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 동상은 이제 그만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2024. 8. 1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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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어제(15일)까지 한 달간 서울시의 ‘광화문 광장 국가상징공간’ 시민 아이디어 공모가 있었다. 100m 높이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 논란이 되자 다양한 시민 제안을 받아보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참고할 해외 사례로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 모뉴먼트(기념조형물) 등 5개를 제시했다. 내셔널 몰은 국회의사당에서 링컨기념관까지 동서로 2㎞ 이상 뻗어 있는 기다란 공원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알면 좋을 소식이 있다. 몇 달 전 내셔널 몰 바로 옆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이 개관 100주년을 맞아 ‘기념조형물 뒤집기’로 유명한 조각작품을 내셔널 몰과 이어진 앞마당에 설치했으며, 그 작품을 만든 이가 한국 미술가 서도호라는 것이다.

「 기념비 건립 신중 세계적 추세
100m 국기게양대는 성급한 계획
대한민국 정체성 맞는 상징 필요
‘조선 테마파크’ 문제 해결해야

‘공인들’이라는 제목의 이 조각작품에서 일단 눈에 띄는 것은 기념 동상의 필수 요소인 웅장한 받침대다. 그런데 위인의 동상이 있어야 할 받침대 위가 텅 비어있지 않은가? 대신 받침대 아래에 수많은 갑남을녀의 조그만 형상들이 받침대를 떠받치고 있다. 작가는 “역사적 업적을 이룩한 위인들이 과연 그들 혼자의 힘으로 그 업적을 이룩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 작품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스미소니언의 기념조형물 재고 움직임

미국 워싱턴DC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앞마당에 설치 된 서도호 작품 ‘공인들’. [사진 스미소니언 매거진]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은 “이 작품은 미국 수도의 중심부에 눈에 띄게 배치되어 매년 내셔널 몰을 방문하는 2500만 명의 방문객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념조형물의 역할을 재고해 보려는 세계적인 움직임과 딱 들어맞는다”고 했다.

왜 기념조형물의 역할이 재고되는가? 장대한 역사 속에서 특정 인물과 사건을 골라 기념하는 것에는 특정한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며, 한때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시각도 누가 새로이 권력을 갖고 사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념조형물을 세우는 것에 점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념조형물을 무거운 동상이나 기념비처럼 영구적 재질과 옮기기 힘든 구조로 만들 필요가 과연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중앙·지방정부는 새로운 기념조형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 여전히 ‘영구적이고 장대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생각에 갇혀 있는 데다가 심사숙고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같다. 지금은 한발 물러서긴 했으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100m 높이 태극기 게양대’ 계획을 갑자기 발표한 것도 단적인 예다.

아마도 오 시장은 ‘왜 대한민국 수도의 중심 광장에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념조형물은 없고 조선 시대 위인들의 동상밖에 없는가’라는 여러 사람의 문제 제기를 염두에 두고 태극기 게양대를 계획했을 것이다. 그 문제의식 자체는 옳은 것이다. 다만 이제는 스미소니언 미술관의 말마따나 “기념조형물의 역할을 재고해 보려는 세계적인 움직임”은 물론 시민들의 높아진 미의식을 감안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세종대왕상에 대한 평가 필요

서울 광화문광장의 모습. 경복궁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이순신 장군 동상이 일직선을 형성하며 모두 남쪽을 향해 있다. [사진 연합뉴스]

좋은 결정을 위해서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는 한편, 오 시장의 과거 2006~2011년 임기 때 건립된 기념조형물들이 성공적으로 기능하고 있는지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해보고 새 기념조형물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09년에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세종대왕상을 포함해서 말이다.

세종대왕상은 ‘왜 세종로에 세종대왕 동상은 없고 이순신 장군 동상만 있나’라는 직관적인 질문에서부터 추진되었다. 그러나 동상을 세우기 전에 역사·미술·도시조경 전문가들과 충분히 상의해서 ‘세종대왕을 과연 꼭 인물상으로, 그것도 서구적 사실주의 기법의 브론즈 조각으로 기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해야 했다.

일단 동상은 본래 한국의 전통도 아니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명분으로 동상을 고집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어떤 사람이나 일을 기리고자 할 때 한국의 전통은 비석이나 홍문(紅門)을 세워 추상적으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세종대왕을 그의 인물 동상이 아닌 훈민정음에 대한 추상적 현대미술로 기리면 안 되는가?

“광화문 광장, 조선 육조거리일 수 없어”
한국에서 동상 건립 붐이 일어난 것은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서구화와 민족주의 고취를 동시에 진행하면서였다. 정부 산하에 ‘애국선열조상 건립위원회’가 생겨 한국의 주요 역사 인물의 동상을 여기저기에 세웠는데, 유럽 전통을 따라서 높다란 돌 받침대에 영웅적인 모습의 브론즈 입상과 기마상으로 만들어 세웠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바로 이 프로젝트의 산물로서 1968년에 세워졌다. 이 동상은 ‘서구 모방과 강력한 민족주의의 결합’이라는 한국 근대화의 과도기적 모습을 대변하므로 역사가 겹겹이 얹힌 광화문 광장에 한 시대의 상징으로 계속 서 있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2009년의 시대상을 특별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는 세종대왕상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지금 광화문 광장을 보면 경복궁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일직선을 형성하며 모두 남쪽을 향해 있다. 궁궐을 배경으로 임금님이 앉아있고 그 앞을 장군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새 책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경복궁이 “조선왕조 테마파크” 같다고 표현했는데 마치 그 테마파크가 광화문 광장으로 확장된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이곳은 조선을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들의 정치와 유희의 열기가 넘치는 광장이다. 최 평론가는 말한다. “광화문 광장은 더 이상 조선 시대의 육조거리나 일제시대의 광화문통일 수 없기 때문에 현재적 의미, 즉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맞게 재구조화·재의미화되어야 한다.”

오 시장은 이런 재구조화를 위해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세종대왕상의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 대한민국에 걸맞은 국가상징공간을 마련하든지 할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상징공간에는 누구의 동상이든 동상은 가급적 없었으면 한다.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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