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밥캣·로보틱스 합병 앞에 ‘거대한 장벽’
사업 구조 재편 논란에 쩔쩔매던 두산그룹이 정면 돌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주요 계열사 대표 명의로 주주서한을 보내는 등 직접 소통에 나서기로 했다. 그럼에도 주주들 원성이 사그라들지 않는 데다 정부, 정치권도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등 사면초가에 내몰리면서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 결의안이 무산될 것이라는 시선이 팽배하다.
두산에너빌 “1조 원전 사업 투자 가능”
논란의 배경은 이렇다. 두산그룹은 지난 7월 11일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첨단소재 등 3대 부문을 핵심 축으로 사업 구조를 전면 개편한다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를 기존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회사 지분을 두산로보틱스에 넘기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산하 두산밥캣을 분할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진 후, 논란이 뜨거웠다. 특히 연간 1조원대 영업이익을 내는 핵심 자회사 두산밥캣을 잃게 되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반발이 거셌다. 지난해 ㈜두산 영업이익은 1조463억원으로, 이 중 두산밥캣 영업이익(1조3899억원)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두산로보틱스는 2015년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매출 530억원에 영업손실 192억원을 냈다. 올 1분기에도 매출 108억원, 영업손실 68억원을 기록해 당분간 흑자전환은 요원하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와 알짜 기업 두산밥캣 합병비율을 두고 내내 시끄러웠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 방식을 들여다보면 먼저 두산에너빌리티를 1 대 0.25 비율로 존속 사업법인과 두산밥캣 지분(46.1%)을 보유한 신설회사로 인적분할한다. 이후 신설회사를 1 대 0.13 비율로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주주가 보유한 두산밥캣 잔여 지분 44.9% 등을 두산밥캣 주식 1주당 두산로보틱스 0.63주로 바꾸는 포괄적 주식 교환으로 취득한 뒤 두산밥캣을 상장폐지한다. 두산밥캣 1주당 두산로보틱스 0.63주라는 합병비율을 알게 된 두산밥캣 주주 불만이 폭발했다. 두산밥캣 주주는 1주를 내놓으면 두산로보틱스 0.63주밖에 못 받기 때문이다.
급기야 두산그룹은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 스캇박 두산밥캣 대표,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 명의의 주주서한을 각 사 홈페이지에 일제히 게시했다. 3사 대표들은 회사 발전을 위해 사업 구조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사업 구조 개편안을 두고 불거진 주주 가치 훼손 논란에 대해 설명이 부족했다고 사과하는가 하면 사업 구조 개편을 통한 회사 발전 방향을 상세히 설명했다.
박상현 대표는 “이번 사업 구조 개편에 대해 충분한 사전 설명이 없었던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구조 개편을 통해 확보되는 1조원 상당 자금을 원전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구조 개편이 성공하면 두산밥캣 차입금 7000억원이 사라져 대출 여력이 생기고, 두산큐벡스·분당리츠 등 비영업용 자산을 지주사 ㈜두산에 매각해 현금 5000억원이 생긴다는 논리다. 이 자금으로 향후 5년간 연간 4기 이상의 대형 원전 제작 시설을 확보하고, 연간 20기 규모의 소형모듈원전(SMR) 제작 시설을 확충하겠다고 강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수주를 따낸 체코 원전에 이어 폴란드, 영국,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신규 대형 원전 수주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박상현 대표는 자회사 두산밥캣에서 나오는 연간 700억원대 배당수익이 줄어든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배당은 매년 변동하고 필요한 재원에도 한참 부족하다. 1조원을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할 경우 배당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스캇박 대표도 힘을 보탰다.
글로벌 산업용 자율주행 장비 시장이 급성장하는 만큼, 이 시장을 선도하려면 기존 제품의 로봇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산로보틱스는 비전인식, 디지털 트윈, 딥러닝, 정밀제어 등 소프트웨어 역량을 보유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
특히 글로벌 1위 건설장비업체 캐터필러가 2020년 로봇업체 마블로봇을 인수한 사례를 예로 들면서 “두산로보틱스와 함께 무인화, 자동화 분야 선도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인수합병(M&A), 제휴를 공격적으로 추진하겠다. 양 사의 투자 과정을 일원화해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투자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밥캣 주식을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으로 바꾸는 교환비율을 두고서도 스캇박 대표는 “법에서도 상장법인 간 포괄적 주식 교환 시 시가 대 시가로만 교환비율을 산정하게 돼 있다”며 “현행법상 문제없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라 최근 한 달간 평균 주가 등을 계산해 합병비율을 산정했다”는 것이 두산 측 주장이다.
류정훈 대표 역시 두산밥캣을 100% 자회사로 둔 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나타날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다. 류 대표는 “북미, 유럽 시장에서 압도적 비즈니스 인프라를 갖춘 두산밥캣과 통합하면 시장 내 고객 접점이 현재보다 30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며 “두산로보틱스는 향후 5년 내 매출 1조원 넘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주 신뢰 회복 못하면 합병 무산 가능성
두산 주요 계열사 대표들이 주주서한을 보내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상황이 녹록지 않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구성을 보면 ㈜두산이 30%, 소액주주가 63.4%를 보유해 소액주주 의견이 절대적이다. 두산밥캣이라는 캐시카우를 내주게 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밥캣 분할 소식 이후 쏟아내기 시작한 “날벼락을 맞았다”는 비난 강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최근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1만6000원대로 급락하면서 회사가 설정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2만890원) 이하로 떨어진 만큼 주가가 반등하지 못하면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규모가 두산에너빌리티가 준비한 6000억원을 넘어서면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분할 등 주총 특별결의에 반대하는 주주가 회사 측에 보유 주식을 정당한 가격으로 되사달라고 청구하는 권리다.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키를 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6.78%를 보유한 만큼 혼자서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한도(6000억원)를 넘길 수 있다. 국민연금은 앞서 2014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과정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고 이에 합병이 무산된 바 있다.
두산밥캣 주주 반발도 변수다.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가 지분 46%를 보유했지만 외국인(39%), 국민연금(7%) 등 일반주주 지분도 적잖다. 두산밥캣 주주들은 1주당 두산로보틱스 0.63주를 받게 되자 “강제로 상장폐지당할 판”이라며 두산 오너 일가를 성토하고 있다. 이한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사업 구조 개편으로 두산밥캣의 안정적인 이익 창출력과 배당을 기대했던 해외 투자자들이 이탈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 진단했다.
여론 반발이 거세지면서 정부, 정치권이 사태를 예의 주시하는 점도 걸림돌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합병·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금감원은 중요 사항과 관련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는 등의 문제가 있을 경우 정정신고서를 요구할 수 있다. 금감원이 필요 사안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두산그룹이 핵심적 위험 요인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종의 ‘경고 사인’을 보낸 셈. 그런데도 두산은 합병비율을 바꾸지 않고 기존 안대로 강행하기로 해 소액주주 불만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금융위원회는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때 합병가액이 적절한지 제3의 외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김병환 신임 금융위원장은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에 대해 “시장 우려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도적으로 고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거세지면서 정치권도 가세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명 ‘두산밥캣 방지법’을 발의했다.
현행법에서는 상장회사 간 합병 과정에서 합병가액을 계산할 때 주가만을 기준으로 해 자산 가치, 수익 가치 등 본질 가치와 무관하게 합병가액이 결정된다. 김현정 의원이 낸 개정안은 자산 가치, 수익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자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병가액을 결정하도록 했다. 합병가액에 관해 다툼이 있는 경우 공정성 입증 책임은 상장사가 부담해야 한다. 또 합병가액이 불공정하게 결정돼 투자자가 손해를 입고, 실제 합병가액이 이사회의 중대한 과실로 불공정하게 결정됐을 경우 이사회 결의에 찬성한 이들이 연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을 내고 “한국 자본시장법은 상장사 합병에서는 예외 없이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한다”며 “(두산그룹의 사업 구조 개편은)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이번 사업 구조 개편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기는커녕 두산그룹 오너 일가 배만 불린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구조 개편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지주사인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적 지분율은 약 14%에서 42%로 대폭 높아진다. 지분율이 3배 늘어나면서 구조 개편 완료 후 ㈜두산은 두산로보틱스를 통해 기존 두산밥캣에서 받던 배당금의 3배를 받게 된다. ㈜두산은 두산밥캣에서 배당금으로 2022년 921억원, 지난해 753억원을 챙겼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번 구조 개편으로 두산밥캣에 대한 두산그룹의 보유 지분이 늘어나 부정적인 경영 개입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두산밥캣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주주 반발이 워낙 거센 데다 정부, 정치권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어 합병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상황이 심상찮은데도 오너 일가가 아닌 계열사 전문경영인만 나서서 사과하니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두산 입장에서는 합병 무산 이후 대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재계 고위 관계자 귀띔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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