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란의 쇼미더컬처] 올림픽 끝, ‘쇼’는 계속된다
17일간의 열전을 뒤로하고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린 후 TV와 유튜브에선 ‘포스트 올림픽’ 예능 경쟁이 한창이다. 가장 핫한 스타들이 출연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아시아 펜싱 사브르 최초 2관왕인 오상욱이 등장했다. 귀국 직후부터 아이돌급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바쁜데 나와줬다”는 유재석의 인사말에 “이럴 때 바싹 와야지 안 그러면 안 불러준다”는 농반진반으로 웃음을 불렀다. 틀린 말이 아니다. 2020 도쿄 올림픽 당시 ‘어펜저스’니, ‘펜싱 F4’니 하고 불렸던 그를 수년간 잊고 지냈다. 덕분에 올림픽 기간 내내 그를 비롯한 올림픽 스타들의 예전 예능 출연을 뒷북 주행하며 스포츠 번외의 즐거움을 누렸다.
“운동선수가 운동에 충실해야지 방송에서 끼 부리는 게 웬 말이냐”는 진작 구닥다리 시선이 됐다. 아예 이를 통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도 한다. 입담 좋은 펜싱스타 구본길은 국가대표 은퇴 후 방송가로 진출하고 싶다는 욕심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성공적으로 전업한 강호동·서장훈이 일종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사실 국가대표 은퇴 후 그간의 명성과 노하우를 실질 경력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경로는 국내에서 제한적이다. 야구·축구 같은 프로 리그가 있어도 만만치 않은 판에 4년 주기 올림픽 때 반짝 주목받는 실업 리그 선수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냉정하게 말하면 올림픽에서 피땀의 결과를 겨루는 경쟁도, 이를 전후한 예능·다큐·인터뷰도 지켜보는 이들에겐 통틀어 ‘엔터테인먼트 쇼’다. 물론 올림픽 메달을 꿈꾸는 그 누구도 이걸 ‘재미’로 하진 않고, 그렇게 해서 될 일도 아니다. 한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을 4년 주기 이벤트로 평가하기엔 그들의 열정·패기·노력이 너무도 고귀하다.
그러나 소위 비인기 종목의 엘리트 선수들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때가 국가 대항전 성격의 올림픽 정도란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물 만난 선수들의 ‘올림픽 특수’ 욕망과 4년마다 단물을 빼먹으려는 미디어가 만나면 지금 같은 올림픽 예능 전성시대가 열린다.
이런 게 하나의 장르가 되면서 더 촘촘한 스토리텔링도 이뤄지고 있다. 구독자 98만 명의 유튜브 ‘꽉잡아윤기’를 운영하는 쇼트트랙 곽윤기는 선수촌 친분을 앞세워 기자들을 앞지르는 밀착 인터뷰가 강점이다. 뒤늦게 시청한 에피소드 중에 오상욱의 전국체전 경기를 응원하러 간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관중이 거의 없는 경기장과 열악한 선수 대기실을 보여주면서 “동계 종목만 그런 줄 알았다”며 씁쓸해했다. 짧은 영광의 순간을 위해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을 지루하게 감내하는 선수들의 고충이 새삼 다가왔다. 이제 올림픽은 끝났고 각자 생업으로 돌아가 충실할 때다. 그리고 4년 뒤를 기약하며 꿈꾸는 자들의 ‘쇼’는 계속된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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