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꿈조차 마음껏 못 꾼다면
일간지 기자의 직업병이었던 걸까. 젊은 시절, 매일매일을 ‘하루살이’로 사는 느낌이었다. 맡겨진 일들을 성실하게, 잘 해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긴 호흡으로 인생의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눈앞에 놓인 빈칸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지난주 썼던 영화 ‘바튼 아카데미’ 이야기를 한번 더 해보려고 한다. 기숙학교 역사 교사인 폴과 조리사 메리가 TV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학교 주위만 맴돌며 살아온 폴에게 메리가 묻는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은 없어요?” 폴은 “카르타고에 가보고 싶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대학 때 쓰던 카르타고 소논문을 언젠간 끝내고 싶어요.”
그들의 대화에 뒷편에 앉아 있던 학생 앵거스가 끼어든다. “그냥 책으로 쓰시죠?” 폴은 “책을 쓸 만큼의 지식은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메리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꿈조차 마음껏 못 꾸시네.”
메리의 신랄한 지적은 내게 던지는 말 같았다. 과연 꿈이라도 마음껏 꾸면서 살아왔는가?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가치 있는 생존을 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삶을 건 포부랄까, 도전에는 언제나 굵은 금이 그어져 있었다. ‘어차피 안 될 건데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생각했고, 그게 현명하다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나’만을 나라고 말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내일의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실에 코를 박고 살면 그 현실이 전부인 듯 보인다. 그런 현실 속에서 꾸는 꿈은 대개 현실의 또 다른 모조품이다. 그것도 남들이 만들어준 모조품. 꿈마저 현실에 볼모 잡혀 있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돈키호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맞설 수 없는 적에게 맞서자”고 주장한다. 사는 게 버겁다고 꿈까지 위축되진 말자. 지레 겁먹고 삶의 지평선에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다. 더 먼 곳을 바라볼 때 더 멀리 갈 수 있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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