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상박’ 美 로봇 투톱…주인은 한국 기업 [맞수맞짱]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8. 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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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첨단로봇 | 보스턴다이내믹스 vs 고스트로보틱스

LIG넥스원이 7월 29일 미국 4족 보행 로봇 전문기업 ‘고스트로보틱스’ 인수를 확정 지었다.

공동 투자자인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국투자PE)와 함께 고스트로보틱스 지분 중 60%를 확보했다. 총 지분 5540억원(약 4억달러) 가운데 3320억원(약 2억4000만달러)어치를 사들였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본사를 둔 고스트로보틱스는 ‘로봇 개’라 불리는 4족 보행 로봇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기업이다. 미군을 비롯한 각국 군대, 경찰 조직이 실전에 적극 도입할 정도로 성능을 인정받는다. LIG넥스원은 이번 인수를 계기로, 미래 먹거리라 불리는 로봇 시장에 적극 뛰어들 계획이다.

한편, 고스트로보틱스가 한국 기업 산하에 들어오면서 주목받는 기업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보스턴다이내믹스’다.

두 회사 모두 첨단로봇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상용화’가 된 4족 로봇을 생산하는 ‘유이(唯二)’한 업체다. 또, 미국에서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한국 대기업에 인수된 회사라는 공통점도 있다. 닮은 만큼 라이벌 의식도 상당하다.

두 기업은 현재 로봇 시장 주도권을 두고 열띤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단순히 실적 대결만 펼치는 게 아니다. 소송을 불사할 만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와 고스트로보틱스는 첨단로봇 분야에서 ‘쌍벽’을 이루는 라이벌이다. 공교롭게 두 회사 모두 한국 회사에 인수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진 왼쪽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스팟’, 오른쪽은 고스트로보틱스의 ‘비전60’. (각 사 제공)
로봇 양강 보스턴, 고스트

구글·미군 홀린 압도적 기술력 보유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였던 마크 레이버트가 1992년 설립했다. 창업 이후 30년 가까이 로봇 연구개발(R&D)에만 매진했다.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시기는 2010년대다. 로봇 개 ‘스팟(Spot)’,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아틀라스(Atlas)’ 등을 공개하며 시선을 끌었다. 이들 제품은 기존 로봇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성능을 선보였다. 덕분에 유튜브에 공개될 때마다 큰 화제를 모았다.

제일 처음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주목한 곳은 구글이다. 2013년 지분을 사들이며 회사를 인수했다. 다만, 빠른 상업화를 원하던 구글과 연구개발에 집중하기를 원하던 기존 경영진 사이 갈등이 생겼다. 의견 차이를 극복 못한 구글은 결국 2017년 소프트뱅크에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매각했다. 이후 소프트뱅크 역시 수익성이 크지 않다 판단하고 2020년 현대자동차그룹에 회사를 팔았다.

현대차가 사들인 직후,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본격적인 ‘상업회사’로서의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기업보다는 연구소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은 유튜브 영상 광고 수익이 전부였다. 현대차로 주인이 바뀌면서 상업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스팟’의 상업 판매에 들어간 데 이어 2022년에는 산업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물류 로봇 ‘스트레치’ 등을 선보인 것 등이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연구소에서 시작해 이제 막 기업화에 접어든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달리, 고스트로보틱스는 시작 단계부터 ‘상업화’에 방점을 찍었다. 2015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펜실베이니아대(유펜) 출신 인도계 과학자 2명이 만들었다. 로봇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다니엘 코이츠첵(Daniel Koditschek) 유펜 교수 제자들이다.

주력은 4족 보행 로봇 상품 ‘비전60’이다. ‘비전60’은 당장 실전에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높은 상품성과 기술력을 자랑한다. 실제로 고스트로보틱스가 유명세를 떨친 것도 미군과 영국군이 ‘비전60’을 활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영향이 컸다.

이후 군사작전, 재난구조, 경호 활동 등에서 활용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입증하며, 각국 정부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성장 가능성을 엿본 방산 기업 LIG넥스원이 2023년부터 인수를 추진했고, 지난 7월 품에 안았다.

기술력은 압도적인 보스턴 승

실전에서의 활용은 고스트가 강력

첨단로봇 분야에서 두 회사는 우위를 점하는 분야가 다르다. 기술력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압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반면, 상업성과 실전에서의 활용성은 고스트로보틱스가 훨씬 뛰어나다는 평이다. 기술력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92년부터 꾸준히 기술을 축적해온 덕분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로봇 전반적으로 기술력 자체가 매우 뛰어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4족 로봇만 만들지 않는다. 인간처럼 움직이는 ‘2족 보행’은 로봇도심형항공(UAM) 등에도 진출해 있다. 2족 보행 로봇은 로봇공학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제품으로 꼽힌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생산하는 2족 보행 로봇 ‘아틀라스’는 현재 나온 2족 보행 로봇 중 가장 뛰어난 상품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한목소리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로봇 움직임을 방해하는 먼지와 수분 등 외부 요소가 없는 환경이라면, 보스턴다이내믹스 제품이 가장 뛰어난 움직임을 보인다. 스팟, 아틀라스 등 주요 제품의 유연성과 움직임은 로봇류 중 가장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술력에 비해 상업성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 스팟은 대당 가격이 1억원에 달한다. 가격이 상당한 반면 실전에서 활용성은 제한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2족 보행 로봇 아틀라스는 아직 상용화도 못했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가격은 2억원이다. 경쟁자에 비해 매우 비싼 가격이다. 테슬라는 자사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2025년부터 2700만원(약 2만달러)에 판매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가격 차이가 10배 가까이 난다. 기술력이 아무리 좋아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고객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쭉 적자를 기록 중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이와 달리, 고스트로보틱스는 실전에서의 활용성과 상업성에서 앞서 있다. 대표작 ‘비전60’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스팟’보다 발열은 적은 반면 구동 시간은 길다는 강점을 자랑한다. 스팟의 최대 구동 시간이 90분인 데 비해 비전60은 210분이다. 애초에 야외에서의 활동을 상정해 만든 제품이기 때문이다. 먼지·수분 등에 상당한 저항성도 갖췄다. 덕분에 각국 ‘군대와 정부’라는 확실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영국의 경우 10대의 ‘비전60’을 도입한 뒤 50만파운드 연구개발 자금을 댔다. 비전60 개발·구입을 위해 200만파운드의 추가 예산도 배정해놨다. 한국에서도 대통령경호처가 도입, 경호 업무에 활용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고스트로보틱스의 리스크는 ‘윤리적 문제’다. 고객 상당수가 군대인 만큼, 살상용 로봇을 만든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고 있다. 이를 의식해 고스트로보틱스 측은 자사 로봇이 ‘무기’가 아닌 ‘플랫폼’이라고 강조한다. 군사용 외에도 재난 구호, 물건 배송 등에 활용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미국 현지에서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셧다운 고스트로보틱스(고스트로보틱스 문을 닫아라)’라는 구호가 나올 정도로 강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업이 최소한의 윤리를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비윤리적 기업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일반 고객사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게 향후 로봇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될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와 고스트로보틱스는 첨단로봇 상업화를 위해 적극 나선다. 사진 왼쪽은 공사 현장을 점검하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 오른쪽은 용산 대통령실 인근을 순찰 중인 ‘비전60’. (현대건설 제공, 매경DB)
소송전까지 불사하는 라이벌

결국에는 투자자 안심시키기?

2010년대만 해도 두 회사는 딱히 ‘라이벌’로 묶이지 않았다. 고스트로보틱스는 존재감이 덜한 신생 회사였고, 보스턴다이내믹스도 기업보다는 ‘연구소’ 성격이 강했다. 굳이 서로를 의식하지도 않았고,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이후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본격적인 상업화 단계에 접어들고, 고스트로보틱스가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하면서 두 회사는 본격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양 사가 2020년부터 본격적인 소송전에 돌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2년 말 고스트로보틱스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접수된 110쪽 분량 소장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고스트로보틱스의 ‘비전60’과 ‘스피릿40’이 자사 4족 보행 로봇 관련 특허 7개를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이들 4족 보행 로봇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에 적용된 시각 정보 수집, 환경 데이터 처리, 계단 오르는 방법 등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7개 특허를 둘러싼 재판은 2025년 2월 말에 열릴 예정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측은 “혁신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생명선이며, 우리 로봇 기술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약 500건의 특허와 특허 출원을 성공적으로 제출했다. 새로운 모바일 로봇 시장에서 경쟁을 환영하지만, 모든 기업이 지식재산권을 존중할 것으로 기대하고, 그런 권리가 침해됐을 때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소장에 미국 네바다주 넬리스 공군기지 등에서 2020년과 2021년 미 공군이 실험한 고스트로보틱스의 4족 보행 로봇 사진을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고스트로보틱스 측은 “특허 대상이 아니다”라며 대응 방침을 밝혔다. 현지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상장 전 투자자들에게 라이벌과의 기술 경쟁에서 ‘앞서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소송을 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 시장 관계자는 “고스트로보틱스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주력하는 민수용 시장까지 진출하려 하자, 견제하려는 차원에서 소송전을 진행했다는 시각이 강하다”고 귀띔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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