 보도됐다(중앙일보 7월 8일자 1면).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최상위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 논문의 기여도 등을 분석해 연구역량을 평가한다. 네이처 인덱스의 국가별 평가를 보면, 중국은 2024년에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대학 평가에서도 1위인 하버드대학과 10위인 MIT를 제외하면, 10위 이내의 모든 대학이 중국의 대학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놀라운 일일 수도 있지만,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한 사람이라면 꽤 오래전부터 각자의 연구 분야에서 중국의 과학기술 연구역량이 급격하게 성장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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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등교육 정상화해 인재 키우려면
수능 중심의 대입 전형 개혁해야
의대 쏠림 해결하지 못하면 비극
합리적 과학자 보상 체계 갖춰야
」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은 과학 인재를 조달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미국과 중국은 상당히 다르다. 미국은 수준 높은 연구 환경과 풍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필요한 과학 인재를 해외에서 많이 유입한다. 이와 달리 중국에서는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배출하는 박사 인력이 연간 8만 명에 이른다. 미국의 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필요한 인재를 중국 안에서 자체적으로 양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좋은 여건임에도 중국 정부는 천인(千人)계획 등을 통해 해외 인재를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평균 연봉의 30배에 이르는 보상체계를 도입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과학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얼마나 진력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상황은 어떠한가?
외신은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던 한국의 국가 주도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보도하고 있다. 기반기술을 혁신하는 데 취약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중점 기술 분야가 급격하게 줄고, 노동생산성도 낮고,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등교육의 방향을 결정짓는 대입 전형은 대입수학능력 시험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수능 시험에서는 문제 유형을 익히고 암기하는 게 중요하다. 이해력·응용력·상상력·융합력·잠재력·창의성 등은 교육을 통해 계발해야 할 중요한 능력이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능 시험에서는 모두 뒷전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수능 체제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암기력 위주의 평가로도 다른 능력을 어림잡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런 객관식 평가라야 공정성을 확보하기 쉽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여러 문제점이 있더라도 수능 문제가 다른 시험 문제보다는 그래도 양질이라는 것이다. 모두 수긍할 만하나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실의 문제점을 방기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교육을 위해 시험이 존재해야 하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중등교육이 수능 시험을 위해 존재한다. 공정한 선발을 위해 수능이 있고, 수능을 위해 중등교육이 있다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 결과, 여러 가지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는 교육의 의무는 상당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 세계를 개척할 혁신적인 인재가 배출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미래 인재를 양성하려면 중등교육을 정상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대입 전형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또 다른 시급한 문제는 우수 인재가 의대로 쏠리는 현상이다. 수학·물리학 등의 기초과학, 의과학을 포함한 생명과학, 인문학 등 미래를 위해 정성을 쏟아야 할 분야는 아주 많다. 그러나 지난해 성적 최상위 학과 20개 중 19개 학과가 의학 계열이었다는 사실이 우리의 참혹한 현실이다. 피타고라스에서 연유한 조화와 균형의 미학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의 기둥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만으로 건물 전체가 아름다울 수는 없다. 오히려 전체의 미를 훼손한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조화와 균형은 중요하다. 의대 쏠림 현상은 과학을 포함한 학문 전체와 우리의 미래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업적이 어떻게 상호 고양을 이루어 내는지가 현 상황에서는 더 중요하다. 그러려면 먼저 각 분야에 우수 인재가 골고루 배분돼야 한다. 학문의 전 분야에 대한 조율을 누가 해야 하는가? 시민 단체도 할 수 없고, 국가가 강제적으로 할 수도 없다.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개인의 자발적 희생과 참여를 독려해서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목초지의 비극은 개인의 선택이 합리적이더라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의대 쏠림은 개인적으론 합리적 선택일 수도 있지만, 사회 전체로는 비극이다. 인재 양성의 효과는 30년 내지는 50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이어서, 필요한 분야에 우수 인재를 유입하는 것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일이다. 과학자를 우대하는 분위기와 합리적 보상체계를 도입하는 국가 전체의 체계적인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과학자가 자신의 재능을 평생에 걸쳐 즐겁게 발휘하면서 사회에 도움을 주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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