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ETF…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라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4. 8. 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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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커지는데…50억 밑도는 상품 수두룩

한화자산운용은 지난 2022년 6월 ‘TDF(Target Date Fund) 액티브 ETF’를 선보이며 ETF(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d Fund)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최근 성과는 초라하다.

‘PLUS(플러스) TDF2030액티브’ 순자산총액은 23억원에 그친다. PLUS TDF2030액티브의 7월 한 달간 거래대금은 하루 평균 100만원을 밑도는 날이 10일가량이나 됐다. 심지어 7월 30일에는 하루 거래대금이 9만원에 불과해 사실상 ‘존재감 제로’다.

국내 ETF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그늘도 짙다. 한 운용사에서 테마형 상품을 출시하면 경쟁사에서 이름만 비슷한 복제품을 쏟아낸다. 딱히 아이디어와 종목 구성으로 차별화하지 못하는 운용사들은 수수료 인하에만 올인하는 모양새다.

160조원대로 급성장

종목 수도 코스피 앞질러

외형적으로 국내 ETF 시장은 성장 일로다. 올해 초 120조원대였던 순자산(AUM·Asset Under Manage ment)은 8월이면 160조원을 무난히 돌파할 듯 보인다. 지난해 6월 100조원을 넘어선 이후 불과 1년여 만에 시장 규모가 50% 넘게 성장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평균 45일마다 10조원씩 늘어나는 초호황 국면이다. 상장 종목 수도 크게 불어났다. 7월 23일 기준 879개 종목으로 코스피 상장사(837개)를 추월했다.

그러나 상장 종목 수가 많다는 점은 ‘개성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글로벌 ETF 리서치 기관 ETF GI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전 세계 ETF 순자산 규모는 12조원대다. 종목 수로 1만개가 조금 넘는다.

같은 시점 국내 상장 ETF 순자산 규모는 약 140조원대였다. 세계 시장에서 약 0.8% 비중으로, 1%에도 못 미친다. 종목 수로는 8%가 한국 상품이다. 한화자산운용 TDF ETF의 순자산이 고작 20억원대였던 것처럼, 투자자 선택을 받지 못한 ‘미니 상품’이 많았다는 뜻이다.

단기 테마만 좇는 쏠림 현상도 심각하다. 올해 초 엔비디아 편입 상품이 줄줄이 쏟아진 게 그 사례다. 코스콤 ETF CHECK에 따르면 국내에서 엔비디아 비중을 20% 이상 담은 ETF는 12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4개가 올해 나왔다. 8개는 최근 1년 내 상장했다.

반면 엔비디아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엔비디아를 20% 이상 비중으로 편입한 ETF가 7개에 불과하다. 1개를 제외하고 모두 시장에 나온 지 길게는 10여년, 짧게는 1년 반이 지났다. AI 외 올해 상장한 국내 ETF 대부분은 월배당, 커버드콜, 미국 주식 등 셋 중 하나다. 월배당 ETF만 60개 가까이 된다.

유행을 좇아 고만고만한 상품을 내놓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판을 치며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ETF가 속출한다. 순자산총액 50억원 미만 ETF는 80개가 넘는다. ETF 순자산총액 50억원 미만인 상태가 1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

순자산총액 50억원 미만 ETF 가운데 3개월 평균 거래량이 1000주를 밑도는 ‘좀비 ETF’도 40개 안팎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시는 특정 테마가 빠르게 달아오른 뒤 빠르게 식는 경향이 있다”며 “관련 테마 ETF를 구성해 출시할 때쯤이면 이미 고점을 찍은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름만 그럴싸하게 만들었다가 제재를 받는 경우도 생겼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ETF에 손실 볼 위험이 없는 듯 이름을 구성하자,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은 현재 ‘+분배율%프리미엄’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커버드콜 ETF에 대해 목표 분배율 수치를 제외하는 안을 고려 중이다.

커버드콜 ETF는 미리 정한 가격에 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을 팔아 생긴 자금으로 투자자에게 분배금을 나눠 주는 상품인데, 현재 자산운용사들은 이 분배율을 ETF 이름에 넣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AI테크TOP10+15%프리미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나스닥100+15%프리미엄초단기,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빅테크7+ 15%프리미엄분배(합성)가 그 예다.

이 상품들의 15%는 확정 수익률이 아닌, 자산운용사가 15%의 분배금이 나오는 것을 목표로 콜옵션을 팔겠다는 뜻이다. 이에 금감원은 투자자들이 목표 수익률을 확정 수익률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시정 조치에 나섰다.

삼성 vs 미래에셋 신경전

중소형사조차 출혈 경쟁 휘말려

유사 상품 난립은 수수료 출혈 경쟁으로 이어졌다. ETF 점유율 1위 삼성자산운용은 일부 ETF 운용 보수를 기존 연 0.05%에서 0.0099%로 대폭 인하했다. 삼성자산운용은 보수를 인하한 ETF 상품을 1억원어치 팔아야 겨우 1만원을 얻는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1년은행양도성예금증서액티브(합성) ETF’ 보수를 삼성운용보다 0.0001%포인트 낮은 0.0098%로 인하해 국내 최저 보수 타이틀을 빼앗았다.

대형 운용사 간 수수료 인하 경쟁은 중소형 운용사로 확산했다. 최근 KB자산운용은 자사 ETF 리브랜딩에 나서며 ‘RISE ETF’ 13종 총보수를 기존 연 0.021~0.35%에서 연 0.01%로 인하했다. ETF 시장점유율 1위와 2위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각기 업계 최저 보수를 내걸며 경쟁하는 사이 3위 운용사까지 주요 ETF 수익률 인하 대열에 가세했다.

KB운용이 ETF 보수를 인하했다는 소식이 들리기 무섭게 키움투자자산운용도 배당 주기 변경과 함께 KOSEF 200과 히어로즈 리츠이지스액티브 ETF 2종의 보수 인하에 나선다고 밝혔다. 해당 ETF 보수는 각각 연 0.52%에서 0.3%로, 0.13%에서 0.05%로 낮아졌다.

앞서 한국투자신탁운용도 ‘미국30년국채선물레버리지(합성H)’ 총보수를 연 0.25%로 책정하며 미 국채 30년 레버리지 ETF 상품 중 가장 낮은 수수료를 책정했다. 한화자산운용도 기존 ‘PLUS(구 ARIRANG) 200’ ETF 총보수를 연 0.04%에서 연 0.017%로 낮춘 바 있다. 상위권 운용사 간 수수료 인하 싸움에 후발 주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인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점유율 경쟁 속에 수수료를 낮추고 마케팅 비용은 늘어나며 품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ETF 상품 하나를 선보이기 위해 소수의 ETF 개발팀은 최소 1개월 최대 6개월 혹은 그 이상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보수를 낮추면 투자 재원 마련이 어려워진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계좌를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운용하며 ETF 시장이 더 커졌다”며 “공모펀드 시장이 죽은 마당에 ETF 시장에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고, 상품으로 차별화하기는 쉽지 않아 수수료 인하를 통한 점유율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점유율 상위 운용사가 수수료 제로 경쟁을 촉발할 경우 손익 구조가 취약한 중소 운용사는 상품 경쟁에서 버티기 힘들다”며 “수수료 경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차별화한 상품을 내놓기 위한 움직임도 엿보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미국S&P500동일가중 ETF’를 신규 상장시켰다. 해당 상품은 미국 투자를 대표하는 S&P500지수 구성 종목에 동일가중(각 0.2%)으로 투자하는 ETF다. 미국과 유럽, 캐나다, 호주 등에 상장된 S&P500 동일가중 투자 ETF가 아시아 국가에 상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를 중심으로 한 ETF 출시를 강화하고 있다.

‘ACE 엔비디아밸류체인액티브’ ‘ACE 마이크로소프트밸류체인액티브’ ‘ACE 구글밸류체인액티브’ 등 4종의 빅테크 액티브 ETF를 내놓으면서 빅테크 관련 밸류체인 ETF를 완성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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